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제철재료를 주방장 맘대로 맛있게 즐기는 오마카세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오마카세 스시집 ‘긴자블루청담’.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오마카세
스시 넘어 양식까지… 이모카세 등 ‘~카세’시리즈 열풍
1960~70년 韓 선술집서도 막걸리 주문하면 안주 알아서 내
통영 다찌집·진주 실비집·마산 통술집 모두 ‘맡김 상차림’
주방장 자신있는 요리 내니 맛없을 수 없어… ‘신뢰의 味學’
한 십 년쯤 됐을까. 외식 산업에서 오마카세란 일본말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 요즘은 더 자주 볼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맡긴다’는 뜻이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메뉴의 종류 및 조리를 일정 가격에 셰프에게 모두 일임하는 형식의 주문이다. ‘1인당 ○만 원 오마카세’ 등을 내건 식당인데 여기선 술과 음료를 제외하고 알아서 음식을 차려 내는 대로 먹으면 된다.
오마카세는 원래 일본의 초밥집(에도마에 스시)에서 나온 말이지만 요즘 한국에선 여러 종류의 식당에서 쓰고 있다. 심지어 한식 안줏거리를 파는 우리나라 선술집에서 ‘이모카세’, ‘할매카세’, ‘아재카세’ 등으로 응용하기도 한다. 가게 주인 이모(또는 할머니, 아저씨)가 그날 있는 재료로 알아서 음식을 몇 종류 차려 내는 방식을 ‘오마카세’에 차용한 것. 우리말로는 그대로 해석해 ‘맡김 상차림’이라 부르기도 하고 국립국어원에선 ‘주방 특선’으로 순화할 것을 요구하는데 아직은 둘 다 그리 입에 붙지는 않는다는 평이다. 온라인상에선 재치있게 어감 비슷한 ‘오! 맡기세’라고도 부르는데 차라리 그게 좀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부르는 이름과는 별개로 오마카세 식당이 요즘 얼마나 인기냐 하면 가히 ‘열풍’이라 부를 만하다. 지난해 일본의 한 주간지는 대한민국의 오마카세 식당 유행을 다룬 기사를 게재했다.
국내 언론에도 소개가 된 이 기사에는 한국에서의 일본 오마카세 트렌드를 두고 ‘인스타그램에 60만 건 이상 게시물이 등장한다’면서 ‘주로 20∼30대 커플에게 인기 있는 오마카세는 한국 젊은이들의 사치를 상징한다’고 현상을 풀이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직접 서울에 와서 취재했다고 한다.
2017년부터 서울 편을 발행해온 미식 안내서 미쉐린 레드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 중 스시 오마카세 집은 늘 빠지지 않는다.(도쿄가 아닌 ‘서울 편’인데도 그렇다) 특히 박경재 셰프의 코지마는 발행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분명히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
스시 오마카세의 예를 들면 자완무시(계란찜), 사시미(회), 무시모노(찜), 야키모노(구이), 아게모노(튀김), 스이모노(국물) 등으로 시작해 흰살생선 스시, 붉은살생선 스시, 새우 등 갑각류, 조개류, 성게 등 해산물 군칸마키(군함말이) 순서대로 나온다. 마지막으로 우나기(장어), 후토마키, 알밥, 우동, 소면 등 식사메뉴가 나오고 디저트로 마무리한다. 가격에 따라 다르지만 시간은 최소 1∼2시간 정도로 설정되어 있으며 가격은 3만 원대부터 30만∼40만 원 이상 대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사치’라고 언급한 모양이다.
