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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오리즈 Jun 30. 2020

3-2.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하)

할리우드의 실리콘밸리

본 글은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상)"에서 이어집니다.3-2.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 (상)



<오늘의 글 미리보기>

1. 넷플릭스는 왜 굳이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을까

2.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HBO MAX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콘텐츠 플랫폼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넷플릭스의 최고콘텐츠책임자(CCO)에 재임 중인 테드 서랜도스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DVD를 대여해주던 시절에도 DVD 이후의 시대를 그리고” 있었다. 그만큼 스트리밍 업체로의 전환은 계획적이었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통신 속도와 개인용 통신기기의 성능이 영상콘텐츠 스트리밍에 충분해질 때를 기다렸으며, 2007년 경 적절한 시기가 다가오자 주저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주종목을 변환했다. 그 결과 2007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DVD 대여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한 반면, 넷플릭스의 구독자는 700만 명에서 33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넷플릭스에 있어 가장 최근의 전환점은 2013년의 “하우스 오브 카드” 출시이다. DVD 대여업에서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플랫폼에 머물러 있었던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제작한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하우스 오브 카드는 대박을 쳤고, 콘텐츠 제작자로의 변모는 본격화됐다. 이 지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 콘텐츠 플랫폼은 콘텐츠 제작자가 되어야만 했는가. 콘텐츠 플랫폼에 있어 오리지널 콘텐츠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HBO 같은 콘텐츠 제작사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기 전에, 넷플릭스가 먼저 독자적 콘텐츠를 갖춰야만 했다.”  

- 테드 사란도스, 2013년, GQ와의 인터뷰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이 계획적이었던 것과 달리 독자 콘텐츠 제작은 계획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초기에 넷플릭스가 플랫폼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취했던 전략은 독자 콘텐츠 제작보다는 콘텐츠 판권 독점계약이었다. 넷플릭스는 Starz와의 계약을 통해 수많은 콘텐츠를 제공받았으며, 디즈니와의 계약을 통해 디즈니 영화 최신작 일부를 독점 공급받기도 했다. 이 같은 독점계약은 넷플릭스가 타 콘텐츠 플랫폼과 케이블 TV로부터 차별점을 가졌던 방식이었으며, 동시에 자사의 시장가치를 올리던 방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넷플릭스가 독자 콘텐츠 제작에는 관심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입장을 표명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선가 넷플릭스의 기조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는 콘텐츠 제작사 및 배급사들의 요구 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전환 후 최초 계약 시점에서는 DVD 대여가 여전히 주류였기 때문에 높지 않은 가격에 스트리밍 판권 계약을 맺었겠으나, 스트리밍 시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는 이전과 다른 이해관계가 작동했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지켜본 콘텐츠 제작사들은 재계약 때에 더 높은 계약금을 요구했고, 넷플릭스로서는 콘텐츠를 외부 업체에 의존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넷플릭스는 독자 콘텐츠 제작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이전에 비하면 훨씬 넉넉하고 안정적인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콘텐츠 제작사들의 비협조적 요구 조건이 콘텐츠 플랫폼마저도 콘텐츠 제작자로 변모하게 만들었고, 그와 동시에 콘텐츠 제작사들 역시 독자적인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디즈니 플러스, HBO 맥스, NBC의 peacock 등 수많은 플랫폼(몇 해 전부터는 OTT라고 통칭하는 서비스)이 생겨났다.



2018년 11월 기준, 넷플릭스 콘텐츠의 시청률. 붉은색 막대는 타사의 콘텐츠임을 의미. "프렌즈"와 "오피스"가 넷플릭스 내에서 차지하던 위상을 알 수 있다.


    플랫폼에 있어 오리지널 콘텐츠의 확보는 불가피하다. 이는 어느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가와 관계없이 미디어 콘텐츠라는 상품이 동질적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즉 소비자 입장에서 시청하고자 하는 콘텐츠가 정해졌다면 어떠한 플랫폼을 선택하든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에 차이가 없다. OTT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지 않은 소비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많은 플랫폼을 선택해 구독할 것이며, 기존에 구독 중이던 소비자는 본인이 사용하던 플랫폼에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으면 보고 없으면 못 볼 뿐이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지 못하는 정도가 지나친다면 마침내 구독을 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의 발달로 방송과 디지털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한다. 과거에는 복잡한 유선 방송망을 구축해야만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었으며, 방송망 구축에 필요한 방대한 설비는 방송 사업자들에 과점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콘텐츠의 유통이 인터넷 스트리밍 기반으로 옮겨가며, 누구나 어렵지 않게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킬러 콘텐츠를 보유한 제작사들이 직접 OTT 서비스를 출시하고, 타 플랫폼들로부터 자사의 콘텐츠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디즈니는 자사의 상품을 넷플릭스에서 수거해간 지 오래이며,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인 프렌즈와 오피스 역시 2020년까지는 유통시킬 수 있으나 각각 워너 미디어와 NBC 유니버설에 반환될 예정이다.


