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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봤다면 & 놓친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 2025.

전시 이야기

못 봤다면 & 놓친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 - MMCA 《김창열》, 세화미술관 《 NONOTAK 》, ASJC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 적군의 언어》



이제야 뭘 좀 해봐야겠단 마음이 생겼는데, 이미 12월, 한 해의 끝입니다. 뭐.. 늘 그렇죠 ㅎ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이 많아, 이번 12월은 31일 마지막 1초까지 살뜰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올해 내로 꼭 보셔야 할 세 개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추천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올해12월 21일까지 볼 수 있는 《김창열》전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창열(1929-2021) 화백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생애 전반에 걸친 창작 과정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보여줍니다. 작가를 이해하고 작품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형태의 전시죠. 전시장에선 초기작 및 뉴욕 시기 등 미공개 작품 31점과 대표작 포함 120여 점을 볼 수 있는데, 이 좋은 작품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2,000원에 볼 수 있다는 게 아주 매력적이죠. 요즘 전시 관람료가 평균 2만 원 선인 걸 감안하면요.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는 6,7,8 전시실에서 진행됩니다. 6,7 전시실은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네 개의 장으로, 8 전시실은 작가 아카이브 공간으로 구성해 미공개 자료와 작품들을 배치했어요.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꽤 봤다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보지 못한 작품이 많아 눈이 즐거웠고, 설명도 잘 되어 있어 사전 지식 없이 전시장 소개글만 따라가도 작품 감상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장에선 작가 다큐멘터리 영화인《물방울을 그리는 남자》(2022)의 요약 버전도 상영됩니다. 전체 79분 다큐라 길지 않으니 먼저 보고 가셔도 좋고요.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처음 본다면, 김창열 화백의 대표 이미지인 물방울이 어떤 계기로 어떻게 생겨났고 이후 어떤 형태로 발전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순서대로 보면 됩니다. 이런 대규모 회고전을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시간 여유 두고 천천히 보고 오세요.



두 번째 전시는 12월 31일에 종료되는 세화미술관의《NONOTAK》입니다. 세화미술관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옆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1942~)의 <해머링 맨(Hammering Man, 2002)>은 익숙하시죠? 바로 그곳 2,3층에 세화미술관이 있습니다. 흥국생명 지하 1층부터 2층까진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상설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전달하는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이 제일 유명합니다. 절기에 따른 작동 시간 변동은 있지만 대개 오전 8시부터 6시까지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해요. 높이 22m로, 세계 11개 도시에 설치된 <해머링 맨> 중 가장 큰 작품입니다.

촬영:네버레스홀리다

《 NONOTAK 》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노탁 스튜디오(NONOTAK STUIO)의 국내 첫 개인전입니다. 노노탁 스튜디오는 비주얼 아티스트 노에미 쉬퍼(Noemi Schifer, 1988-)와 건축 전공의 빛 사운드 아티스트 타카미 나카모토(Takami Nakamoto, 1988-)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듀오입니다. 2011년부터 협업을 이어왔죠.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에선 공간 왜곡을 시각화한 오디오 비주얼 설치 작품 <DAYDREAM V.6>(2021), 착시 효과와 강렬한 백색광의 움직임이 결합된 오디오 비주얼 설치 작품 <HIDDEN SHADOWS V.2>(2025),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20개의 정사각형 구조물에 빛과 사운드가 동기화된 <NARROW V.2>(2017), 움직이는 빛과 소리로 구성된 키네틱 설치 작품 <NARCISSE V.4>(2025) 총 4점을 선보입니다.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노노탁의 작업은 빛, 사운드, 공간이 어우러진 설치 작업입니다. 미니멀 건축과 옵 아트(Optical Art)의 미학을 바탕에 두고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하고 구조의 본질에 집중해 반복되는 패턴과 착시로 시각적 환영을 완성했죠. 빛과 영상으로 이뤄진 구조물 사이를 지나갈 수 있고 무대처럼 구성된 작품 위에 올라가서 영상위를 걸으며 하나로 겹쳐지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휑하게 느껴지다가도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서 만들어 내는 영상과 리듬에 적응이 되면 제대로 몰입됩니다. 시작과 끝이 모호한 상태에서 무한 반복되는 상황도 즐기게 되고요.

촬영:네버레스홀리다

특히 DMX(Digital Multiplex) 조명 시스템으로 개별적으로 제어되는 <NARROW V.2>(2017)는 작품을 위해 제작된 음악과 정밀하게 동기화된 빛 디자인과 속도(리듬)가 주는 쾌감이 있어요. 저는 영화 '여고괴담'의 한 장면도 떠올랐어요.

