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츠타야(상)"에서 이어집니다.
2) 에고(Ego)
최초의 츠타야 서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다이칸야마마 T-Site의 츠타야 서점이다. 2011년에 오픈한 츠타야 서점이 최초로 주목받은 키워드는 ‘프리미어 에이지’로, 정년퇴직한 시니어 세대를 위한 문화 공간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끌었다. 지금도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물론 ‘어른 문화’(大人文化, 성숙한 어른을 위한 문화)지만, 그 타겟이 은퇴한 시니어 세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고객층의 변화는 차치하고 츠타야 서점이 시니어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당초 기획되었다는 점은 생각보다 많은 점을 시사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기획의 핵심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인지,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공간인지 등의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평가한다고도 답하곤 한다. 자기모순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답변에 대해 마스다 무네아키는 극한으로 ‘에고’를 밀어붙이면 대중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해설한다. 얼핏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진부한 표현에 가까운 답변이다. 그러나 이 ‘에고’라는 관점만큼 TSUTAY에서 츠타야 서점으로의 변화를 잘 설명하는 관점도 없다.
“시장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스스로를 보는 것이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감동하는 무언가를 아는 것. 이를 연마하고 연마하고 연마하여 제시한다면 (자신과) 유사한 사람이 분명 기뻐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극한의 에고이다.”
- 마스다 무네아키 CCC 회장
필자가 에고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실제로 마스다 무네아키 회장이, 그가 츠타야 서점을 기획할 때 타겟팅한 ‘프리미어 에이지’인 시니어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대를 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전후 베이비 부머 세대)라고 부른다.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견인한 세대이자, 잃어버린 10년(혹은 20년) 이전의 희망에 가득찬 세대이다. 그들은 마스다 무네아키의 표현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라는 양 측면에서 주역이 될 세대”이다. 70년대에 취직해 80년대 무렵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성을 얻은 이 세대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는 TSUTAYA의, 츠타야 서점의, 그리고 CCC의 거시적인 흐름이 이 세대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는 70년대에는 생산의 주역이었으나, 80년대부터는 점차 소비의 주역이 된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그들은 마스다 무네아키의 표현에 따르면 ‘생활의 패션화’라는 물결을 이끌었다.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워크맨과 ‘POP EYE’를 필두로 한 다양한 패션잡지의 창간, 시티팝이라고 불리는 음악의 등장 등 ‘생활의 패션화’는 사회 곳곳에 등장했다. 이런 풍요로운 문화의 홍수 속에서 영화와 음악, 그리고 책을 함께 제공하는 상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들을 한 곳에서 공급하는 플랫폼으로서 TSUTAYA를 만들었다. 애초에 TSUTAYA 자체가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이 말한 것과 같은 ‘에고’에 의해, 단카이 세대의 당사자이기도 한 본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인 것이다.
본인으로 대표되는 단카이 세대의 니즈를 좇아 사업을 성장시킨 CCC가 기존의 TSUTAYA와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설렘의 공간인 츠타야 서점을 만든 배경도 바로 이 단카이 세대의 니즈와 연결되어 있다. 단카이 세대의 나이는 2011년에 5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이다. 2000년대 말, 2010년대 초는 일본의 생산과 소비를 모두 형성한 최초의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인 것이다. 소비사회화를 이끈 주역은 다시 마스다 무네아키의 표현을 빌려 ‘생활의 패션화’를 이끈 주역이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자각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세대”이다. 20대 중반, 30대 초반의 나이로 TSUTAYA를 찾기 시작한 당시의 고객이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갖춘 완숙한 성인이 되어 다시 CCC를 찾도록 만드는 것. 그렇기에 TSUTAYA를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의 안목, 본인의 욕구를 믿고 그 욕구를 다시 지금의 시점에 적용한 것이 바로 츠타야 서점이다.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이 속해있기도 한 ‘프리미어 에이지’는 일본의 사회에서 처음으로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갖춘 퇴직 세대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는 항상 TSUTAYA가 함께 했다. 영화와 음악, 책과 커피로 대표되는 ‘여유’를 영위한 최초의 세대가 완전한 여유를 맞이했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을까? 