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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희 Mar 04. 2020

윤희에게 / 임대형

영화

부쳐지지 않은 편지는 시큰하다. 어떤 사정에서건 마음을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수신인에게 가 닿기를 바라면서도, 반대로 그것이 정말로 전달될까 두려워 당장에라도 박박 지워버리고 마음에 묻고 싶은 것이다. 오타루의 겨울은 눈이 잔뜩 내린다.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적막한 겨울. 영화는 쥰(나카무라 유코)이 윤희(김희애)에게 쓴 편지를 쥰의 고모(키노 하나)가 우체국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윤희와 쥰은 20년 전 서로를 사랑했다. 윤희는 가족들에게 그 사랑을 밝혔지만 가족들은 그것을 일종의 병으로만 취급했다. 시대에 잔존하는 낡은 편견은 폭력으로 작용한다. ‘다름’이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폭력으로 얼버무려진다. 둘은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했다. 윤희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다녀야 했고 쥰은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다. 윤희는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와 일찍 결혼을 하고 딸 새봄(김소혜)을 낳는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었고, 윤희에게 결혼은 예속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혼 후 윤희는 아마 외로움과 죄책감, 아련함으로 점철 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새봄에게 희생하는 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멀어진 쥰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 뿐이다.  

쥰도 역시 마찬가지다. 도망쳐 온 자신을 비겁자라 자책하며 윤희에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매일 쓰고 지운다. 둘의 애타는 마음이 평행선을 달릴 때, 이제야 제 수신인을 만난 편지는 윤희의 마음을 후벼판다.


윤희의 딸 새봄은 씩씩하고 영리하다. 아니, 꽤 발칙하기도 하다. 아마도 쥰과 헤어지기 전의 윤희의 모습이  이와 영락없을 것이다. 윤희는 리틀윤희의 꾀에 넘어가 오타루로 얼마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윤희에게>는 여성의 동성애와 딸과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는 퀴어영화다.


사실 나는 종종 이런 종류의 영화를 ‘퀴어영화’ 라며 장르화 시키는 것도 일종의 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특히 자전적이거나 전기적 성격의 형태가 아닌 예술의 소재로서 다뤄질 때 말이다. 설령 그 영화가 소수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편견이고 차별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 논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결국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모순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 판단은 차치하고서, 예술이나 문화가 어떤 주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점은 바람직하다. 어쨌거나 이것들을 통해 나는 얄팍하게나마 다른 삶과 스쳐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작중에서 쥰은 호감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료코를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혹시 여태까지 숨기고 살아온 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숨기고 살아요.”


쥰은 료코를 좋아하면 좋아했지 결코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혹시라도 그녀가 윤희나 자신처럼 죄 아닌 죄로 조리돌림 당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으리라. 과거의 상처가 현재와 미래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작중에 누구에게나 틱틱거리는 새봄이 너무 좋았다. 새봄은 아름다운 것들만 사진에 담기로 했기 때문에 인물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인 윤희를 피사체로 삼는다. 그 순간 새봄에게 카메라 앞의 윤희는 엄마, 이혼녀, 아줌마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자다. 세상이 윤희에게 실망해도 새봄과 쥰에게 윤희는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이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보기에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겠다.


후반부의 윤희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나도 더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너무도 당연한 말이 조금은 처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윤희와 쥰은, 새봄은 이전처럼 멀지는 않으리라.

조용한 시선들을 아름답게 담아낸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게 됐다.


마지막 김희애의 추신. 목소리에 소름돋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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