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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2. 2023

의사 남편의 단점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의사 남편의 모습은 멋지기만 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이상처럼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시시콜콜하게 의사 남편의 단점을 가볍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남편은 대학병원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 말하는 의사는 동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개원의와는 다를 수 있다. 


  1. 수술하는 의사가 져야 하는 무게.

  남편의 하루는 수술 환자 목록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 어려운 수술이 껴있으면 바짝 긴장해서 심장이 벌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남에게 티 내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 있다.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 남편의 어깨는 하루 종일 내려가 있다. 환자의 부주의로 인해 수술부위가 감염되어 증세가 악화된 경우에도 자신이 맡은 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환자가 퇴원 후에 약도 안 먹고 소독도 안 했다며. 오빠 잘 못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주변의 어떠한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의사들은 매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들은 가족조차 함부로 조언하거나 위로할 수 없는 영역에 서있다. 아마 이것은 영원히 풀리지 못할 숙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수술하는 과를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나날이 수술실력이 좋아지는 자신의 모습이 좋단다.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2.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나는 직장에서 일어난 잡다한 일들을 남편에 가 곧 잘 터놓는 편이다. 특히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남편이 같이 맞장구 쳐주길 바란다. 

  "내가 오늘 직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느냐면~ 어쩌고 저쩌고~ 너무 부당하지 않아?"

  그러나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글쎄.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

  그럼 나는 이마에 숨겨놨던 뿔을 세워 빽 하고 소리 지른다.

  "뭐야, 지금 남의 편드는 거야? 이 사람이 정말!"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겪어온 거의 모든 부당한 일을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일일이 자세하게 열거하기 어렵지만 남편은 전공의를 거쳐 펠로우를 하는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어본 인물로서 웬만한 어려움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님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 냅다 뛰어가는 게 진리로 알고 지낸 세월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병원 생활이 어찌나 어려웠던지 펠로우를 마치던 해에 드디어 스트레스성 탈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즘에는 풍성해진 머리카락을 보며 스스로 뿌듯해할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붙잡고 특훈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자, 내가 직장에 대해 불평하면 무조건 내편을 들어. '네 말이 맞아."라고 하는 거야. 알았지?"

  남편은 알아듣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흡족하진 않지만 음, 그래. 이거라도 어디냐 싶다. 

 



3. 우리가 늙으면 말이야.

  나는 '만약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남편에게 별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만약에 우리가 늙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꽃도 보러 다니고, 별도 보러 다니고, 달도 보러 다니고... 나는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래!"

  내가 무지갯빛 미래를 그리면 남편은 꽤 현실적인 대답을 날린다. 

  "죽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면 비참해. 중환자실에 며칠 가 보면 그런 생각이 쏙 사라질걸? 적당히 살다가 죽는 게 좋아."

  "끙...!"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툴툴 내민다. 남편은 삐져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같이 꽃도 보고, 별도 보고, 달도 보러 다니려면 이제 대학병원에서 나와야겠네. 대학 병원 교수에 대한 인식이 이제 예전 같지가 않아. 사명감 하나로만 일하기엔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

  남편의 말에서 많은 고민이 느껴진다. 아마 수많은 대학 병원 의사들도 갈림길에 섰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같이 꽃을 보러, 별을 보러, 달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모든 걸 훌훌 던져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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