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에 쓰는 글.
잠에서 깼지만 그냥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제도 하루종일 잠만 잤는데 오늘도 아무 것도 안할 생각을 하니 한없이 기분이 다운되는 것 같았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떠올라 씻고 인센스스틱 하나 켜둔 채 커피를 내려서 책상 앞에 앉았다. 갑자기 달콤한 것이 먹고싶어져서 배달앱으로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인절미 와플을 주문했다. 넷플릭스를 켜서 뭐를 볼까 하다가 <나의 서른에게>라는 영화를 틀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혼자서 주절거리는 일기인데도 이렇게 쓰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있어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4월 3일이면 나는 서른살이 돼. 검사 결과를 받은 그 순간부터 내가 몇 살인지는 아무 상관 없더라.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는 거지.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만은 않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거야.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싶은 말이다.
요즘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초록초록한 식물들. 여름이라는 계절은 땀이 많이 나서 싫지만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좋은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때이다. 요즘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숲이다.
나무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 숲을 걷다보면 마음까지 정화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더해져서 멋진 음악이 된다. 다양한 생각으로 복잡한 머릿속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이런 숲에서 마스크를 끼고 걷는다는게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걸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빛을 받은 나무들이 얼마나 푸르른지 내 카메라로 담을 수 있다는게 정말 행복하다.
인간은 나무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요즘 서울숲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camera : Leica minizoom
film : Kodak ultramax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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