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으로 을씨년스러웠던 캘리포니아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우리 동네 곳곳을 뒤덮은 재스민 연두잎 사이로 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봄이라고 특별히 색다른 먹거리도 특별히 맛있는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백반기행’ ‘동네 한 바퀴’ ‘생활의 달인’ 전현무계획’이다. 미국 좁은 집구석에서 한국 곳곳을 구경하고, 제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살아있는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온갖 맛난 음식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봄에는 이름도 생소한 여러 가지 봄나물을 보면서 그 맛이 어떨지 입안 가득 상상을 해본다.
취나물, 두릅, 방풍, 달래, 냉이, 유채나물, 봄동까지는 알겠는데 돌나물, 참나물, 머위, 세발나물, 부지깽이나물은 등은 낯설다. 그리고 ‘백반기행’ 강원도편에는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그러나 맛있어 보이는 생소한 나물들도 나왔다.
내가 가는 한인마켓에는 시들은 콩나물, 잘게 부서진 숙주나물, 질기고 아무 맛없는 시금치, 씨 많은 오이가 최선의 나물거리다. 아니면 언제 수확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냉동칸에 누워있는지 모를 냉동나물 몇 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심지어 식당주인의 텃밭에서 갓 뽑아온 나물에 들기름과 최소한의 양념을 넣고 주인장 손맛으로 만든 즉석 나물이라니.... 나에게는 다른 세상 얘기다.
다섯 가지 봄나물 보리밥에 정갈한 반찬까지 곁들인 음식가격이 만원 언저리라는 사실에 더 놀라고 짜증이 밀려온다. 미국에서는 그 어디를 가도 그런 밥상을 먹을 수 없고, 그 가격으로는 작은 햄버거도 못 먹는다.
나이 먹으면서 이제는 단짠도 매운 것도 부담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런 제철음식이 먹고 싶다.
오늘 집 가까이에 있는 한인마켓에 가서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봄맛을 느낄 수 있는 게 없는지. 그런데 시들시들한 채소 사이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무엇이 쌓여있었다. ‘마늘종’이었다, 그것도 억세지 않고 야들야들한.
들기름에 조물조물 무쳐먹을 수 있는 봄나물은 아니지만 나는 반갑고 심쿵했다. 그리고 대책 없이 몇 단이나 움켜쥐었다. 볶아먹던 데쳐먹던 무조건 내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이 봄나물(?)이 반갑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