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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un 15. 2023

 마흔 중반에 다시 일을 시작하다

공부방 선생님이 되었어요


다시 일을 시작하고 3개월이 흘렀다. 결혼 18년 차인 나는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공부방을 했다. 공부방은 내 집에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이다. 출산으로 중단되고, 육아로 중단되고, 코로나와 이사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공부방 선생님'은 가늘고 길게 이어가고 있는 나의 직업이다. 시작부터 따지면 햇수로 20년 차이고 쉬었던 시간을 빼도 10년은 했던 일이다. 처음 가르쳤던 초등학생들은 지금쯤 서른이 넘었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일을 쉬고 3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쉰 기간이 코로나와 맞닿아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쉰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하고 있던 공부방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을 하다가 쉬니 처음에는 편했다.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내 아이들도 챙길 수 있어서 마침 일을 쉬는 것이 더 잘 된 일 같았다. 그동안 공부방을 하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학부모와 아이들 때문에 지쳤었는데,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일하기 싫은 내 마음에 '집합 금지'라는 국가에서 부여해 준 정당성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1년이 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고 등교를 못 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나의 주부력은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매 끼니 밥을 차리는 일도, 아무리 치워도 금방 더러워지는 집도, 언제나 내 눈앞에서 근심거리를 배달해 주는 아이들도 지겨웠다.



다시 일이 하고 싶어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일거리를 찾아봤다. 집에서 다시 공부방을 하기에는 등교하지 않는 내 아이들이 걸렸다. 취직을 하기에는 내 나이와 내 경력은 참으로 보잘것이 없었다. 세상이 보는 나는 마흔 중반의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 같은 아줌마를 찾는 곳은 주로 식당이었는데, 주부력 바닥인 나는 그곳에서도 찬밥신세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생각보다 쓸모없는 존재였다.



현실을 자각한 나는 너무 가늘어져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공부방 선생님이라는 끈을 다시 떠올렸다. 다시 끈을 부여잡기 위해 교육청에 신고를 하고 집 한쪽에 커다란 책상을 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좋든 싫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방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홍보를 했다. 블로그도 하고, 아파트 게시판에 전단지도 붙였다. 두 달이 지나자 기다리던 아이들이 왔고, 이제 수업한 지 이제 3개월이 되었다. 드디어 다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돈 버는 일이 다 다 그렇듯 기쁨과 슬픔이 있다. 상처와 보람이 공존하는 이 일을 통해, 또 그만큼 배우고 단단해질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배우는 것들을 기록하며, 더 성장하고 싶다. 다시, 나는 독서 논술 공부방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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