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은 로컬문화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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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롱의 본질을 업의 본질에 비추어 추출해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살롱의 본질에 비추어 주요 살롱들의 사업계획을 평가할 시간이다.
서울시내 주요 살롱은 크게 지역기반 살롱과 취미기반 살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특정한 공간, 주로 건물을 거점으로 삼아 이루어지고, 후자는 독서나 운동, 영화 등 특정한 취미를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전자의 예시로는 망원동에 위치한 취향관을 들 수 있을 것이고 후자의 예시로는 강남에 12층짜리 건물을 올리는 것으로 이름을 알린 트레바리가 있을 것이다. 지역기반의 살롱은 구체적인 비전이나 앞으로의 사업상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취미기반 살롱 중에서도 여러 장소에 공간을 가지고 있는 트레바리와 문토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들겠다는 사명을 가진 트레바리를 살펴보자.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트레바리는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등 언론에서 비춰진 유명 인사를 클럽장으로 대거 섭외하였다. 살롱의 본질인 새로운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 유명인사를 섭외하는데 있다면, 또 다른 본질인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은 보다 담대하다. 트레바리는 강남에 오로지 독서모임을 위한 건물을 짓고 있다. 이 건물의 1층에는‘카페 뎀셀브즈’의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며 2층에는‘더 부즈(The Booze)’의 위스키 바가 오픈할 예정이다. 지하 1층에는 수제 맥주 브랜드 ‘더부스(The Booth)’가 오픈하며 트레바리 멤버라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건물 최상층에는 성수동 재즈 바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에서 기획하고 운영하는 재즈 클럽 ‘스몰 원더스’가 들어선다.
트레바리보다 본격적으로 다양한 취향을 가진, 혹은 키우고 싶은 이들의 니즈들 자극하는 소셜살롱 문토 또한 트레바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문토는 <월간 미술> 에디터, <시사저널> 경제팀 팀장, <예술의 전당> 클래식 음악 전문 기획자, <수요미식회> 출연 셰프를 비롯하여 현재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이끄는 모임을 기획하고 있다. 문토의 경우 정말로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취미를 얻고, 개성을 발현하기 위한 준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자처한다. 문토의 이미리 대표는 “취향은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없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결국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온, 그리고 앞으로 축적할 ‘나’만의 체험이 경험이 되고 온전한 ‘나’의 것으로 남게 된다는 뜻이다.
살롱의 본질은 물론 낯선 사람과 세련된 공간이 맞다. 이를 위해 트레바리도 문토도 보다 적극적으로 어떤 특정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는 유명인사를 섭외하며 출혈적 경쟁에 빠지고 있다. 유명인사의 명성에 이끌리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살롱을 찾을 것이고, 구성원의 순환을 담보해줄 것이다. 새로운 이들이 왔다가 떠나는 순환은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대화가 펼쳐질 가능성을 잠재하게 해준다. 그러나 유명인사를 초청하는 살롱의 경쟁은 높은 멤버십 비용으로 나름의 자정작용을 벌여오면서 관리해 온 주 고객층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유명인사의 명성에 혹해, 그리고 살롱이 핫하다고 들어서 방문하는 일회성 이용자의 경우 살롱의 규칙과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이른바 살롱의 물을 흐릴 수도 있다.
트레바리가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트레바리의 건물은 강남에 12층 규모의 신축건물을 짓는다는 놀라움 이상의 임팩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트레바리가 본질 없는 표상만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야기했다. 트레바리는 강남에 붉은 벽돌 건물을 짓고, 성수동의 유명 재즈바가 기획하는 재즈 클럽을 입주시킬 예정이다. 성수동의 유명세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성수동이 왜 힙한 공간이 되었고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게 됐는지를 모르고 한 선택일 것이다. 사람들이 성수동을 소비하는 것은 힙한 표상에 이끌려서겠지만, 그 표상은 성수동의 본질에 기인한다. 트레바리는 단지 힙한 공간의 표상을 억지로 이식했을 뿐이다.
서울시 내에서 유독 성수동에 붉은 벽돌의 건물이 많은 이유는 70~80년대의 경공업 시대에 지어진 공장과 창고, 그리고 90년대에 지어진 소규모 주택 때문이다. 사람들이 성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폐건물에 가까워진 붉은 벽돌의 창고를 재단장하고 꾸민 그 공간의 역사와 도시재생의 가능성, 즉 역사의 증언이자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공간의 연속성 때문이다. 트레바리의 건물에 성수동 소재 재즈바가 기획하는 재즈 클럽 또한 마찬가지다. 붉은 벽돌이 성수동의 역사를 이식한 사례라면, 재즈바는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의 현재를 이식한 사례에 해당한다. 종로의 로스터리나 한남동의 위스키 바, 이태원의 맥주 브루어리를 입주시키는 계획도 모두 본질 없는 표상에 불과하다.