라는 관점이 곧 TSUTAYA라는 ‘멀티 패키지 전략’의 플랫폼에서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 서점으로의 변화를 설명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츠타야 서점에 대해 “책을 통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이라고 말한다. 개별 영화나 음악, 책이나 잡지의 콘텐츠는 핵심이 아니다. 그 콘텐츠의 분위기, ‘피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의 것으로 체득하기 위한 ‘본질’(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멀티 패키지 전략’의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도 책이 중심에 오기 적합한 매체였다. 책은 영화나 음악에 비해 물질성에 구속을 많이 받지만, 그 동시에 구속으로 인하여 여전히 소프트웨어 보다는 하드웨어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1) 영업이익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점, 2) 영업이익의 하락세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이폰이라는 새 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새롭게 개화된 소비자의 욕구에 의한 것이라는 점, 3) 소비자의 니즈는 CCC의 핵심인 문화 콘텐츠 유통업 자체의 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 그리고 4) 서적/잡지 판매 수익은 그럼에도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라는 4가지 외적 요인과 1) 새로운 니즈에 부합하는 새로운 상품/서비스/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기획회사’ CCC의 사업이라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에 관한 생각, 2) 그 자신이 단카이 세대의 일원으로서 CCC의 성장을 동세대가 은퇴 후에 무엇을 원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기획’에 관한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츠타야 서점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를 찬성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사내에서도 마스다 무네아키의 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그를 제외한 사내 경영진 전원이 츠타야 서점의 기획안에 반대했다. 츠타야 서점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마스다 무네아키라는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경영자유도를 높이고 사업의 재구축을 서두르기 위해 비상장을 결심한다. MBO(Management Buy-Out)를 위해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이 전액을 출연한 MM홀딩스를 설립해 비상장화를 진행했다. 사내 경영진 모두가 반대할만한 기획은 기존의 프랜차이즈 사업 TSUTAYA와 선을 긋는 기획인 동시에 향후 CCC의 존망을 건 기획이었고, 분명히 많은 초기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단기적으로 영업이익이 축소되거나 이익율이 떨어지고 현금흐름이 악화되어 주주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비상장을 진행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획안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대규모 사업전환을 위한 비상장은 2011년 7월에 완료되었다. 그해 12월, 다이칸야마 T-Site가 오픈했다.
TSUTAYA 이전에 ‘취향'이 없었고, 츠타야 서점 이전에 ‘라이프스타일'이 없었다.
츠타야 서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큐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이다. 실제로 CCC는 생활제안을 하는 공간으로서 츠타야 서점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츠타야 서점이 판매하는 것이 개별 콘텐츠가 아니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츠타야 서점은 개별 콘텐츠가 담고 있는 분위기, ‘피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돕는 ‘본질’을 파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와 관련해 마스다 무네아키는 “츠타야의 매장은 상품이 쓰이는 생활을 보여주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츠타야 서점은 단지 더 좋은 상품을 보여주기 위한 쇼룸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보여주기 위한 쇼룸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도 더 좋은 삶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츠타야 서점을 찾는다.
다시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하는 ‘기획’으로 돌아가보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의 핵심은 격차이다. 소비자(니즈)와 생산자(제품)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도식을 그대로 CCC에 적용해보자면, TSUTAYA는 당시 콘텐츠가 범람하기 시작하고, 또 범람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춘 ‘소비자'가 일본 사회에 등장한 ‘세컨드 스테이지'의 특성을 활용한 사업모델이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이를 한 곳에 모아서 정리해주는 플랫폼으로서 성장한 것이 TSUTAYA이다. 이후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채널이 다각화되자 과도한 콘텐츠를 과도하게 많은 플랫폼에서 유통하는 혼란 속에서 이를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제안할 수 있는 큐레이션 능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큐레이션의 능력을 갖춘 새로운 공간이 바로 츠타야 서점이다.
