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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문덕 Oct 13. 2024

다름이 아니라, 달음

흑백요리사, 남다름 셰프와 다달음 요리사


  오늘 점심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날씨가 쌀쌀한데 갈비탕, 칼국수, 우동 중에 어때?"

"오, 다 좋네. 그럼 칼국수랑 파전 갈까?"


  김이 모락모락 뽀얀 국물을 품은 칼국수와 윤슬 같은 윤기를 머금은 오징어 가득 파전이 나왔다. 탱탱한 오징어 다리가 입 안에서 춤을 었다. 덕분에 입이 즐겁고 대화 내용도 흥미로웠다. 삼청동 수제비 맛집부터 요즘 인기인 흑백요리사까지 음식 이야기가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 그중 나의 구미를 당기는 화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요리를 잘할까?'



  '아니지, 그건 다른 문제지'

  만약 세계 최고 미슐랭이 나에게 원숭이 골 요리를 만들어 준다면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음식은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어떤 누군가에게는 점수가 나쁠 수 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대한민국 '스타 셰프'와 맛으로 승부하는 '재야의 고수'의 정면 대결은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어느 쪽이든 요리를 향한 열정과 자부심가득할 것이다. 요리에 대한 사랑, 그 험난한? 사랑의 길로 걸어오며 흘린 그들의 피 땀 눈물로 아마 수영장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은 걸어온 이 다소 다르다. 초점을 미슐랭에 맞춘 길과 재야의 고수에 맞춘 길.






  '나는 어느 쪽일까'

  흑백요리사 덕분에 지난날의 내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하게 된다. 미슐랭의 길을 추구했는지, 재야의 고수의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50%는 전자다. 돌아보면 고등학교에서는 성적과 수학능력시험 등급에, 대학에서는 학점과 취업용 스펙들에, 직장에서는 인사고과 점수와 좋은 평판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했다. 평가에 연연하며 길을 걸어온 것이다. 나머지 50%는 몇몇 분야를 전전하는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아쉬운 지난 행보에 대해 사회 탓 환경 탓 부모탓 등을 하고 싶지만 상당 부분은 내가 선택해 걸어온 길이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기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결핍인지 갈증인지 욕망인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인다.



  '쩝'

  그렇다. 솔직히 나는 스타 셰프나 재야의 고수처럼 지난 삶에서 궁극의 맛에 초점을 맞추고 달리는 요리사가 되어본 적이 없다. 내 삶이 주는 재료를 활용하여 영혼이 담긴 요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식감이 좋은 재료들을 찾기 위해 정성 들여 손품 발품을 팔며 땀 흘려본 추억이 거의 없었다는 것. 그저 남다른 등급을 받은 미슐랭 셰프가 되고 싶은 욕망. 외적인 욕망에 집중했고 그 길을 걸어왔다. 성공만을 쫓는 사람,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패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전한 길만 쫓는 사람이 나였다. 선물이 아니라 포장에 집착한 느낌이랄까.


  미슐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외적인 것이기에 결과에 연연하는 태도와 관점,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점이 나를 체한 것처럼 답답한 느낌을 준다. 내 마음속 친구가 바라보고 싶은 방향은 조금 다르다. 포장이 아니라 선물에 집중하고 싶고, 요리에 대한 사랑에 집중하는 것. 그 토양으로부터 자라난 열정이 뿜뿜 하는 행보. 깊은 곳의 영혼이 뿌려주는 풍경들에 심취하며 걸어가는 사람. 지나간 자리에는 따듯한 마음의 체취가 은은한 향기로 남고, 그래서 과정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이미 눈물 나게 즐거운 존재. 그런 면에서 지금처럼 계속 산다면 앞으로 남은 내 삶의 요리가 맛있지는 않겠군. 쩝.






  '수상작 vs 히트작'

  요리뿐만 아니라 영화, 소설, 그림 등 인간이 만든 작품들은 작품성이 좋으면 수상작이 되고 대중성이 좋으면 히트작이 된다. 둘 다 좋으면 스테디셀러가 되고 운이 좋으면 밀리언셀러가 된다. 우리는 이런 수상작, 히트작, 스테디셀러, 밀리언셀러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같은 곳에 관심이 있을까? 정작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 다른 것을 향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같은 맥락으로 개개인의 업과 삶에서도 마음의 방향설정이 중요함을 통찰해 본다. 직업과 사업에서 같은 조리 도구와 식재료, 레시피로 요리하여도 마음의 방향과 가치의 무게중심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삶에 주어진 도화지와 물감, 붓과 연필이 같다 하더라도 마음에 품은 스케치와 표현하는 감정의 색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 출생과 성장배경이 같은 일란성쌍둥이의 삶이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것처럼.



  '삶은 요리다'

  지금부터 마음의 초점을 미세조정하면 어떨까. 그리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과 작품들이 내 삶에 펼쳐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궁극의 요리를 찾으러 떠남'을 내면 깊은 곳의 친구에게 빼꼼히 선언해 본다. 나의 요리 비전은 남다른 등급이 아니라 간, 식감 등이 예술적이어서 입에 넣는 순간 살살 녹아 꿀맛 같은 달음이 있는 요리. 미션은 음식에 정성과 영혼이 느껴져 먹는 사람에게 한달음에 감동과 만족을 주는 요리.


태어난 김에 떠나봐야지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새로운 요리를 찾아
궁극의 요리를 찾으러 출발해야지
뚜벅뚜벅

따스함과 달콤함이 느껴지는 레시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요리를 해봐야지
다른 마음 다른 상상으로 걸어봐야지
따박따박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한다.

"이 집 맛있네, 다른 데랑 뭔가 다름."


  나는 대답인 듯 다짐인 듯 돼 내었다. 마음속으로.

'다름이 아니고, 달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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