살롱의 대표주자인 트레바리의 전략은 오로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살롱의 본질인 낯선 사람과 세련된 공간을 남용한 것에 불과하다. 유명인사를 통한 마케팅 전략과 컨텍스트 없는 공간은 일회성 이용자를 유도하기 좋지만 그들을 정착시킬 매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질리기 쉽기 때문이다. 코나투스도 인정욕구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구에 속한다. 강력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분명한 매력을 갖춰야만 한다. 살롱은 낯선 사람들과 세련된 공간을 제공해야 하지만, 이때 매력적이고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방문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며, 공간은 역사와 맥락을 갖춰 쉽게 질리지 않는 매력을 발산해야만 한다.
살롱에 오는 각오가 된 사람들은 애초에 작은 불편이나 비용은 감수할 의향이 있는 이들이다. 이에 필자는 살롱이 매력적인 사람들의 끊임없는 유입을 위해 각자 어떤 오리지널리티를 형성할 필요성이 있음을, 그리고 표상 뿐인 세련됨을 벗어나 동네가 갖는 나름의 역사를 알리는 지역문화의 교두보로 전환될 것을 주장한다.
이 표를 보면 서로 다른 이름의 살롱들이 글쓰기나 독서,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복되게 모임을 개설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앞서 트레바리와 문토의 출혈적인 유명인사 섭외 경쟁에 대해 말했을 때도 보면 트레바리와 문토가 개최하는 모임의 영역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두 살롱 모두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전문가들을 포섭할 수 있는 섭외력을 강점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유사한 아이템들과 가치가 나열되어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뭐가 이렇게 많아?” 라는 반응이 나오기 쉽다. 각 살롱들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아이템도, 가치도 없기 때문에 경쟁이 출혈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과잉경쟁은 살롱의 본질을 해치는 선택으로 살롱들을 유도한다. 문토의 이미리 대표는 “정보 과잉 시대죠. 특정 분야에 관심이 생겨 좀 알아 나가고 싶어도 여기저기서 정보가 너무 많이 쏟아지니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죠. 그래서 ‘잘 아는 이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대화의 장이 중요한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살롱을 고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살롱이 정보 과잉을 유도한다. 경쟁으로 인한 공격적인 유명인사 영입이 역으로 살롱의 고유성을 실추시켰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의 지속적인 유입을 위해 만남의 심리적인 저항감을 낮춰왔던 살롱이 이번에는 정보 과잉을 통해 문턱을 높여버리고 있다. 살롱이 다시금 소셜 디스커버리업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각 살롱 별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함으로써 선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각 살롱의 대표들끼리 자신들이 내세우는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대화해보세요!’라는 모토처럼 대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각 살롱별로 분야를 좁히고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때 살롱이 위치한 각 지역의 특성을 활용해볼 수 있다. 가령 판교에 위치한 살롱은 서비스나 기술에 대한 모임으로, 성수에 위치한 살롱은 공예를 하는 모임으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동일한 아이템, 혹은 보편적인 아이템일지라도 각 지역별로 다른 장르를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요리를 하는 살롱이라면 서래마을에 위치한 살롱은 프랑스 음식을,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살롱은 일본 음식을, 종로에 위치한 살롱은 궁중음식이나 한식을, 을지로에 위치한 살롱은 분식과 백반을 주요 테마로 선정해 단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뿐 아니라 왜 그 지역에서 그 음식이 유명한지에 대한 맥락을 함께 알려주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아이템별로 파이를 나눠가져도, 지역별로 파이를 나눠가져도 상관없다. 심지어 트레바리 같은 여러 모임장소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강남 아지트에서는 추리소설을, 안국 아지트에서는 에세이를, 성수 아지트에서는 건축에 관한 도서를 선정해 지역 별로 독서모임의 종류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한 살롱 서비스 내에서 추리소설과 건축에 관한 도서의 콜라보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요리를 배워보는 살롱과 독서모임 살롱 사이에서도 콜라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추리소설과 건축 도서 사이의 콜라보를 통해 뉴욕 3부작을 읽은 이들과 뉴욕에 대해 읽은 사람 사이의 대화가 있을 수 있다. 비슷한 예로는 추리소설과 영국음식의 콜라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 재즈 살롱의 콜라보가 가능할 것이다. 서로 연관이 있는 인접한 영역의 살롱들, 혹은 완전히 성향이 다른 살롱들 사이에 분기에 한 번씩 혹은 시즌에 한 번씩 콜라보하는 이벤트를 갖게 되면, 한 모임 뿐 아니라 다른 모임의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고 그동안 이야기한 내용들을 맞닿아있는 다른 영역의 지식과 확장시켜 앎의 깊이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천편일률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각각의 살롱이 나름의 내러티브에 따라 모임을 선정하는 것. 살롱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히 구분되어 소비자들이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것. 그리고 살롱들끼리의 콜라보를 통해 소비자에게 더 많은 교류와 대화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살롱들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분야의 유명인사를 초청했다가 저 분야의 유명인사를 초청하는 식의, 어떤 분야든 단지 매스컴에서 주목한 이들을 초청해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강점을 파악해 심화시키는 방향이 곧 살롱들의 장기적인 생존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문성을 통한 깊이감은 곧 각 살롱의 고유성이 될 것이며, 살롱을 찾는 이들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살롱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공간에 있어서도 변화는 필요하다. 우선 살롱은 진부하게 세련된 (한때 유행처럼 번진 화이트 톤 보타니컬이나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 감성 같은) 인테리어 양식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닌 오리지널한 공간으로 발돋음해야 한다. 본질 없는 세련됨은 어디에서나 눈길을 끌지 몰라도 그것 뿐이다. 공간은 눈길을 끈 이후에 지속적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을 갖춰야만 한다. 살롱에 대한 수요는 새롭지만, 살롱을 찾는 이들의 니즈는 언제나 있어왔다. 살롱이 순간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 애정이 서린 곳이 되어야 한다.
