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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집, 다른 전시 - D뮤지엄&대림미술관

전시 이야기

같은 집, 다른 전시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 D뮤지엄&대림미술관


오늘은 두 개의 공간을 운영 중인 대림문화재단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1996년 설립된 대림문화재단은 대림미술관과 디(D)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전신은 1993년 대전에서 시작한 한림갤러리로, 1997년 대전에서 개관한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림미술관을 2002년 서울로 이전해 재개관한 곳이 대림미술관이에요. 대림미술관은 현대 사진과 디자인 관련 다양한 기획으로 인상 깊은 전시를 선보였고, 다채로운 마케팅으로 많은 관람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에 힘입어 2021년부터는 경복궁역 인근 대림미술관과 서울숲 역에 위치한 디뮤지엄 두 곳으로 전시 공간을 확장해 관람객을 맞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2년부터 수년간 한남동에서 운영된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 모아 당구장'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자리 이전을 한 데다 존재감도 거의 없어 아쉽긴 합니다.

IMG_4644.JPG?type=w773 서울숲 디뮤지엄 <취향가옥> 이미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서울숲 역에 위치한 디뮤지엄에선 현재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2024.11.15 ~ 2025.05.18) 기획전이, 경복궁역 대림미술관에선《Keiichi Tanaami: I'M THE ORIGIN》(2024.12.14 ~ 2025.06.29) 특별전이 진행 중입니다. 원래 하나만 소개할까 하다가, 두 곳 전시가 다 좋아서 함께 소개드려요. 대림문화재단의 전시는 대림미술관이든 D뮤지엄이든 한번 본 전시를 무료로 재관람할 수 있고, 두 곳 중 먼저 본 곳의 표를 홈페이지에 등록해 두면 다른 전시를 볼 때 할인받을 수 있는 할인권도 발행되어 가성비가 좋습니다. 저도 한 전시는 할인받아서 봤고, 전시 기간 종료 전에 둘 다 한 번씩 더 볼 생각입니다.


먼저 시작한《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전시는 컬렉터가 되고 싶거나 현재 컬렉션을 갖고 있는 분들이 더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건조하게 말하면, 예술 작품을 주거 공간 안에 디스플레이한 전시 형태이지만, 70여 명의 국내외 작가의 작품 300여 점을 한곳에서 볼 수 있고, 어떤 공간에 무슨 작품을 어떻게 놓을까에 대한 참고가 되는 전시입니다. 미술품은 기본이고 가구, 전등 등 인테리어 전반에 속한 오브제들을 볼 수 있다 보니 전시장이라기보다 감각적으로 잘 꾸민 누군가의 집을 보고 온 느낌이 더 짙죠. 미술품과 가구, 소품 하나하나 다 멋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게 돼요. 그만큼 눈 호강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전시는 각 층마다 각각 다른 취향을 지닌 페르소나의 공간을 둘러보는 구성입니다. 각 층에서 서로 다른 취향 공간과 공간에 놓인 예술품들을 만나게 되죠. 같은 층이라고 해도, 방으로, 디스플레이로 구분되는 크고 작은 공간 분위기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미요소입니다.


첫 전시 공간인 2층 'split house'에선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영상 감독인 '아들'의 공간과 단아함을 드러내는 티 소믈리에인 '엄마'의 취향을 보여줍니다. 다른 취향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이질적이진 않아요. 보면서 제 취향에 더 맞는 공간들을 손꼽게 되다 보니 이 전시 관람 내내 함께 간 친구에게 "여기가 좀 더 내 취향이야, 너는?" 이란 말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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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 house'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3층 'terrace house'에선 자연과 건강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둔 플로리스트 아내와 셰프 남편의 취향 공간을 선보입니다. 여긴, 무엇보다도 뷰가 압도적이에요.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서울숲과 고층 빌딩 뷰가 상당히 이국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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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ce house'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체 전시관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으로, 개방감도 디스플레이도 좋아서 이렇게 꾸미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ㅎㅎㅎ 조경과 가구배치 및 공간마다 사용한 소재들도 좋아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전시실입니다.


4층 'duplex house'는 예술을 사랑하는 갤러리스트의 취향이 투영된 공간입니다. 작품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어요, 시대적으로나 매체 구성으로나. 이곳도 개방감이 좋고, 독특한 공간 구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도 많았습니다. 공간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잘 활용했더라고요. 대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작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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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plex house'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전은 보기만 해도 시각적으로 공부가 되는 전시라,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친구와 좋은 공간을 경험하고 싶을 때 찾아보면 좋을 전시입니다. 호불호가 없을 전시인 데다 남녀노소 누구와 봐도 편안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로 디뮤지엄은 무료 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한 시간 무료'라는 제약이 있습니다. 층간 계단이동해야 하고, 봐야 할 작품 및 디테일들이 많아서 한 시간은 부족하니, 전시를 보러 갈 땐 가급적 짐 보관이 필요 없이 가볍게 가길 권해드립니다.


경복궁역 대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전은 기대 이상이었고, 전시 구성뿐만 아니라 출품작의 디스플레이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진 전시였어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타나아미 케이이치의 첫 특별전이고, 60여 년의 작가 생애 주요 작품 700여 점을 선보인, 대림미술관 설립 이래 최대 규모 전시입니다. 1936년 생인 타나아미 케이이치(たなあみけいいち, 田名網敬一)가 2024년 8월에 별세했으니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죠.

