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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Nov 21. 2020

3인용 플랫, 까넬마끼, 헬싱키, 핀란드

30대 직장인 자가마련기 - 정착에 이르기까지 #12




눈과 어둠.

핀란드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시작했다.


3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핀란드의 학기는 1월부터 시작됐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헬싱키 시내에 각기 다른 곳에 4개의 캠퍼스가 있었는데 캠퍼스라는 단어가 다소 과분할 만큼 작은 건물 한 채가 학교의 전부였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 사무용 빌딩과는 다른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것인데, 건물 곳곳에 다채롭게 사용된 컬러와 조명이 큰 역할을 했다. 쭉쭉 뻗은 직선과 다양한 오브제의 자유로운 조화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었달까.



학교에 기숙사는 없었지만 다행히 ‘플랫’이라 불리는 학생들을 위한 전용 숙소를 사용할 수 있었다. 플랫은 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와 같은 구조였는데 방 3개, 주방 1개, 욕실 1개의 심플한 구성으로 3인이 각자 개인룸을 사용하고, 주방과 욕실을 셰어 하는 형태였다. 내가 배정받은 플랫은 학교와는 트램으로 5 정거장, 약 10분 정도 소요되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다닐만한 위치였다. 기차 같기도, 지하철 같기도 한 트램을 타고 ‘까넬마끼’ 역에 내리자 다소 황량한 모습에 비슷한 건물들이 보였다. 겨울의 핀란드 길거리는 어딜 가나 황량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회색 보도블록과 도로들 위로 이파리가 떨어져 메마른 나무들, 켜켜이 쌓인 눈이 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니까. 큰 캐리어 두 개를 영차영차 끌고 도착한 플랫은 보기에는 몇십 년이 된 연식에 비해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복도와 방문 몇 개가 보였다. 가장 입구 방 문이 열리고 붉은 뺨과 금발의 여자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어어- , 예상치 못한 주거인에 당황한 내가 머뭇 거리자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는 아나이스야! 3일째 혼자라 쓸쓸했어. 반가워, 무겁지 않니? 추운데 어서 들어와!’ , 당황한 내가 떠듬떠듬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속도감 있는 영어로 집안 곳곳을 설명했다. 배정받은 방을 사용하면 되고, 창문은 이렇게 열고, 아직 장을 못 봤을 테니 음식은 본인이 사둔 것을 같이 먹어도 된다고. 빌딩 1층에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코인 세탁기, 건조기가 있고 꼭대기 층에는 사우나가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하고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나머지 방을 사용하는 세 번째 플랫 메이트가 입주했다. 키가 아주 크고 늘씬하며,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친구였는데, 핀란드에서 가까운 라트비아에서 왔다고 했다. 그 나라에는 동양인이 많지 않아 나를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다.


나와 아나이스와 시그네는, 같은 플랫에 살았지만, 아주 다른 생활 습관을 가졌다. 나는 주로 방에서 과제를 하거나, 한국 TV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았고, 아나이스는 주방에서 향긋한 요리를 하고,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키 큰 금발 머리의 시그네는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층에 살고 있는 친구의 플랫에서 보냈는데,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며, 구태여 친해지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플랫 메이트들과 다소 상투적인 관계를 형성했던 반면, 그 나라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살펴준 것은 핀야였다. Pinja. 핀란드어로 pinetree를 의미하는 그 이름은, 얼음의 땅에서 만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것이다. BTS보다 빅뱅이 한창 유럽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몇 안 되는 Kpop의 팬이었다. 그녀는 때론 소녀팬 같고, 때론 무척 어른스러웠다. 투르쿠라고 불리는 핀란드의 소도시 출신으로, 헬싱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참이었는데 나와 몇몇 한국인 교환학생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친구였다. 헬싱키 시내 곳곳을 안내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생활에 어려움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언제나 도움을 주었다. 그녀를 통해 본 핀란드는 교육과 복지로는 단연 좋은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학비는 무료였고, 국가에서 렌트를 하는 1인 스튜디오에서 생활하며 간단한 아르바이트 한 개 정도를 하면, 나라에서 주는 학생 지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핀야의 순수한 호기심과 좋은 마음씨 덕분에, 나는 그녀와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 가서 핀란드에서 공부한 티를 내야 한다며 나에게 몇 가지 핀란드 단어들을 가르쳐주곤 했다. 하나 둘 셋넷, 욱시 깍시 꼴메 넬랴 - 고마워, 끼또스 -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린 몇 가지 단어들. 핀야와 나는 주로 영어로 이야기하고, 가끔씩 서로의 언어를 배웠다. 내 실력이 좀 더 좋았더라면, 그녀와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그곳에서 만난 다른 유러피안 친구들이 겉으로는 매우 사교적이지만 확실한 벽과 거리가 느껴졌던데 반해, 핀야에게는 꽤 오래 안 친구 사이에 들 법한 정이 느껴졌다. 가끔가다 내가 적당한 어휘를 찾지 못할 때면, 그녀는 기다려 주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함께 물건을 구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이케아를 방문했고, 간단한 침구며, 소품들을 골랐다. 지금에야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지만, 핀란드에서 처음 방문한 이케아는 그 공간 자체로 놀라웠다. 이렇게 잘 차려 꾸며진 쇼룸이라니. 그곳을 헤집어 보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대한 영감을 잔뜩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가벼운 원목 가구 몇 가지와 하얀 마감의 소품들로 내 방을 채웠다. 핀야와 친구 몇을 초대해 침대와 간이 의자에 걸터앉으면 방은 금세 우리가 내뱉는 말과 이산화탄소로 가득 찼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Kpop을 틀면 핀야는 곧잘 따라 불렀다. 재잘재잘 - 영어와 한국어, 핀란드어가 뒤섞인 밤이 깊어갔다.






