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 상설전. 20년 12월.
MMCA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 소장품 상설전. 20년 12월.
과천관은 집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본관이라는 위상이 서울관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도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아보니 2013년 교양과목 수업의 모작 과제로 <한국 현대미술 거대서사> 전시를 찾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2013년이면 전역 후에 정말 한참 미술에 빠져있던 때다. 전날 밤 인사동, 사간동, 소격동, 삼청동, 가회동 지도와 서울아트가이드를 펼쳐놓고 차근차근 오픈 시간을 체크하고 동선을 확인한 뒤 아침이 되면 집을 나섰다.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갤러리이즈, 사비나 미술관 등 크고 작은 갤러리에 들러 그림도 보고 사진도 찍고 작가가 있으면 대화도 나눴다. 그러다 2,3시쯤 되면 명동칼국수에서 만둣국 한 그릇 먹고 소격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11월에 오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껏 기대를 하며 지금도 좋아하는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메이저 갤러리들을 둘러보면 5,6시가 되고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그 와중에 아쉬워서 저녁 7시까지 하는 갤러리, 9시까지 야간 오픈을 하는 미술관을 핸드폰으로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날, 또는 주말이 되면 그날 못 갔던 곳을 가고 이번엔 신사동, 청담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대도 없는 학교에서 디자인과, 건축공학과 실기 수업을 듣고 교양과목으로 미학, 미술사 수업까지 찾아들으며 미술과 사귄다는 소리까지 듣던 그때. 5월 홍콩 아트 바젤 소식을 갑자기 접하고 학기 중 결석계를 내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던 그때. 요즘은 전시 하나만 봐도 지치는데 예전에는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왔나 싶고 지금도 방 한구석, 노트북 폴더에 쌓여있는 수 천 장의 그림들, 수 백 장의 브로셔들, 수 십 권의 도록들을 보면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어쨌든 오랜만에 찾은 과천관. 이곳은 부지도 넓고 저수지를 중심으로 국립 과천과학관, 서울랜드, 캠핑장, 식물원, 산림욕장, 경마장 등 오락거리가 많다. 미술관까지 들어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훌륭한 것 같다. 다만, 지나가면서 보면 노후된 느낌도 있고 날씨 탓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년에 화창한 날이 올 때 꼭 다시 와봐야겠다.
이번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전시는 22년 7월까지 하는 상설전인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190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담고 있다. 마치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근현대미술 상설전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작년과 재작년에 퐁피두에 갔을 때 시대순으로 근현대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는 느낌으로 수 백 점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림 하나하나를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느끼기에는 아주 좋았다. 이번에도 퐁피두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섹션도 15개로 세분화되어 있어 마치 한국 근현대 미술사 책을 읽듯 관람할 수 있다.
1,2,3 섹션을 '20세기 전반 한국미술'로 묶고 있는데 이 시기는 조선시대를 끝으로 대한제국의 성립,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일제강점기의 미술을 소개한다. 1900년대 초에는 극사실주의의 전통 기법을 사용한 초상화와 함께 유학파들의 영향으로 유화가 도입되고 자화상, 누드화, 풍경화 등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그러한 유학파 중 한 명인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1세대 유화가' 이종우의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세잔의 작품이 많이 떠올랐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1925년부터 파리에서 3년 간 체류하며 공부를 했으며 주제는 모네의 루앙 대성당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북구 노르망디 지역의 도시라고 한다.
이럴 때 사실 그간 그림을 많이 보러 다닌 것에 대한 뿌듯함이 많이 느껴진다. 물론 로스코나 박서보의 작품을 볼 때, 또는 르누아르나 김종학의 작품을 볼 때 느껴지는 예술 본연의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대한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술을 읽는 눈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성장의 기쁨을 지울 수 없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미술을 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정물화가 밋밋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기개가 있는 듯 해 매력적이었다. 이때는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삼일운동 이후 무단통치에 이어 문화통치가 시작되며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설되었으며 일제 치하의 전시라는 한국인들의 비판에도 사실상 당시 화가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기 속에서도 잠시나마 미술은 꽃피울 수 있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미술 교육을 받았고 '천편일률적인 양식과 소재의 작품들에서 점차 탈피하여, 예술가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새로운 감각의 작품'들을 내었기 때문이다. '회화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과 '개성'을 드러낸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다양한 미술 양식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을 활용한 날카로운 터치로 익숙한 이대원 작가의 초창기 작업도 흥미로웠다. 대다수가 인상주의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대담한 색채와 구성을 사용하여 마티스의 작품처럼 강렬하고 평면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야수파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그의 첫 스승 사토 쿠니오의 영향을 보여준다고 한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낯익은 반가운 그림들이 있다.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 전에 남북 분단이라는 또 다른 아픔을 맞아야 했던 이 시기에는 '전후(戰後)의 참상과 현실을 기록한 역사적 작품들에 이어서, 김환기, 유영국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이 한국적 서정에 바탕을 두고 한국의 산하(山河)를 소재로 꽃피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 한국미술에 대한 전시 설명 중에 특히 와 닿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고난을 딛고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예술'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헤쳐나갈 용기와 저항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힘든 상황에서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그냥 당연한 삶의 일부이자 원동력으로써 작용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나에게 그런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바꿔 말하면 예술가들에게 있어 예술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그런 존재일 것이라는 점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20세기 전반의 한국미술은 이렇게 세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후반은 10개, 2000년대 이후는 2개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를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한국미술이 좀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장 도면을 보면 U자형의 중앙을 지나 네 번째로 이동한다.