    넷플릭스가 타 제작사의 킬러 콘텐츠들을 유통시킬 권한을 받아올 때는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이 작을 때였고, 현시점에서는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시장인지 넷플릭스 스스로 증명해 보인 상태이다. 넷플릭스의 시장 가치가 상승할수록 온라인 스트리밍 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넷플릭스가 아마존프라임비디오나 훌루에 맞서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던 2010년도 이전 시기와 현재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모든 콘텐츠 제작사들은 자사의 플랫폼을 직접 구축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이루었고, 콘텐츠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자의 경계는 무너졌다. 콘텐츠 플랫폼이 그저 플랫폼에 머무른다면 오리지널 콘텐츠의 부재로 플랫폼으로서 작동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9년 한 해만 하더라도 콘텐츠에 18조 원을 투자했으며, 2020년에는 전년도보다 11% 상승한  20조 원 규모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매년 지속해서 투자 액수를 늘려 2028년에는 30조 원 규모를 투자할 것으로 추정된다.




콘텐츠 플랫폼 출신 콘텐츠 제작사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는가


    OTT 춘추전국시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국내외에 수많은 OTT들이 난립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선도업체의 지위를 지니고 있기는 하나, 화려하고 방대한 킬러 콘텐츠들을 갖춘 콘텐츠 제작사들이 본격적인 서비스 운영에 나설 경우 넷플릭스는 그 틈새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시된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확보가 OTT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하게 된 현시점에서, 플랫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넷플릭스가 과연 생존할 수 있겠는가. 소비자들이 디즈니플러스가 아니라 굳이 넷플릭스를 구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둘 이상의 OTT를 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디즈니플러스와 HBO Max가 아니라 굳이 넷플릭스를 구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를 논하기에 앞서 두 가지 개념을 먼저 비교해보고자 한다. 


    영상 콘텐츠를 비롯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소비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목적형과 발견형(혹자는 이를 탐색형이라고 칭한다)이다. 

