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가을처럼 나도 갑자기 성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나의 마음은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음악을 듣던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갑자기 조금은 달라진 기분이 들었을 때 비로소 나도 이제 조금은 성인다워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에는 10대 때의 롤러코스터 타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것이 창피했고, 20대 때의 실수가 떠올랐던 30대의 저는 지금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 과거를 뒤바꾸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40대가 되어 뒤돌아보니 아이를 낳고 길렀던 30대 때에도 나는 온전한 성인이 되지 못했었구나 다 큰 줄 알았었는데 그 나이 때에도 나는 성장하지 못했었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조금만 덜 행동했었더라면, 조금만 덜 표현했다면 좋았을 시간들이 때때로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조금은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고 끄적이는 지금이 몇 년 뒤에 내가 본다면 또 가소롭게 느껴지고 부끄러워질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분명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된 것이 희미해진 '불호'입니다. 단지 체력이 떨어져서, 내게 남은 에너지가 현재의 생존에 쏟을 만큼만 남아있어서 희미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대단히 거슬리는 것이 없는 마음! 내가 마음으로 조금 성인이 된 것은 아닐까 느꼈던 것은 내가 느꼈던 '불호'의 다른 면을 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 때문입니다.
10대 때의 저는 TV 속 사람들이나 주위의 인물들을 나만의 잣대로 부정적인 품평한 적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쉽게 품평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은 20대나 되어서였습니다. 그렇다고 '불호'가 희미해진 것은 아니고 10대 때처럼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내뱉지 않았을 뿐 싫은 건 싫다였죠.
불호가 희미해진 데에는 '나는 안 좋아하지만 노력한 모습들이 보이긴 해'에서 추가로 '이런 면도 있구나'를 더하고 내가 싫었던 부분이 전부는 아니구나를 알게 된 어느 순간이었나 봅니다. 나는 이제야 이걸 알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더 빨리 알아채셨겠지만 4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좋아하는 것과 관심이 적은 것으로 나뉘었지 호 VS 불호가 아닌 게 되었다 에서 내가 조금 달라졌구나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 이것은 이래서 싫어라는 마음이 희미해지자 나의 미숙했던 예전 모습도 덜 떠올리게 되고 미워했던 주변의 사람에게 불필요한 부정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굳이 떠 올릴 필요가 없는 거였어! 생각이 난다 해서 그때 이 말을 못 한 게 후회된다라던가 그 행동은 하지 말걸! 에서 벗어나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이 된 것 같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미래에 나를 괴롭히면 또 미움에 빠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직은 (대비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고 나는 현재를 잘 살면 되는구나라고 결론 지은 후 편해졌습니다.
지금 싫어하는 것, 미워하는 것이 언제까지나 같은 마음이지 않을 것이라는 거, 단단하게 살면 추후에 후회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예전만큼 부끄럽지 않겠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희미해졌다는 거 자체가 왠지 모를 든든함이 되네요.
지난주 로또도 안 되었고, 기다려오던 공모전에 중요 수상자에게는 이미 연락이 갔을 거라는 걸 알고 살짝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결과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다음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갑자기 샘솟는 날이 오면 이렇게 주기적으로 버려준다! 얼마 남지 않은 24년을 알차게 보낼 하루를 살아보자 으쌰으쌰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