회랑에도 작품들이 걸려있는데 공간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중앙에 공간이 있고 양 옆의 층별로 전시 공간이 있는 형태 자체는 오르세의 느낌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다. 다만, 한쪽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려면 그 부분의 공간이 너무 좁아 차라리 반대편에서 감상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1층에서 진행되는 미디어 아트 작품의 소리가 온 미술관에 울려 퍼져 그 부분이 관람을 조금 방해하는 점이 아쉬웠다.
초입부터 심상치가 않다. 돌멩이에, 울룩불룩한 표면에, 캔버스에 이상한 게 붙어 있는가 하면, 뒤로는 특이한 조형물도 보인다. 서울관에서 있었던 박서보 작가의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앵포르멜은 좀 더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추상 표현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소위 '국전'으로 불리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이어진 국가 주도 전람회에 반기를 들고 박서보, 김충선, 문우식 등 작가들은 반국전 선언을 하며 혈연, 학연, 기존 작가 위주 선정 등으로 얼룩진 기성 미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대안을 제시한다.
코로나로 현재 중단되긴 했지만 서울관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승택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가 또한 '보수적인 국전풍의 조각을 거부하고, 고정된 소재를 대신해 바람, 불, 물 등 가변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비조각적인 요소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국전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선미술전람회가 당시 화가들의 등용문이었던 것처럼 국전 또한 보수적이었던 것만큼 기회의 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상철 작가 또한 국전을 통해 등단하여 서양에서 시작된 앵포르멜의 흐름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김형대 작가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을 수상하여 한국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권위를 인정받은 최초의 작가'라고 한다. 특히 <환원 B>와 같은 작품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으로써 '밑은 물감의 유동성, 붓과 나이프 자국의 강렬한 색감이 시대적 상황의 밑바닥을 여실히 폭로할 수 있고 생명감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던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지금은 시그니처 이미지가 확실하게 있는 작가들의 앵포르멜 시기의 작품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작가의 <제사>와 설악산 풍경으로 유명한 김종학 작가의 <작품 603>은 이들의 스타일이 자리 잡기 전 어떤 작업을 했었는지, 어떤 고민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제시한다. 이들은 악튀엘(Actuel) 그룹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위적 성격의 두 단체였던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작가 등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가협회'와 서울대 출신 김종학, 윤명로 작가 등으로 구성된 '60년미술가협회'의 통합으로 앵포르멜의 조류가 당시의 거스를 수 없었던 흐름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했지만 사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많지는 않다. 어떤 것은 앞에 서 있으면 그냥 멍하다. 개인전으로 작가의 배경이나 시대적인 상황을 자세하게 알고 본다면 감동이 느껴지는 그림도 많지만 이렇게 큰 흐름 속에서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텅 빈 캔버스나 아무렇게나 질러버린 것 같은 붓질이 왜 미술관에 걸릴 만큼 대단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직접 볼 때보다는 전시가 끝난 후 돌이켜보며 쓸 얘기가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해서, 다루지 못한 더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이만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다섯 번째 섹션 또한 일반 관람객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말해주듯 1960,70년대의 미술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을 대함에 있어 종이 위에 칠을 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각종 오브제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 많았다.
거침없는 붓터치를 사용해 유화물감으로 수묵화의 담백함과 깊이를 표현하는 작품 위주로만 알고 있었던 이강소 작가에 대해서도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전위적인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섯 번째 섹션까지 난해함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익숙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1970년대는 빛과 어둠이 공존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 주도 경제발전계획이 이루어졌고 중화학공업 육성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그 이면에는 유신체제 아래 민주적인 의견이 억압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단색화 장르의 부흥이 시작되었는데 윤진섭 박사의 칼럼에 따르면 단색화는 '앵포르멜 세대의 귀환'이라고 한다. 즉, 권위에 대한 반발을 근원으로 하여 회화 자체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장르인 것이다.
해당 칼럼이 단색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하고 있어 첨부한다.
http://www.daljin.com/column/13245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도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단색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이 주는 평온함과 작가의 가치관과 철학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정한 형태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무엇을 뜻하고 어떤 의도로 그렸을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림 속에 푹 빠져 나를 돌아보며 상념에 잠길 수 있다. 또한 단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만큼 여러 번의 중첩 과정을 거친 작업물이 대부분이다. 보기에는 평면적이지만 이것을 회화라고 칭하는 것이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입체적인 작품들도 많다. 이렇게 수년 간 만들어진 작품을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체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는 것도, 리뷰도 쉽지 않았던 3층.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도 만만하진 않지만 그래도 현대로 갈수록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2부에서 계속한다. 2부에서는 이번보다는 조금 빠른 템포로 리뷰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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