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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물결 Jun 03. 2020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무계획 제주 당일치기 03

더 까먹기 전에 써보는 지난 9월 무계획 제주 여행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200


당일치기 여행인데 포스팅만 세개째라니. 더 늘어나지 않게 이 포스트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읽는 사람도 재미없겠지만 쓰는 나도 너무 지친다. 글 쓰는 분들 진짜 리스펙.


갑작스럽게 평일 휴가를 얻게 되어서 급하게 새벽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그리고 아침부터 우도에 들어가서 놀다가 종달리에서 한가로이 책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책 읽다가 갑자기 세화의 바다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버스를 타고 왔다, 세화리에.



#하늘과_닮은_지붕

세화에 내리니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 참 좋은게 빛이 예쁘게 퍼져서 사진이 잘 나온다. 하늘과 닮은 지붕의 집을 보고 셔터를 많이 눌렀는데 그 사진들 모두 다 잘나왔다. 따뜻함이 사진으로도 바로 느껴져서 참 좋다. 



#바다보러_가는_길

종달리보다 찾는 사람이 더 많아서인지 세화는 확실히 번화가같다. 차가 참 많이 다닌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이 예쁘지만 이 풍경을 감상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혼자있고 싶으니 모두 로그아웃해주세요.'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바라보기만해도_좋은_시간

가만히 서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임현식 님의 <Swimming>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바다만 보면 생각나는 노래다. 세화의 바다와도 참 잘 어울린다.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을까.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재능이 많은 사람들 참 부럽단 말야.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자니 참 다정해보이지만 저 파도가 삼킨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싶더라. 많은 사람들의 넋과 애환이 저 바다 아래에 잠겨있는 것은 아닐까. 그 수 많은 이야기 속에 내 이야기도 넌지시 넣어두고 왔다.



#야자수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야자수를 보았다. 야자수는 언제 봐도 예쁘지만 특히 해가 질 때의 것이 최고다. 빛이 반사되어서 붉게 변한 야자수를 보며 이제 또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을 해본다. 일단 공항 근처로 가본다. 제주에 오면 꼭 들리는 식당이 있는데 그게 구제주에 있기 때문이다. 앉아서 갈 수 있길 바라며 곧 퇴근 시간이지만 자리가 있는 버스를 기다려본다.



#해가_진다

든든히 밥을 챙겨먹고 나오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이대로 카페에서 후식을 먹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오늘은 저 노을을 자세히 보고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단 걸었다. 용두암 쪽을 향해. 구제주에서 가장 노을을 잘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역시 용담동이니까.



#파노라마효과로_담다

이날 노을 사진만 필름 한통을 찍었는데 고르고 골랐다. 파노라마 효과로 찍은 제주의 석양. 롤라이 프레고90에 파노라마 효과라고 있는데 사실 별 큰 효과는 아니고 위 아래에 블랙 바가 생긴채로 촬영이 되는 효과이다. 근데 이 별 거 아닌 효과가 영화처럼 보이게 해줘서 별 거 아닌 사진을 별 거처럼 만들어준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별 거 아닌 일들이 별 거처럼 만들 때가 있으니까. 별 볼일 없는 내 인생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해보이지 않을까.



#고냉이

잘은 안보이지만 고양이가 있다. 어릴 적 호적 메이트가 개에 물리는 걸 두 눈으로 본 이후 개는 사실 무서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유독 고양이는 좋다. 왜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고양이는 개처럼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존재라 그런 거 같다. 나도 그들을 귀찮게 할 생각이 없고.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든다. 길고양이를 위해 늘 항상 가방에 고양이 간식을 하나씩 넣어다니는데 이날도 때마침 가방에 딱 하나 있길래 조용히 멀찍이서 간식을 조공해드렸다. 고양님이 잘 드셔주셔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더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나저나 고양이 만세.



#집으로_가자

바다를 보고 카페에서 좀 놀다가 9시 비행기에 탑승했다. 당일치기 제주 여행이 끝이라니 아쉬웠다. 하루가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운이 좋게 평일에 휴가 아닌 휴가를 얻어서 제주에 내려올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콧바람도 쐴 수 있어서 진짜 좋았다. 김포까지 가는 한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 동안 책을 또 한번 읽었다. 사라지는, 살아지는. 잘 사라질 수 있게, 잘 살아질 수 있게 해봐야겠다. 아쉬움만 가득했던 제주 당일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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