살롱의 공간은 역사와 맥락을 갖춰야 한다. 이때 가장 쉬운 방안은 살롱이 위치한 골목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과 동화되는 방안이다. 그 지역의 일상에 스며드는것이다. 이를 위해 살롱은 지역의 일상, 로컬문화의 교두보가 되어야 하며, 앞장서서 지역 공동체(일종의 협동조합)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살롱은 매 시즌별로 통제된 인원을 받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끊임 없이 외부인을 지역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동시에 오로지 통제 가능한 인원만을 받는다는 점은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동네가 유명세를 얻었을 때 삶의 터전을 훼손당할 수 있다는 지역 거주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살롱이 건전한 지역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힙한 골목의 기틀을 형성한 올드커머와의 관계 뿐 아니라 올드 커머 이전부터 그 지역에 거주하던 토착민들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하고 상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선 올드커머와의 관계는 그 지역을 뜨겁게 만든 지역 기반의 예술가들이나 로스터리, 브루어리, 카페, 식당등과의 콜라보를 통해 끈끈해질 수 있다. 핫한 동네를 키운 건 저렴한 임대료나 지역의 특성에 매료된 예술가들, 그리고 그 예술가들의 자취를 좇아 골목을 보다 멋들어지게 만드는 커피, 술, 음악, 그리고 음식이다. 살롱은 그들의 공간을 매력있게 만들어준 동네에 환원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올드커머들과 콜라보를 맺어야 한다.
먼저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예술가들이 지역성을 드러내는 굿즈를 만들어서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의 예술가들이 호스트가 되는 모임을 개설한다면, 보다 진정성 있고 현장감 있는 모임이 될 뿐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부가적인 수입원이 된다는 점에서 윈-윈이다. 지역의 로스터리/브루어리/카페에서 살롱 고객을 대상으로 한정판 메뉴를 제공하면 살롱을 찾기 위해 동네를 방문한 이들에게 동네의 매력을 소개하고 단골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살롱 고객들 중에는 소위 인스타 감성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대상으로 브루어리와 카페의 콜라보 등 새로운 메뉴를 시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살롱에 참가한 이들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는 톡톡히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살롱의 시즌 패스를 구입한 이들을 대상으로 지역 내 제휴 상점에서 상시 할인을 제공한다면 살롱 모임이 열리지 않을 때에도 그 지역을 방문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상인들이 호스트가 된다면 그들에게도 훌륭한 부가수입원이 된다.
지역 문화를 보존하는데 있어서 가장 경계되어야 할 점은 원주민을 몰아내는 상업적인 접근이다. 지역 공동체 문화의 교두보로서 살롱은 동네가 뜨기 전부터 그 지역에 거주하던 동네의 산증인들과 상생해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동네 구석구석의 매력을 알려야만 한다. 동네 공동체의 장이 직접 호스트가 되어 동네의 역사를 알려주는 모임을 개설하는 것은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매 시즌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살롱에서 얻은 내용과 동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 그리고 그들이 뽑은 동네의 매력포인트를 정리하고 잡지의 형식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역의 서점에서 판매한다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동네의 매력을 담아내는 다양한 시선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기 위해 살롱이 숙박업을 겸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살롱 문화에 관심이 있지만, 거주지 근처에는 살롱이 없는 이들을 위해 살롱 모임과 더불어 감성 숙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숙박업을 겸함으로써 서울이 아닌 외곽도시들에서도 살롱이라는 문화현상이 확산될 수도 있다. 도쿄의 ‘야네센’(야나기, 네즈, 센다기)이라 불리는 지역에는 ‘하기소’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1층은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2층은 호텔(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되는 이 공간에 숙박하는 이들은 1층의 카페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먹고 동네 목욕탕을 이용한다. ‘하기소’는 단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야네센’ 지역의 술집, 카페, 목욕탕, 미술관 등 여러 공간을 소개해주고 이어주는 허브의 역할을 맡는다. 하기소 측에서는 외국인 손님들을 대상으로 ‘야네센’ 지역을 산책하는 법도 가르친다. 일본의 동네에서 지켜야할 매너를 알려줌으로써 지역에 대한 존중의 마음가짐을 갖도록 한다. 살롱이 이런 허브의 기능을 수행할 때, 단지 예쁘고 깔끔한 올드커머들의 공간 뿐 아니라 지역 원주민들의 삶 그 자체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며 상생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줄평: 골목, 너 내 동료가 되라 - 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