그녀는 언젠가 한번 투르쿠에 있는 본가로 나와 몇몇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녀의 집 앞에는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아름다운 향기가 흘렀으며, 우리는 사슴고기와 감자요리를 대접받았다. 따끈한 식사 후에는 타닥이는 벽난로를 쬐며 핀야의 남동생을 만나고,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함께 보았다. 그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점차 알아가는 것과 같았다. 추운 날씨를 피해 실내에 웅크리고, 기껏해야 다른 친구들의 플랫에서 시간을 보내는 소극적인 핀란드 생활을 하던 2010년의 나. 며칠 뒤 핀야의 권유로 한국의 다른 학교에서 파견 온 교환학생 친구 몇몇과 산타마을이라 불리는 라플란드 로바니에미로의 여행을 떠났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한두 시간 남짓 도착할 거리이지만, 생활비를 쪼개 가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우리는 완행열차 침대칸을 선택해야 했다. 좁고 들썩이는 밤 열차를 타고 열 시간 남짓을 달리면 도착하는 라플란드. 핀란드에서도 가장 북부에 위치한 도시, 일주일에 두어 번은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곳 - 로바니에미.



우리는 로바니에미의 한 통나무 집에서 묵게 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강원도 산속 펜션이랄까, 산채랄까. 이 곳은 극한의 추위와 눈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도시다. 낮에는 산타마을에서 요정과 산타가 손님을 맞고, 밤이면 신비로운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이국적인 도시. 세계의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편지를 써 우체국으로 보내면, 그 편지들은 모두 이 곳으로 온다고 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산타를 믿지 않았는데, 그를 내 눈으로 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산타 마을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산타 오피스, 기념품 샵 등 몇 개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작은 테마파크. 산타의 근무 환경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릎까지 늘어진 가짜 수염을 붙이고 빨간 모자를 쓴 그는, 커다란 의자에 인자하게 앉아 사진 찍는 손님들을 맞았다.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산타는 여러 나라 말에 익숙했다. 우선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객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출신을 이야기하면 그 나라 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어 발음이 제법 능숙한 그를 뒤로 한 채, 잠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홀로집에 같은 영화 속에 나오는 커다란 벽난로와 양말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쌓인 선물 상자들에 대한 작은 로망들이 꿈틀댔다. 산타와 크리스마스. 전 세계인이 열광하고, 대대 손손 전해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텐데. 산타마을에서 돌아온 나와 친구 무리는 오두막 주인에게 크로스컨트리 스키 장비를 빌렸다. 내가 스키를 타는지, 스키가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꾸역꾸역 눈길을 헤치다 보면 그림 같은 설산이 펼쳐진다. 나뭇가지마다 천국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눈송이들이 열려있고, 햇빛에 그 결정의 빛을 토해낸다. 방한 스키복 속 몸에는 잔뜩 열이 올랐지만,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서걱대는 느낌이 날 정도로 추운 공기. 극한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절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후로 나는 없는 돈을 쪼개서라도 부지런히 여행길에 나섰다. 교환학생을 위한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발적인 유랑은 숨이 탁 트이는 듯한 자유를 선사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멀리 가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쇄빙선을 타고 발트해를 건너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가를 둘러보는 발트해 3국 여행부터, 스웨덴 스톡홀름, 크고 작은 소도시까지 - 찬 바람이 거세게 지나고 핀란드에 녹음이 질 무렵까지 나는 북유럽 곳곳을 살폈다. 6월의 핀란드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밤이 되어도 거리는 밝고, 세상은 찬란했다.



초록과 빛.

핀란드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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