    목적형 소비는 말 그대로 소비자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상품을 탐색하여, 다양한 유통 경로와 구매 방식을 비교한 후 최상의 조건으로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목적형 소비의 경우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은 정해져 있다(모든 경우에 있어 한정된 범위 내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뜻이 아니라, 각 상황에 대해서 확정된 상품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정확히' 원하는 상품을 ‘최대한 빠르게' 전달해주는 데 경쟁력이 존재한다. 그 이상의 여지는 특별히 없는 듯하다. 오늘날 국내 커머스 산업의 경우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이 목적형 소비의 니즈를 가장 잘 충족시키고 있다. 쿠팡은 ‘최대한 빠르게’에 방점을 두어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네이버쇼핑은 검색 포털이라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소비자가 여러 판매업체를 비교한 후 가장 원하는 상품을 가장 원하는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발견형 소비는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판매처에 접근한 것은 아니지만, 탐색하다 보니 특정 제품에 관심 및 흥미가 생겨 이를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고 그 결과 실제적 구매에 까지 이르게 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목적은 없이 백화점에 방문해 아이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해 결국 구매하는 경우를 떠올리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개념이다. 커머스 산업에 있어서는 29cm나 마켓컬리가 대표 주자이다. 각각 주력으로 삼는 품목은 의류와 식품으로 다르지만 두 플랫폼 모두 제품 그 자체보다 각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9cm와 마켓컬리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품목에 대해, 어떤 소명과 함께 시작된 품목(브랜드)이며, 어떤 궤적을 밟아 브랜드가 성장해왔고, 소비자가 이를 구매했을 시에 일상 속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다만 발견형 소비 그 자체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특정 플랫폼에서의 발견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유달리 살게 없어도 ‘심심하니까' 그 플랫폼에 접속해 시간을 보내겠지만, 그 플랫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고객들은 ‘굳이' 그 플랫폼에 접속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소비자들이 많고 많은 플랫폼 중 굳이 그 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마켓컬리가 ‘신규 가입하면 모짜렐라 핫도그 5개 100원’과 같은 프로모션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일단 새로운 고객이 유입이 되어야 발견형 소비가 작동하든 말든 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왜 했느냐? 콘텐츠 제작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OTT와 콘텐츠 플랫폼에 뿌리를 두고 있는 OTT가 소비자들을 어떻게 소구하는지 비교하기 위함이다. 스타워즈의 오랜 팬들은 <더 만달로리안>을 보기 위해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지만, 하룻밤 새 정주행을 완료하면 구독을 해지한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어떠한 콘텐츠를 제공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각 콘텐츠가 어떠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배우가 출연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마블의 콘텐츠가 어떤 분위기인지, 픽사의 콘텐츠가 어떤 분위기인지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디즈니가 추천해준 콘텐츠를 감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그 스튜디오 작품들은 내 취향이 아냐.’라는 선입견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목적형 소비가 발견형 소비로 전환되지 못하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 그리고 다수의 OTT들은 목적형 콘텐츠 강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한다. 그러나 그 콘텐츠의 제작 방식에 있어 중앙집권적이다. 좁게 보면 할리우드, 넓게 보면 미국 위주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이 디즈니의 방식이다. 많은 지역이 서구화된 오늘날, 할리우드의 문화가 지구의 문화 그 자체로 인식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만화 원작에서는 동양인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에이션트 원이 영화에서는 백인으로 표현되는 등 미국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탓에 각종 논란거리가 잔재해 있다. 디즈니는 전 세계의 콘텐츠를 모티프로 삼으나, 여전히 할리우드가 인식하고 이해하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풀어쓴 콘텐츠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그들의 콘텐츠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콘텐츠이다.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콘텐츠 포트폴리오


    반면 넷플릭스는 확장 그 자체가 목적인 플랫폼에서 시작했으며, 현재 중국과 북한, 시리아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양적인 차원에서 넷플릭스가 많은 국가,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함이 아니다. 어벤저스나 스타워즈에 상응하는 수준의 킬러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 넷플릭스는 새로운 국가의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타 OTT들과는 다른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고객들을 소구하기 위해 내세우는 콘텐츠가 <만달로리안>과 <로키>, <완다비전>이며, 넷플릭스의 한국 고객 대상 킬러 콘텐츠는 <킹덤>이나 <범인은 바로 너>, <옥자>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디즈니의 콘텐츠는 전 세계적 프랜차이즈인 어벤저스와 스타워즈의 유산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지는 못한 넷플릭스는 로컬 스타인 유재석이나 봉준호, 그리고 사극과 같은 로컬 소재를 적극 활용해 한국 고객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넷플릭스는 각 시장에 최적화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 각 시장의 소비자들이 해당 콘텐츠를 시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넷플릭스에 발을 들일만큼 매력적이면서도 친숙한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되었다. 위 그림에서 <3%>는 브라질 오리지널이며, <Queen Sono(스파이 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오리지널이고, <Sacred Games(신성한 게임)>는 인도 오리지널이다. <La Casa De Papel(종이의 집)>은 스페인 오리지널이고, <Tidelands (타이드랜드)>는 호주 오리지널이다. 단순히 해당 지역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오리지널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감독들이 해당 지역 고유의 분위기가 담긴 대본을 가지고, 해당 지역 배우들의 연기로 담아낸 작품이란 점에서 유의미하다. 브라질의 영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화, 인도와 스페인, 호주의 영화는 기존 넷플릭스의 소비자들이 기존에 감상하던 콘텐츠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한 달 무료 체험권을 얻어 유입된 신규 고객들은 자신이 보고자 했던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시청한다. 미국 고객들의 경우에는 ‘하우스 오브 카드’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며, 한국 고객들에게는 ‘킹덤’이 넷플릭스에 유입되어야 할 ‘목적'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형 소비를 마친 후에도 무료 체험 기간은 남아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탐색의 유인을 느끼고 새로운 발견에 나선다. 광고에서 한 번쯤, 혹은 친구에게서 한 번쯤 들었던 콘텐츠(‘기묘한 이야기’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까)에서 시작하겠으나, 긍정적인 이용경험이 누적되면 점차 더 낯선 콘텐츠에까지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그리고 추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수록 고객들은 콘텐츠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질 것이며, 마침내 넷플릭스를 매월 구독하며 끊임없이 ‘발견형 소비'를 이어 나가는 헤비유저(킹덤의 갓을 보고 신선함을 느끼는 외국인들과도 같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넷플릭스가 단순히 미국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해외에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넷플릭스 생태계 내의 사람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런 맥락에서 넷플릭스는 각 지역 스튜디오들의 연합 플랫폼처럼 다가온다. 넷플릭스는 각국의 로컬 콘텐츠 비중을 높이며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 내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Flywheel


