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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ug 10. 2023

학원 보강은 학생의 권리인가?

호의에는 감사를




학원 진상맘 체크 리스트가 등장했다. 1순위는 놀러 간다고 말하면서 당당하게 보강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강이 몇 년 사이 학원가의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 보강을 말하는 엄마들의 자연스러움에 나도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이토록 쉽게 하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저희 가족이 몇 월 며칟날 여행을 갑니다. 수업 보강은 어떻게 되나요?" 예의 한가득 차려입은 이런 문자가 오면 나는 가슴이 덜컥한다. 여행을 선택하면 당연히 수업은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엄마들 입장은 또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도 싫고, 수업료도 아깝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게 싫은 것보다는 수업료를 낸 만큼 뽑아내겠다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학교에 온갖 진상맘이 판 치지만, 공짜로 다니니, 아무리 결석을 해도 보강 따위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사교육자 입장에서 보강은 두 배로 힘든 일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과 같다. 

"연극표를 예매했는데, 그날 마침 놀러 갈 일이 생겼어요.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날 시간되실 때 다시 한번 저를 위해 따로 연극을 해 주시겠어요? 제가 그 연극을 꼭 보고 싶고, 포기하면 돈이 너무 아깝거든요."

보강은, 연극배우에게 연극을 놓친 관객을 위해 다시 한번 연극을 펼쳐 보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무리한 부탁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 싶은데, 요즘은 그냥 다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같다. 학원은 많고, 아이는 귀하니 사교육업계에 갑을관계가 더욱 명확해졌다.


학생 한 명이 빠진다고 수업을 대충 할 수는 없다. 본 수업은 수업대로 하고, 다른 일정이 있는 시간을 쪼개어 빠진 학생을 위해 보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하다. 하지만, 나도 학부모이니 돈이 아까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거기에 아이의 성장을 돕고 싶은 교육자의 마음, 학생 이탈을 막겠다는 사업자의 마음이 합쳐져 보강 시간을 따로 잡고 만다.


'그래, 나 하나 힘들면 모두가 행복하니 보강해 주자.'

굳게 마음을 먹고 보강 수업을 하고 나면, 엄마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시간을 할애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따뜻한 말이나 문자를 건네는 엄마가 있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맡겨놓은 보강을 찾아가는 듯한 엄마를 대하는 것도 충분히 지치는데, 아이까지 협조를 안 하고 불성실하게 나오면 정말 수업할 맛이 뚝 떨어진다. 수업할 맛은 아이에 대한 진심에서 나온다. 없는 진심도 끌어올리는 것이 엄마와 아이의 말 한마디다. 사교육자도 교육자이기 때문에 아이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그 마음에 찬물을 끼얹지만 않으면 아이와 엄마, 사교육자는 모두 행복할 수 있다.


보강은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가 아니다. 보강은 사교육자의 명백한 호의다. 우리는 종종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래서 불편을 겪고 나서야, 그것이 과분하게 누렸던 누군가의 호의임을 안다.


아침부터 보강 때문에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서둘렀다. 보강에 본수업까지 하고 나니, 잠긴 목과 허기진 배가 남았다. 되려 나에게 간식을 달라는 그 아이와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지 않는 그 아이의 엄마가 겹쳐진다. 씁쓸한 마음을 더 쓴 커피를 마시며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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