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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안식년 후기]이리 빡쎈줄 몰랐던 크리에이터의 삶

전 알지 못했어요. 크리에이터, 퍼스널브랜더의 삶이 이리도 빡쎈 줄은..



전 알지 못했어요.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더의 삶이 이렇게나 빡쎈 줄은...


세미 안식년을 가져봤다.



1년 조금 넘게...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쉬게 됐다.



시간이 흐른 뒤에 스스로 '세미 안식년'이라고 부르게 됐다.



일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완전한 안식년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우니 그렇게 이름 붙였다.



작년 7월, 스타트업 베이에서 열린 제주 디지털 노마드 프로그램에 참여한 때를 시작점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어느덧 1년 반 정도가 됐다.



쉬면서 물론 불안감은 있었다.



사람들에게 잊힐 것 같은 두려움,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에 대한 걱정...



결론적으로, 난 살아남았다.



홍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필수적으로 발행해야 하는 콘텐츠 발행만 주로 했다.



이외에도 굵직하게 한 일 한 가지는 바로 브랜드 홈페이지를 만든 사실이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깃들여 탄생했다.



https://jindal.co.kr/


누군가는 퇴사한 직후 자신을 갈아 넣을 만큼 갈아 넣어 비즈니스를 궤도에 올리고자 할 것이다.



나도 그럴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퇴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약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왜 그리 '쉼'이 필요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크리에이터를 기반으로 한 창업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


1. 사람 피 말리게 하는 무단 도용, 무단 도용, 무단 도용...


무단 도용을 지금까지 약 10번 정도 겪었다.



내가 아는 것만 그러니까 더 많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베껴가고 있을지도...



오, 이건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나도 당연히 몰랐고 관련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이제 이전보다는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애정과 열성을 갖고 세상에 내놓은 콘텐츠가 주인을 잃은 채



곳곳에 팔려가는 광경을 끊임없이 봐야 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보다 마음이 더욱 힘들었던 건 도용을 한 여러 사람들의 태도였다.



1) (도용 이슈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자)



"달래 님도 제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주고 계십니다."



2) "영어 필사 모임은 달래 님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서비스입니다."



=> 영어 필사 모임을 만들었다고 뭐라고 한 게 아닌데...



3) "본인은 속상하겠지만~~~~"



=> 뭐라 해봤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등등등...



때로는 유선으로,



때로는 서류로,



때로는 온라인 페이지 안의 텍스트 안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그렇게 대적하며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 콘텐츠뿐 아니라,



내 소중한 에너지가 그렇게 도둑맞고 있었다.



가뜩이나 나는 에너지를 태생적으로 많이 갖고 난 사람이 결코 아니다.



(휴먼 디자인 프로젝터 Projector 타입)



그 귀한 것을 아끼고 또 아껴 써야 하는데...



큰일을 한 번 겪고 난 뒤에도 콘텐츠 크리에이팅이라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73339/222483818455


그럼에도 그 뒤에 비슷한 일들이 또 이어지자 스스로 움츠리게 됐다.



왜 나에게는 극히 상식적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상식이 아닌 걸까...?



도용 피해를 입은 뒤에는 왜 모르는 사람에게 언어폭력까지 계속 당해야 하는 걸까?



(위에 적은 예시 말고도 들은 더한 말도 있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2. '팔리는 나'와 '안 팔리는 나' 사이의 간극 속 느끼는 혼란


재능을 자본화해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상에 알리고 파는 거다.



난 내가 타고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개발도 잘해 온 능력을 판다.



그건 바로 영어, 글쓰기, 자기성찰, 사진, 고객 서비스 능력 등이다.



'전 국내파지만 영어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 갔고요.



글쓰기에도 강해서 브런치 작가에 한 번에 합격했고, 라이킷 받은 횟수도 상위 5% 안에 든답니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사진전도 열었을 만큼 예술적인 감각이 있어요.



탁월한 고객 서비스 능력으로 호텔리어로 일할 때



입사 6개월 만에 최우수 고객 평가 상도 수상했답니다.'와 같은 문구로 세일즈를 하면서...



하지만 그건 철저히 '팔리는 나'다.



브랜딩을 하면서 팔리는 나와 팔리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간극 때문에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경험했다.



