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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pr 07. 2024

거절당했던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다.

한 달 전 이런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 출판사 편집자 ***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출판사에서 기획 중인 도서가 있어 글 저자를 의뢰드리고자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기획 중인 도서라......'

나는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덜컥 들어온 기획 제안이 신기하기만 했다. 심지어 작은 출판사도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낸 출판사였다. 


물론 나에게 기획 제안이 들어온 건 처음이 아니었다. 

작가 지망생일 때 어떤 출판사에 투고를 했었는데 창비와 먼저 계약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아쉬운 대로 출판사에서는 비슷한 설정으로 다른 원고라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설정이 겹치는 건 자기 복제 위험이 있어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투고를 한 원고도 없는데 기획 제안이라니? 원고를 받아보지도 않고 계약을 하자는 건가? 나는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고 답장을 보냈다. 일단 만나보면 알 것이다.




  미팅 당일, 나는 기차역 주변에 있는 카페로 갔다. 5분 일찍 도착한 건데도 편집자 두 분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계셨다. 서울에서 오려면, 아니 파주에서 오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셨을 텐데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작가 다영입니다!"

허리 굽혀 인사하자 두 분께도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그리고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으셨다. 

"무슨 음료 드시겠어요?"

"아... 저는 주스요."

  마침 카페에 생과일주스가 없었다. 이제 막 오픈해서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신 따뜻한 차를 시켰다. 

"캐모마일 차도 괜찮으시죠?"

"네, 좋아요. 근데 저 잠시 회장실 다녀와도 될까요?"

  나는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침에 예쁘게 화장을 한답시고 열심히 인조 속눈썹을 붙였는데 잘못 붙여서 너덜너덜했다. 나이가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건만 나는 아직도 속눈썹 하나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바보다. 이럴 거면 붙이고 오지 말걸 그랬다. 그래도 뭐... 글 얘기를 하러 온 건데 미숙한 화장기술로 뭐라고 하진 않겠지. 나는 거울을 요리조리 살펴 본다음 손을 씻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원고 얘기를 해볼까요?"




  나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이거 혹시 어떤 유명 교수님의 기획작에 속하는 글작가인가요?"

"아니에요. 작가님이 메인이십니다."

"아, 그렇군요. 한 권만 쓰면 되나요?"

"아니요. 시리즈로 나올 거예요. 회사의 메인 시리즈 중 하나가 될 거예요."


  두 분의 편집자님께서는 나에게 기획서를 건네주셨다. 빼곡하게 작성된 네 장의 기획안이었다. 콘셉트, 각 권의 주제와 장소, 캐릭터 설정 및 분위기, 줄거리와 형식까지 다 적혀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획안을 읽어 내렸다. 

"오...!"

 작가가 머리를 쥐어짜 내며 써야 할 내용이 다 들어있어서 놀랍기만 했다. 작가는 그야말로 정해진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니 이걸 다 정해오시다니...."

"원래는 더 두꺼운데 짧게 요약해서 드린 거예요. 원본을 보면 두꺼워서 놀라실 수 도 있어요."

"헛! 그렇군요."

  속되게 말해 개이득이 아닌가. 그런데 난 이상하게... 아주 이상하게도.. 정해주신 대로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저곳을 향해 달려가라고, 그래야 빠르고 쉽다고 가르쳐줘도 난 그냥 내 길을 가고 싶었다. 나는 기획안을 고이 덮으며 여쭤보았다.

"이대로 안 쓰고 제가 구상한 대로 써도 되나요? 소재만 같게 하고 주인공과 줄거리를 다 바꿔서 써도 괜찮나요?"

  편집자님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이건 참고자료일 뿐 원하는 대로 바꿔 쓰셔도 돼요. 대신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써주시고, 페이지 형식을 맞춰주세요."

"그럼 원고를 써서 드리면 되나요? 원고 드리고 계약하면 되는 거죠?"

"아니요. 한 두장의 시놉시스만 주셔도 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원고도 없이 시놉시스만으로 계약한다라...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나는 토끼눈이 되어 눈을 껌뻑거렸다. 

"정말 그래도 돼요?"

"네, 간단하게 줄거리만 써주세요. 저희는 작가님이랑 계약할 거예요."

 나는 이 분들이 나의 어떤 점을 보고 덜컥 계약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궁금했다. 좀 더 얘기하다가 알게 됐는데 두 분께서 나의 첫 동화책 '달콤 짭짤 코파츄'를 재밌게 읽으셨단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책을 낸 작가와 지망생은 다르구나.'

'한 권이라도 잘 내면 가슴 졸여가며 투고하지 않아도 작품 계약이 쉽게 되는 거구나.'

  

  우리는 원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눴다.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헤어지기 전에 서울에서 사 오신 쿠키 선물까지 받았다.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올라가세요."

 "네, 작가님. 곧 연락드릴게요."


   

 



"오빠, 나 왔어."

  나는 집에 오자마자 남편부터 찾았다. 남편은 내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너 눈이 왜 그래? 귀신이야?"

  문득 거울을 보니 인조 속눈썹이 너덜거려서 끔찍해 보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으아아아ㅏㅇ악!!!!..... 내 눈!!! 날보고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셨으면 어떡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빠 저리 가봐. 나 지금 속눈썹보고 충격받았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 분들에게 나의 첫인상은 거지 같았으리라. 그래도 뭐, 원고 얘기는 잘 마치고 왔으니 다행이다. 어차피 작가는 글로 승부하는 사람이니까. 내 속눈썹이 어떻건 무슨 상관이랴. 코파츄를 재밌게 읽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부디 출판사에서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보지 않았길 바란다...


 나는 책상에 놓인 코파츄를 스르르 열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오늘 만난 출판사가 코파츄를 거절했던 출판사였다는 걸 깨달았다. 

"어.......? 어?"

  나는 급히 메일함을 열어 코파츄를 투고했던 출판사 리스트를 확인했다. 코파츄를 거절했던 출판사가 확실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다. 

코파츄를 거절했는데, 코파츄를 보고 출간을 제언했다라.... 인생 참 재밌고 신기하네. 출판사는 알고 있을까? 내가 예전에 코파츄를 투고했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를 같다. 모르니까 아무 말이 없었던 거겠지?



  이 사건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투고에 떨어졌다는 게 작품성이 없다는 뜻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실수로 지나쳐버린 글이 어쩌면 출판사에서 애타게 찾던 글일 수도 있다. 

  

꾸준히 글을 쓰고, 투고하고, 작품을 내다보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줄 날이 온다. 중요한 건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 자랑할만한 떳떳한 글을 썼느냐'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책이라는 건 유행을 타지 않는 유물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 출판계는 그렇지 않다. 어느 분야보다도 '유행'에 민감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트렌드에 맞지 않으면 반려당하기 일쑤이다.

   또한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 '운'이라는 게 너무나 중요해서 노력과 흥행 여부가 꼭 비례하여 나타나지 않는다. 년에 걸쳐 열심히, 아주 열심히 작품이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소리소문 없이 창고 깊숙한 곳으로 묵혀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뿐만 아니라 책에는 '유명세'라는 것도 한 몫한다. 작가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냐가 책의 명성을 좌지우지한다. 유명하면 비교적 책을 쉽게 내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지망생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건, 당신의 글이 출간되지 못하는 게 작품성이 없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유행', '운', '유명세'가 따라주지 않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출간은 당연히 멀고 먼 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에 빛을 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쓴다면, 언젠가 출판사에서 먼저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올 수도 있다. 내세울 게 없는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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