실제 엔트리급이나 미들급, 하이엔드급 등으로 구분되는 오마카세 초밥집들은 비성수기 구분 없이 ‘스강신청’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예약이 몰린다. 인기 스시집 예약이 인기과목 수강신청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카세 시리즈’ 유행어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은 예전 우리나라 식당 문화는 거개 다 이런 ‘맡김 상차림’이었다. 1960∼1970년 대만 해도 서울 선술집이나 대폿집에서 막걸리나 대포를 주문하면, 주방에 있는 식재료로 뚝딱 뭐든 만들어서 내주는 것이지 따로 안주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딱히 주문할만한 것도 없다. 옛날 한국영화를 가만 살펴보면 대폿집이나 막걸릿집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 당시 술집 풍경이 얼핏 잡히는데 대부분 막걸리 등 술값만 적혀있다. 손님이 술(한 주전자)을 주문하면 깍두기나 김치, 마른 멸치, 나물 반찬 등을 주다가 술을 더 마시면 말린 생선 등을 구워주는 등 마신 술의 양에 따라 안줏감을 더 집어주는 방식이다. 뜨내기보단 단골이 좀 더 얻어먹는 등 당연히 ‘주인 맘대로’일 수밖에 없으니 지금 오마카세의 형식과 다름 아니다.
일본에선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스시야(초밥집)를 중심으로 오마카세가 퍼졌다고 하니 그 방식의 원조를 굳이 따지자면 우리 방식이라고 해도 말짱 허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형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통영 다찌집이나 진주, 사천의 실비집, 마산 통술집 등 경남 쪽과 전주 막걸릿집 등 일부 지방에서 갈라파고스처럼 한국식 ‘맡김 상차림’의 흔적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술집의 운영 형태는 그날그날 장을 봐온 대로 자신 있는 안주를 내오는 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주변에 큰 시장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시장에서 장을 본 대로 밥상에 반영된다. 애초 있던 집들은 물론 새로 생겨난 집들도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니 ‘오마카세’는 한국과 일본 각자 발달한 식문화로 볼 수 있겠다.
일본에서도 애초 어시장이나 주택가 작은 식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매일 팔다 남은 잡어(또는 안주)를 미리 가격에 맞춰 내주던 것을 초밥집에서 받아들이면서 유행이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무엇을 내줄지 모른다는 점이 일본 오마카세와 같다. 고등어가 좋으면 고등어를, 전갱이가 제철이면 전갱이를 낸다. 이도 저도 없으면 산채나 나물, 고기를 볶아 주기도 한다. 고급 참치 전문점도 마찬가지다. 한 마리를 해체해 여러 부위의 재료를 준비했다가 가격에 맞춰 썰어주니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백반 상차림마저도 유사한 원리다. 동네 백반집도 때마다 받아드는 상이 다르다. 백반 상차림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지 않나. 철저히 ‘맡김상’이다. 재료의 성격을 보자면 일본 스시 오마카세와 통영 다찌집이 비슷하고, 우리 백반집과는 진주의 실비집이 닮았다.
맡김 상차림(주방 특선)은 효율적이다. 손님이나 가게 입장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주방장이 자신 있는 음식을 골라 만들어 내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손님 입장에선 고민할 필요 없이 믿을만한 가게를 찾아가 먹기만 하면 된다. 가게 입장에서도 좋다. 손님 수를 예측한 만큼만 장을 보면 되니 재고 부담이 없고, 여러 메뉴를 주문받아 각각 달리 조리하는 것보다 시간과 일손이 덜 들게 마련이다.
한편 맡김 상차림과 반대 개념도 있다. 스시집에서 오마카세와 배치되는 개념은 오코노미다. 일본식 부침개 ‘오코노미야키’할 때의 그 오코노미가 맞다. ‘좋아하는 것’이란 뜻이다. 프랑스 요리에도 있다. 손님이 메뉴를 주문하면서 ‘무슨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달라’고 하면 셰프가 이를 만들어 주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스템인 아 라 카르트(a la carte)가 있다. 프랑스어로 ‘식단에 따라서’라는 원뜻인데 ‘메뉴와는 달리 자유롭게 주문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오마카세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미리 짜인 메뉴 구성과 순서에 상관없이 취향대로 먹을 수 있어 손님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둘이 상치되는 개념이지만 다양화된 식도락의 세계에선 큰 문제 없이 서로 인기를 견주고 있다.
