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서쪽, 소금창고라는 이름의 작은 동네에 소금창고 창작소가 있다. 구축 아파트 고층에 있는 이 창작소에는 40대, 10대, 만 5세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지망생 셋이 각자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혈연으로 이루어진 소금창고 작가지망생들은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각자의 독서기록을 바꿔 읽거나, 창작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창작소에서 제일 고령인 '밍님'은 주로 일기 같은 글을 쓰는데 핸드폰과 노트북에 쓴 글들이 수정, 또 수정을 거쳐 대충 완성본이 되었을 때 오래된 수동타자기로 타이핑한다. 이것이야 말로 독립출판이지! 라며 링노트에 글을 모아둔다.
이제 막 10대에 발을 들인 '솜' 작가는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작문이 가능하고 이미 노트 여러 개에 드래곤 판타지 소설을 탈고한, (나이 대비 노련한) 사실상 소금창고 창작소 작가지망생 중에서는 출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악필도 잘 알아볼 수 있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많이 조언해 줄 뛰어난 교정작가가 필요하긴 하다.
만 5세 '죠죠'작가는 자기 책 출간 의지가 매우 강하지만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까막눈이라 다른 작가 지망생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일단 그림을 그린 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른 두 작가지망생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뒤 그림 그리듯 따라 쓰는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어두침침한 하늘에서 왠지 모르게 쓸쓸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의 어느 날 '밍님'은 월초에 접수한 공모전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참가상이라도 받지 않을까 한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참가상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그녀는 수상작 발표 전날 그림을 그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그림을 그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아쉬워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격려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생각보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낙선에 대한 타격감은 금방 회복되었다.
그래 내가 쓴 글은 내 이야기라서 재미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의 마음은 글로 움직이지 못했구나. 다음 공모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써봐야지.
오늘 오후에는 소금창고 창작소 세 작가지망생들이 모여 그림 그리기로 했다. 각자 좋아하는 것 타자기, 드래곤, 트랜스 포머를 그릴 예정이다. 창작 활동이 끝나면 '밍님'의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기 위해 생크림 케이크 만들기를 할 것이다. 오전에 우산 쓰고 나가 뼈해장국 한 뚝배기 혼밥 하며 어린이들에게 찐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든 '밍님'이 동네 빵집에서 재료를 구입해 왔다.
'죠죠'가 오늘은 LP를 듣고 싶다고 아침에 부탁을 했으니 빙글빙글 레코드 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잡음이 섞인 포근한 음악을 들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