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댁에 가는 날이다. 지난 추석에 시댁에 방문했어야 했지만, 남편이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아니, 시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추석인데 어떻게 안 가. 나는 걸리지도 않았잖아. 그냥 나 혼자라도 다녀오면 안 돼?"
나는 시댁에 가지 않는 게 너무 찜찜했다. 하지만 남편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알고 보면 너도 무증상 환자일 수 있어. 우리 집은 명절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가지 마. 괜히 전염병을 퍼뜨리면 실례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뒷말이 안 나올 거라고 자신하냐고?"
"응."
남편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괜히 책잡히는 게 아닐까 싶어 전전긍긍했었다. 남편이 여러 번 안심시켜 주었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던 건, 시댁에 가지 않는다며 나를 다그치는 친정 부모님 때문일지도 몰랐다.
"딸, 사위는 못 가도 너는 가야지! 명절이잖아."
"글쎄... 남편은 내가 무증상 감염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릴까 봐 걱정되나 봐."
"아휴, 얘는! 그래도 가야지, 명절이잖아."
"엄마, 재작년에 시할머니께서 코로나로 돌아가신 거 기억하지? 그리고... 작년 추석에 아빠가 코로나 퍼뜨려서 나랑 남편이 앓아누웠던 거 기억나?"
"아니 그건... 그냥 몸살감기인 줄 알았지. 누가 코로나 일 줄 알았나? 명절인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아. 어쨌든 옛날 얘기는 할거 없고. 이번 명절에는 집에서 푹 쉬어."
말끝마다 붙는 명절, 명절.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살감기에 걸려도 명절이면 꼭 모여야 하는 것일까. 명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친정 부모님에게 명절은 끈끈한 가족애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우리 아빠는 내게 귀에 박히도록 말했다.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어. 알겠지?"
나와 남편은 자동차에 과일을 싣고 시부모님께 드릴 용돈봉투를 준비했다. 시누와 조카들에게 줄 선물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아무렴 직접 얼굴을 보고 전해주는 게 좋을 듯싶어 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
"어머님, 문 열어주세요. 저희 왔어요!"
시댁에 도착한 나는 현과 문을 두드렸다.
"응, 그래. 너희들 왔니?"
시어머니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시어머니의 미소는 작년 명절에, 그리고 재작년 명절에 보았던 미소와 똑같았다.
"아버님은 어디 계세요?"
"응, 점심에 바둑 한 판 두러 갔는데 아직도 안 오시네. 아마 곧 오실 거야. 나도 교회 사람들이랑 등산 갔다가 지금 막 들어왔어. 거실에서 잠깐만 기다릴래? 탁자에 있는 과일 좀 먹고 있으려무나."
시부모님은 나름의 취미생활을 즐기느라 바빠 보였다. 목 빠지게 우리만 기다릴 줄 알고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나는 이마를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으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시댁에선 친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보이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어서 너무 가까워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았다. 툭하면 서로 울고 불고 싸우는 친정가족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서로 가까워지길 원해서 였을까. 우리 부모님은 내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고 말하곤 하신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족공동체를 중요시 여겼던 부모님 눈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내 모습이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개인의 삶과 가치가 더 중요하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았던 부모님은 이런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부모님은 똘똘 뭉치는 가족을 원했고, 나는 혼자 있길 바랐다.
언젠가 우리 엄마는 친정에 온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서둘러 집에 돌아가는 내 모습에 서운해서 운 적이 있었다. 엄마는 살갑고 애교 많은 딸을 원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쌀쌀맞은 딸이라서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는 없는 집살림에도 모든 것을 바쳐서 나를 정성껏 키웠다. 내가 만약 엄마였다면 그렇게 희생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헌신적이었던 부모님의 사랑은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딸, 네가 우리 집의 기둥이고 희망이야. 너는 정말 잘 돼야 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넌 왜 그래? 엄마 아빠가 죄인이야? 우리가 도대체 너에게 못해준 게 뭐가 있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항상 이방인 같았다.
"자, 한입 씩 먹고..."
시어머니께서 떡을 내주셨다. 나는 과일과 떡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시어머니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는 걸 기쁨으로 여긴다. 늘 온화하고 너그러운 분이시지만 먹을 때만큼은 깨작깨작거리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놀랍게도 시댁에서 듣는 잔소리는 "좀 더 먹지 그래. 아휴, 사과가 남았네. 한 조각씩만 더 먹어."가 전부다. 예상컨대 하고싶은 잔소리는 더 많으실 거다.
"너희들 왔니? 내가 좀 늦었다."
외출했던 시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오랜만에 바둑판에서 강적을 만나고 오신 모양이었다.
"아버님, 오셨어요? 어서 와서 앉으세요."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내어 드렸다. 시아버지는 사과를 집어 드시며 우리에게 물었다.
"별일 없지? 병원은 괜찮고? 학교도 괜찮지?"
시아버지의 관심사는 자녀들의 건강과 직장 생활에 한정된 편이다. 더 궁금한 게 많을 테지만 일부러 묻진 않으신다. 부모 자식 간에 무슨 선이 있겠느냐만은 감정이 상할 만한 질문은 일부러 피하시는 편이다. 자녀들은 시아버지의 배려를 알고 있다.
"네, 괜찮아요. 아버님도 아픈 데 없으시죠?"
"나야, 뭐. 항상 건강하지. 늘 똑같아."
시부모님은 도란도란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셨다. 동네 친구 이야기, 정치 이야기, 높아진 물가 이야기가 오갔다. 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라지길 반복했지만 얘기소리는 한여름 밤에 빗소리처럼 잔잔하게 들렸다. 가운데서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사지를 받을 때처럼 몸도 나른해진다. 가끔은 졸음이 오기도 한다.
"하아, 갑자기 졸리네!"
남편이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누웠다. 하지만 소파가 불편했는지 몇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너무 졸려서 안 되겠다. 엄마, 아빠! 우리 갈게. 다음에 또 올게."
시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래, 내일 출근하려면 오늘 푹 쉬어야지."
우리 부부는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나섰다. 시부모님은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차에 오르려는데 시어머니께서 내 주머니에 뭔가를 푹 찔러 넣으셨다. 돈봉투였다.
"어? 어머님. 아니에요!"
나는 봉투를 빼내어 시어머니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시어머니는 다시 얼른 봉투를 빼서 내 주머니에 넣었다.
"좀 있으면 네 생일이잖아. 맛있는 거 사 먹어. 알았지?"
나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남편은 "그냥 받아."라고 말하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어머니께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잘 쓸게요."
시어머니는 어떻게 항상 내 생일을 기억하고 계시는 걸까. 겉으론 무심해보여도 시어머니는 나를 항상 어여삐 여기셨고, 전해주시는 말씀은 항상 내 마음을 울렸다.
"잘 가거라. 둘이서 잘 지내야 한다!"
시부모님은 떠나는 우리를 항해 다정하게 손을 흔드셨다. 내게는 쉼표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