맡겨서 실패하지 않는다면 의당 그러는 편이 쉽고 편하다. 사실 뭔가를 고른다는 일이 불편한 이들도 많다. 요리사가 브랜드 자체가 되고 그 가게가 확고한 신뢰감을 준다면 더욱 그렇다. 평생 한 번도 이런 ‘맡김 상차림’을 체험해 보지 않았다면, 신뢰의 미학(味學)을 제 입맛에 적용해 미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색다른 미식의 경험에 도전해봄직도 하다. 뭐든 다시 시작되는 새해니까.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흐붓 = 바 좌석이 단 8개밖에 없는 원 테이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5명이 와도 다른 손님을 더 받지 않는다. 미국 요리학교 CIA(정보기관이 아니다) 출신 셰프가 철마다 다른 메뉴를 차려낸다. 겨울인 요즘은 삼배체굴, 쿠스쿠스 샐러드, 가자미 크럼블, 어니언 수프, 숙성방어회, 크림치킨스테이크, 먹물리소토, 쿠키 등을 내준다. 콜키지는 무제한 3만 원이라 술꾼들도 반길 만하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62-8 2층 1인 13만 원.
◇긴자블루청담 = 서울 청담동 일본요리의 터줏대감 격인 ‘긴자’가 제철 스시 오마카세를 진행하는 레스토랑. 특급 호텔 출신 셰프가 매일 신선한 제철 재료를 사용해 손님 입맛에 맞춰 음식을 제공한다. 프라이빗한 VIP
룸에서 단독으로 셰프가 차려 내는 바 테이블에서 최대 8명까지 오마카세 메뉴를 즐길 수 있다. 단품 요리와 각종 초밥을 차례로 낸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20 청담스퀘어 B동 3층. 점심 7만5000원. 저녁 14만 원.
◇스시 선명 = 저렴하고 충실한 오마카세 초밥집. 최대 인원 8명에 대해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한 초밥을 기승전결로 내준다. 흰살생선과 붉은살생선을 순서대로 내고 새우 등 갑각류를 초밥과 튀김으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말이와 구이도 빠지지 않는다. 고등어 봉초밥과 살짝 간장에 절인 참치가 맛있는데 오마카세야 늘 구성이 달라지니 매번 있을지는 잘 모를 일이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산1로1길 23-24 주택상가 1층. 1인 5만 원.
◇강변다찌 = ‘다찌집’은 원래 서서 먹는 허름한 ‘선술집’이란 뜻인데 통영에선 ‘맡김 상차림’ 술집을 의미한다. 수많은 다찌집이 있지만 이 집은 신선한 해산물을 주로 내는 집으로 유명하다. 제철 횟감과 생굴, 낙지, 소라, 꼬막 등 생 해산물로 시작해 볼락, 갈치 등 생선구이, 문어숙회, 새우찜(구이) 등을 주고 매운탕으로 마무리하면 술배뿐 아니라 밥배도 불러온다. 경남 통영시 항남1길 19. 1인 4만 원(술 1병 포함).
◇강림통술 = 통술집인데 인원수대로 상을 차리고 술값은 따로 받는다. 마산어시장에서 장을 봐온 수많은 안줏감이 상다리 부러지게 그득 올라온다. 요즘 같으면 여러 종류의 횟감과 전복, 해삼 등 다양한 해산물, 꽃게무침과 간장게장도 나온다. 꼴뚜기 종류인 제철 호래기회와 문어숙회도 있다. 생선구이, 장어구이, 병어조림, 계란말이, 부추전, 불고기 등과 물회까지 나오니 국물 걱정도 필요 없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아구찜길 64. 2인 8만 원. 4인 12만 원.
◇용진집막걸리 =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유명 맛집이다.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안주 가격에 막걸리 한 주전자(3병)가 이미 포함됐다. 막걸리를 들이켜 넘길 수 있게 콩나물, 도토리묵 등 다양한 반찬이 깔리고 두부김치, 간장게장, 잡채, 홍어삼합, 편육, 고등어조림, 꽁치구이, 김치전,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이 좍 나온다. 다찌집이나 통술집과 다른 점이라면 내륙인 전주답게 해물보다는 나물과 요리가 많다는 점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거마산로 14. 커플상 4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