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OO SHALL PASS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면 한 뭉텅이의 책을 뽑아 자리를 잡고 쌓아둔 책을 다 읽는 게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일 정도로 나는 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일본에 건너오고 어느 순간부터 글을 읽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
종이 가득히 줄을 그어가며 바득바득 읽어낼 수는 있었지만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읽는 행위 자체로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그즈음부터인가 손과 발의 말초신경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문을 열려고 문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는데, 손발이 엄청 저리다 풀린 거처럼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머리도 몸도 내 모든 것이 어딘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혼자 심각하게 한국에 돌아가서 MRI를 찍어야 하나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연구실 생활은 계속되었고 다행히도 적금 마냥 쟁여뒀던 예전의 지식들로 어찌저찌 삐걱거리며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생각으로부터 기인하는 모든 것들에 논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잡아야겠다.'
결심하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케줄 관리용으로 언제나 쓰던 스케줄러 대신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의 다이어리를 사고 좋아하는 색의 펜으로 또박또박 다이어리에 하루하루 무엇이든 적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좋아하는 책의 구절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본 영어 문장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간단한 그림인 날도 있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이상 말초 신경이 이상하다는 느낌도 사라지고 글 읽기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좀 더 길게 글을 써봐야 하지.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이 논리가 부족한거 같고 가끔 미래에 관한 불안과 우울감이 들지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또한 괜찮아지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들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