TSUTAYA: 과도한 콘텐츠 -> 플랫폼의 등장
(세컨드 스테이지)
츠타야 서점: 과도한 콘텐츠 & 플랫폼 -> 큐레이션
(써드 스테이지)
그렇지만, TSUTAYA의 성공도, 츠타야 서점의 성공도 모두 이 ‘세컨드 스테이지’와 ‘써드 스테이지'라는 거시적인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에 기인한 것일까? 필자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이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콘텐츠와 플랫폼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본주의를 여러 단계로 구분하는 새로운 도식은 참신하고 시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흐름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CCC의 성공을, TSUTAYA나 츠타야 서점의 성공을 확정짓지 못한다. CCC의 성공은 시대를 읽어내는 문해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덕분에 가능했다. 2020년 지금에 와서야 ‘취향'이라는 단어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도 상당히 일반적으로 쓰이고, 또 스스로의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만, TSUTAYA가 만들어진 80년대 초반 이전에, 그리고 츠타야 서점이 만들어진 2010년대 초반 이전에 과연 ‘취향'이라는 단어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사전적인 의미 이상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는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깊이 박혀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욕구가 충족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라이프스타일' 보다는 '취향'이라는 개념을 공유할 수 있는 (혹은 체화할 수 있는)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서 살롱이 유행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으로 일본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 츠타야 서점이 유행한 것이다. ‘살롱'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 전까지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 몰랐던 것처럼,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츠타야 서점 전까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있는지 몰랐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라이프스타일'이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전에 있던 유의어인 ‘생활양식’이라는 말은 보다 큰, 거대 국면의 변화에 따라 통일적으로 변화하는, 말하자면 도시화나 산업화, 정보사회화 같은 거대담론에 의해 후행적 혹은 타의에 의해 변하는 삶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CCC가 창조한 ‘라이프스타일'은 보다 미시적으로 개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자각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공간을 커스텀하는, 선행적이고 자의적인 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개개인도 몰랐던 숨겨진 욕망을 먼저 발견한 선지자이다. 그는 개개인이 더 나은 삶이나 혹은 쉽게 말해 ‘멋진 삶'을 추구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나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이 형언할 수 없는 욕구에 ‘취향'이라는 단어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을 붙임으로써 그 욕구를 가시적인 것, 나아가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로 바꿔놓았다. 흔히 ‘소비자도 모르는 숨겨진 욕망을 파악해 소비자가 요구하기도 전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혹은 그런 행위가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은 결국 마케팅의 이상에 가까운 것이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욕망(가령 패션을 위한 샘플이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형성한 이미지가 실제로 구현된 집적물을 향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형상을 부여하기 위해 창조된 개념이 바로 인공어(취향/라이프스타일/큐레이션)
마스다 무네아키는 본인이 생각하는 기획의 핵심이 ‘개념의 창조'임을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다. 츠타야 서점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출판한 저서 <라이프스타일을 팔다>에서 TSUTAYA와 츠타야 서점에 대해 각각 이렇게 말한다.
TSUTAYA
“사회적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패션을 확립하기 위한 샘플이 필요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지, 자신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과 척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츠타야 서점
“TSUTAYA는 집적된 엔터테인먼트 소프트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발견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에서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의 대규모 스토리지를 꿈꾸는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는 라이프스타일 마켓이 되고자 시작했던 TSUTAYA의 도달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TSUTAYA에서는 사람들에게 샘플로서 ‘취향’을 제공했다면, 츠타야 서점에서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아이템으로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 이때, 소비자에게 TSUTAYA와 츠타야 서점은 유일무이한 새로운 개념의 소장고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영화와 음악, 그리고 서적을 한 곳에 모아서 판매한 최초의 TSUTAYA가 ‘취향'의 샘플을 제공하는 유일한 가게로서 성장했다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상품을 기획/전시/판매한 츠타야 서점은 ‘라이프스타일' 이미지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공하는 유일한 가게로서 성장했다. 여기서 유일한 가게라는 사실은 TSUTAYA와 츠타야 서점을 ‘소장고’라고 인식하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태도와 결부되면서 TSUTAYA의, 그리고 츠타야 서점의 성공을 보장해주었다.