촬영:네버레스홀리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본 작품은 <NARCISSE V.4>(2025)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15열로 배열된 75개의 정사각 거울이 움직이며 사운드스케이프에 맞춰 빛을 반사해 만드는 패턴이 압권입니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을 지어 움직이는 거울들이 정말 귀여워요. 소유욕이 불끈불끈 ㅎ


전시 작품이 많지 않지만 각 영상 재생 시간이 8분에서 21분까지이고 시간이 기재되었다고 해도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워 각자의 기억에 각인된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한정 보게 됩니다. 여유시간을 갖고 가셔야 하는 이유죠. 다매체 설치 작업 단독 유료 전시(성인 13,000원) 지만 전시 막바지라 할인 이벤트도 있고 무료 관람의 기회도 있으니 잘 활용해 보시고요. 게다가 얼마 전 2층까지 전시 공간을 확대했고 현재 2층에서는 세화미술관 소장 작품인 야요이 쿠사마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이정표〉도 볼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세 번째 전시는 아트선재센터(ASJC)에서 진행 중인《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Adrián Villar Rojas: 적군의 언어 The Language of the Enemy 》입니다. 이 작가를 잘 몰랐는데, '적군의 언어'라는 문장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은 이미지 하나로 머뭇거림 없이 전시장을 찾았죠. 이땐 발목이 불편해서 걷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어야 했음에도 '이 전시는 무조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사진이 너무 강렬했어요. 현장에 간 후에야 전시 콘셉트 상 전관을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고생이 헛되지 않은 전시였어요.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이번 전시는 아드리안 비야르(Adrián Villar Rojas, 1980~,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첫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팀원 11명이 아르헨티나에서 아트선재센터로 와서 6주간 현장 작업을 진행했어요. 장소 특정적 설치 미술작품으로 기존 작품에서 보인 요소들이 담겨있긴 하지만, 아트선재센터라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작품화한 단 하나의 작품이라, 전시 종료 후엔 동일 작품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조성한 비현실적 공간은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멸종된 인류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으스스하고 건조하며 낯설고 거친 느낌의 공간은 '멸종'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느끼게 해 줄 만큼 사실적이죠. 기존 건축 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빛을 사용해 공간을 밝혔고, 예술 작품을 공간에 배치하는 방식이 아닌 공간 자체가 예술작품이 된 전시라 '이것도 작품일까?' 하는 궁금증이 내내 이어집니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년간 아트선재센터 건축 구조와 골격을 세밀하게 파악했다고 하죠.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관람은 지하부터 시작됩니다. 원래 입구는 흙더미를 쌓아 통행을 차단했고, 제거된 임시 칸막이, 노출된 벽과 기둥이 마치 미완성 건축물 공사장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주죠. 기존 전시실 외에도 복도, 계단, 화장실, 영화관, 주변 공간을 포함한 4개 층 전체에 설치물이 있는데, 외부에 존재해야 할 것 같은 요소들이 내부에 존재하다 보니 내·외부 및 생태와 기관의 경계가 점차 흐려집니다.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하이라이트는 그의 진행형 역작인 <상상의 종말> (2022~현재)에 등장하는 키메라 조각들의 집합체입니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올법한 금속과 다매체로 구성된 괴생물체적 형상으로, 이건 굳이 뭐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알아요. 압도적이라.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장에는 작품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유영하며 '이것도 작품일까?'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내내 던지게 되죠. 작품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긴가 민가 하는 모든 건 작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번 작업에는 과거 연작에서 가져온 조각 작품 혹은 인공물도 있습니다. 작가의 설치작은 다매체적 작업의 혼합이라 사실, 한 번에 이해하긴 어려워요. 특히 이번 전시는 그 총 집합체라 그냥 봐도 시각적 경험의 재미가 있지만, 관련 영상을 보고 가면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Art You Can’t Control: Adrián Villar Rojas Builds Worlds That Evolve on Their Own(https://www.youtube.com/watch?v=HgBl8jZZWVE)' 영상을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한국어 자막으로 설정해서 보세요. 전시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전시 해설에 참여하세요. 회차별 예약이 필요하니 티켓 (10,000원) 예약할 때 전시 해설 예약도 함께 하면 되겠죠.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진행되지만 올해 안에 꼭 보길 권합니다. 앞으로 봐야 할 전시가 더 많으니까요. 전시 관람은 꽤 유용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아직 풀지 못한 것들은 오늘 소개한 전시 보며 싹 다 날려버리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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