수, 기계에 관해서는 바보 천치 같고, 정리 정돈을 못하고,



굼뜨다는 소리 듣고, 관계 문제에 서투른 것 같아 자책하는 나 역시 모두 나다.



누구나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며 살아간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대중에 나를 처음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내어놓는 자아와



그렇지 않은 자아 사이에서 나는 흔들렸다.


3. 대중의 기대에 계속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


대중의 기대를 끊임없이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져갔다.



네가 뭐 얼마나 유명하길래 그러냐고?



인지도와는 관계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다 느끼는 압박이 있다고 생각한다.



멋모를 때는 유튜버가 꿀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와, 이렇게 돈을 벌다니... 꿀이네.' 이러면서...



지금은?



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있을지 난 아주 잘 알 수 있으니까.



궤도에 오르기까지도 쉽지 않지만,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며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4. 쉴 수 없을 만큼 '기-승-전-기획'이 되어버린 뇌


'기-승-전-기획'을 하는 뇌가 되어버렸다.



어떠한 외부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는 물론이고, 가족과 여행을 가든,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나의 뇌는 기획하는 사고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목을 어떻게 쓰지?'



'이건 또 어떻게 구성해 볼까?'



'어떻게 해야 맛깔스럽게 콘텐츠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쉴 수가 없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휴식도 중요한 것 아닐까?



유명한 배우도 쉬는 시간을 오래 갖곤 하는데... 그런 뒤에 활동을 더욱 건강하게 이어나기도 하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쉬어야지 하던 게 어느 순간부터 난 나를 더 많이 놓아주게 됐다.



하루 15분 영어 필사 모임을 위한 콘텐츠만 발행하고 더 많은 홍보를 위한 SNS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도움이 됐다.


5. 내향형 인간으로서 조용히 살고 싶은 나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친구들과 대화하며 친화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 발리에서



새해 맞이한다고 곳곳에서 파티를 열고 불꽃을 요란하게 피우지만



그저 방 안에서 조용히, 묵묵히 회고하는 글을 쓰는 내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내적으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파고들며 성찰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그런 운명으로 타고났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은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계속 드러내야 하는 삶이다.



그래야만 모객을 할 수 있고,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굴 안에서 조용히 침잠하는 시간이 중요한 나이기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대표의 삶, 스토리, 가치관을 팔아야 하는 삶...



퇴사를 하기 전부터 이미 나를 하나둘 알아보는 분들이 생겼다.



지역 도서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어느 단체에서 열었던 강연에 참여했을 때 말이다.



내가 진행한 강의나 모임에 참여를 하셨던 분들이었다.



나는 몰라도, 누군가는 나를 알아보는 삶이 된 거다.



더욱 많은 사람에게 가치를 주고 싶은 사업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그러면 더 알려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내겐 공존했다.




그래도 이 치열한 온라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세미 안식년을 가진 1년 반 동안,



그전까지를 다 합하면 약 2년 반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올해가 가기 전 스스로 축하의 말을 꼭 다정하게 건네보고 싶다...!! :)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리텐션(Retention), 즉 재 구독률에 있었다.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제 쉴 만큼 꽤 쉬었으니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더 해 볼 생각이다.



물론 쉬기도 잘 쉬어주면서.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내가 살아가는 삶은 완급조절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으니까.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더의 삶이 모두 나와 같지 않을 것이다.



내가 농사를 지을 때 들은 말이 있었다.



100명의 농부가 있으면 101개의 농법이 있다고.



그렇듯이 콘텐츠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더, 창업가의 삶이 다 같지 않다.



내가 경험해 본 지난 2년 반의 시간은 이러했다.



Bittersweet 한 삶...



이번에는 Bitterness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으니



다음에는 Sweetness에 집중해 글을 써봐야겠다.



나의 마음가짐을 가다듬기 위해 2022년을 매듭짓는 시점에 이 글을 적어보았다.



창작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창업에 관심 있는 분께



나의 경험담이 도움을 드렸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New Year's Eve라고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불꽃이 터지는 풍경이 보이는 발리의 내 방 안에서 -



(글을 쓰던 시점, 아직 발리는 2022년이 지나지 않았었다.)


Happy Happy New Year!! :-)

발리, 누사 렘봉안 섬에서.

2023년,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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