‘소장고'라는 개념은 마스다 무네아키가 생각하는 렌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대여에 대해 “대여가 ‘고객의 소유’라는 개념을 확대시켜주는 서비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상이나 음악 소프트는 의식주와 달리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중략) 고객을 대신해서 ‘있으면 좋겠지만 매순간 필요한 것은 아닌 특수한 상품’을 소장해두는 곳, 이것이 바로 대여 매장의 본질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TSUTAYA가 ‘소장고'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TSUTAYA는 사양길에 접어들 수 밖에 없다. 개개인이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또 심야 시간대에도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아예 소유권 자체를 일시적으로 구매하는 구독 경제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소장고'로서 매장의 개념은 렌탈 이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츠타야 서점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이때의 ‘소장고’는 소유 개념의 확장으로서 TSUTAYA의 그것과는 다른 함의를 지니지만, 다양한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갖춘 디포짓(deposit)이라는 관점에서는 유효하다. 그리고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욕구를 직접적으로 언어화하며 새로운 개념을 만든 CCC가 직접 운영하는 츠타야 서점은 새로운 ‘개념'을 유일하게 담고 있는 소장고가 된다. 소비자는 언제든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을 때, 다른 취향을 개척하고 싶을 때 츠타야 서점을 찾을 것이다. 츠타야 서점에는 없는 ‘라이프스타일'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츠타야 서점이라는 색다른 기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라이프스타일'에 엄청난 당위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부분을 마스다 무네아키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획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에고'를 강조하는 만큼, 츠타야 서점은 당초 자신의 동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기획되었을 터이다. 물론 단지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하는 프리미어 에이지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 마스다 무네아키 본인도 이 공간이 젊은 세대와 시니어 세대가 교차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교류가 ‘라이프스타일'을 정언명령(무조건 지켜야 할 도덕적 명령)으로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프리미어 에이지가 다이칸야마에 모이게 되면 이를 동경하는 젊은이들도 반드시 모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동경했던 삶과 실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자신도 그런 삶에 참여할 수 있고, 그것이 확실하다면 젊은이들은 반드시 모일 것이다. (중략)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는 프리미어 에이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장치임과 동시에, 세대를 뛰어넘는 파급력을 지닌 장소다. 파급력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 마스다 무네아키 CCC 회장
젊은 세대를 끌어모으는 자력을 갖춘 장소라는 점은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대로 흘러갔다. 일본 경제의 황금기를 만들고, 소비사회의 흐름을 개척하고 또 은퇴 이후까지도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베이비 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라이프스타일'의 추구를 강제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츠타야 서점은 이 동경의 마음을 십분 활용한다. 다이칸야마 T-Site에서 중요한 요소는 ‘컨시어지'이다. 츠타야 서점의, T-Site의 컨시어지는 단지 책을 안내해주는 매장 직원이 아니다. 츠타야 서점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의 전문가이다. 그들은 츠타야 서점이 큐레이션하는 주제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활용해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아이템을 추천해주는,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선구자이다. 젊은 세대는 컨시어지가 겪은 시행착오와 그들이 힘을 쏟아 얻어낸 경험을 바탕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는 건 ‘라이프스타일' 굿즈를 충실하게 사용해낸 컨시어지의 경험이다.
소비자: 물건을 통해서 경험을 구매 vs 츠타야: 경험을 통해서 물건을 판매
‘라이프스타일'이 당위를 갖는 까닭은, 지금의 일본 내 청년 세대, 즉 흔히 사토리 세대라고 불리는 세대가 이전과 같은 경제력을 결코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얼핏 모순적인 생각이다. 취향이니 라이프스타일이니 하는 단어가 의미를 갖게 된 배경이 생산량의 증대로 인한 경제적인 여유와 소비사회화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금전적 여유가 없는 세대가 오히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게 된다는 발상은 형용모순적이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앞선 세대보다 결코 더 잘 살 가능성이 없는 사토리 세대에게 황금기의 프리미어 에이지를 위한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조금 노력하면 살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반드시 가져야할 무언가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