IMG_8106.JPG?type=w773 대림미술관 입구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홍보물에서도 보이듯, 그는 화풍은 시각을 압도하는 '컬러 맥시멀리즘'을 표방합니다.'아시아 팝아트의 선구자' , '존재가 곧 장르'라는 수식어답게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토모, 아야코 로카쿠 등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현대미술 운동인 '슈퍼플랫(superflat)'의 원조이기도 해요.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창한 '슈퍼플랫'을 정확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일본 그래픽 아트, 애니메이션, 우키요에 목판화, 일본화 등의 요소를 결합해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의 구분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작품을 관람할 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앞서 말한 작가들의 작품을 쭉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고요.

IMG_8237.JPG?type=w773 전시실 작가 영상 캡처: 네버레스홀리다

도쿄 섬유 도매상의 장남으로 태어난 타나아미 케이이치는 만화가를 꿈꿨어요. 이후 무사시노 미술대학 그래픽 디자인 학과에 진학 및 졸업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맘껏 재능을 펼치죠. 사이키델릭(psychedelic) 문화와 팝아트가 정점이던 1960년대엔 미국 여행을 통해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언더그라운드 실험 영화의 대가 케네스 앵거와 요나스 메카스 작품들을 접했는데, 이들의 작품은 이후 그의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참고로 그의 작품에는 그가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경험한 전쟁의 충격과 1981년 결핵으로 입원하여 생사의 기로에서 경험한 환각, 환영의 강렬한 트라우마도 전부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화폭에 등장해 작품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전시를 봐야겠다 생각한 건, 밝고 화려함이 극에 달한 작품 속에 녹아든 기묘하지만 낯익은 디테일들이었어요. 앞서 설명한 작가 이력을 보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던 영향 관계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온갖 액운이 다 사라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고 해야 하나. ㅎ 현장에선 넓은 작업 스펙트럼과 방대한 전시 출품작, 성실함이 느껴지는 디테일들에 감탄 또 감탄하며 봤습니다.


본관 1층 첫 번째 공간 'INTO TANAAMI’S WORLD'에선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을 보여줍니다. 전시 및 작가를 소개하는 인트로 공간으로, 화려한 병풍 형태의 작품과 세속과 신성함을 잇는 다리를 형상화한 '백 개의 다리 A Hundred Bridges'(2024)는 어둠 속에서도 진한 강렬함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죠. '이게 바로 내 스타일이야'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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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1층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2층은 '이미지 디렉터'로서의 그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서양의 대중문화와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 순수예술과 상업 예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의 포스터, 콜라주 작품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만화와 팝 아트에서 영향받아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노 모어 워 NO MORE WAR'시리즈(1967),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중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된 콜라주 북 시리즈, 2012년 콜라주 북을 다시 발견한 후 이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제작된 '기억은 거짓말을 한다 Memories Tell Lies'시리즈(2023) 등 주요 시리즈를 만날 수 있어요. 작가 소개 영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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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3층에선 'CREATIVE ILLNESS'를 주제로 그가 어린 시절에 체험한 전쟁이나 생사를 가르는 병마의 경험을 계기로 얻은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환각 등 심리적 불안을 창의적 원동력으로 활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핵으로 투병하던 시기, 과거 중국에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양의 길상적 아이콘들을 활용하여 제작한 '도키와마츠 Tokiwa-matsu'시리즈(1986-87), 어린 시절 경험한 기억을 모티브로 제작한 '생명 탄생 The Birth of Life'시리즈(c.1990)와, '엘리펀트 맨 Elephant Man'시리즈(c.1990), 팬데믹 기간 꾸준히 제작한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Pleasure of Picasso – Mother and Child)'시리즈(2020-2024)까지, 갖은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은 그의 창작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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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특히, 'PICASSO FEVER'라는 주제로 선보인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Pleasure of Picasso – Mother and Child)'은 가장 인상 깊었던 섹션으로 '압도적'이란 단어로 밖엔 표현이 안됩니다. 그는 피카소의 묘사법과 채색 방법에 매료되어 2020년부터 2024년 타계 전까지 700여 점에 이르는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그 작품들이 이 공간에 꽉 들어차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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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화풍이 느껴지는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시리즈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본관 4층 공간은 'TANAAMI'S UNIVERSE'란 주제로 기괴한 모양의 생물이 혼합된 조각상인 '기상천외한 몸(Incon- ceivable Body)'(2019)과 만화가 후지오 아카츠카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거울 속의 내 얼굴 My Face in the Mirror'(2022), '기억의 미로 Maze of Memory'(2022) 등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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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AAMI'S UNIVERSE'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뭔가 가상현실 속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여러 가지로 묘~한 공간입니다.


전시는 본관 옆 매표소가 있는 건물인 '미술관 옆집' 2층에서 계속됩니다. 'TANAAMI'S CABINET'이란 주제로 다채로운 컬래버레이션 작업과 오브제, 실험 영화, 애니메이션, 도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 및 서브컬처를 바탕으로 회화, 드로잉, 콜라주, 조각, 애니메이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는 동안 특정 장르나 전통적인 규칙에 구속되지 않다 보니 아디다스, 베어 브릭, 유니클로, 마텔, 요지 야마모토 등 국제적인 브랜드들과의 협업도 많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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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집 2층 전시 출품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관람은 기본 두 시간, 천천히 보려면 세 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면 도슨트 해설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대림미술관에도 무료 보관함이 있는데, 여긴 시간 제약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에서 하고 있는 전시 모두 좋지만, 만약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Keiichi Tanaami: I'M THE ORIGIN》을 권해드립니다. 재관람도 가능하니 정가로 사셔도 이득이지만, 전시 막바지라 할인 티켓도 종종 보이더라고요. 할인해서 구매해도, 대림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구매하지 않아도, 관람을 완료한 티켓을 공식 홈페이지나 앱에 등록하면 재관람과 전시 관람 할인권 발행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다 쓴 티켓도 꼭 버리지 말고 등록하세요.


그럼, 남은 오후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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