    DVD 대여 사업자에서 스트리밍 사업자로 전환할 때에도, 콘텐츠 플랫폼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전환할 때에도, 넷플릭스의 본질은 기존의 공고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기술로써 타파하는데 위치한다. 현재 넷플릭스의 기술은 소비자의 취향을 세분화하고 그에 최적화된 영화를 추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진정한 강력함은 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창작자들을 외주 업체로 두는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에 위치한다. 소비자 취향 분석 기술이 다양한 콘텐츠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투자자가 선발한 제작자로 하여금 투자자가 선별한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하는, 일방향적 미디어 생태계의 디즈니와 양방향적 미디어 생태계의 넷플릭스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결코 비슷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고객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정한 가치를 담아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스토리는 철저하게 로컬 제작자들의 권한으로 넘기고 넷플릭스가 평가하는 것은 단지 해당 콘텐츠가 자사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해당 콘텐츠를 시청할 것인지 판단하고, 그 효용이 제작사가 요구하는 계약금보다 크다면 투자한다. 넷플릭스의 고객중심 경영, 데이터 중심 경영은 진정한 의미에서 콘텐츠의 다양화에 일조하고 있다.




롱테일 전략과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는 온라인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라 HBO 같은 TV 네트워크가 되고자 한다. (다만 TV 네트워크보다는 '온라인 상의 TV 네트워크'라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 것이다.) 넷플릭스가 그리는 미디어 생태계는, 사람들이 다양한 기기를 넘나들며 시청하고(N-Screen; 어디서든; 공간 제약의 극복), 다음 편을 기다리기보다는 여러 편을 몰아보고 정주행하는(Binge Watching; 언제든; 시간 제약의 극복) 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경쟁자로 삼고 있는 업계는 기존의 케이블 방송사들이지 타 OTT 업체들은 아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기존 케이블 방송사들은 시류에 뒤떨어지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따라서 도태되어야 할 대상이나, 타 OTT 업체들은 미디어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존해야 할 대상이다. 넷플릭스는 (유튜브와는 달리) 미디어의 모든 영역을 제공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넷플릭스는 적어도 현재로써는, 스포츠나 뉴스, 게임, 음악과 같은 영역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영화와 드라마에 집중할 것이라 천명한다. 넷플릭스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OTT 업체들을 구독하면서도 넷플릭스를 ‘여전히' 구독하기를 원하지, 오로지 넷플릭스만 구독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콘텐츠 제작자로서 발을 떼기 시작한, 그러나 여전히 콘텐츠 플랫폼이기도 한  넷플릭스는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을 공략하고자 할 것이고 이를 위한 전략으로써 보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다. 그 콘텐츠는 넷플릭스가 공언하는 바와 같이 영화와 드라마라는 형식 속에 담길 것이나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과 문화 그 자체는 형식을 초월해 유의미하다. 각 문화권이 독자적으로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제한된 시장 크기로 인해 존속되기가 쉽지 않았다. 로컬 문화는 그 문화권 내의 사람들로 소비자가 제한되어 왔으며, 제한된 크기의 수요처로 인해 투자의 규모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환경에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제작한 주류 할리우드 문화와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 덕분에 로컬 문화의 사장 위기가 덜해졌다. 인터넷 기업 넷플릭스는 한국의 사극과 같이 가장 로컬한 문화일지라도 지구 건너편 누군가는 이를 기꺼이 소비하고자 함을 증명해보였고, 시장성을 입증함으로써 로컬 문화를 수호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콘텐츠에 빠져들어 시청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며, 콘텐츠의 다양성은 소비자들이 넷플릭스를 지속적으로 구독해야 할 이유로 자리할 것이다. 넷플릭스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문화가 존속되고 미래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한줄평: 모든 문화권 콘텐츠의 집합소,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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