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죽음이 어울리는 단어인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 <행복한 죽음>을 처음 접하는 순간 그 모순에 호기심을 거둘 수 없었다. 나에게 주인공인 뫼르소보다 마음이 간 사람은 자그뢰스이다. 젊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벌고 행복해하던 자그뢰스는 갑작스런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다. 삶을 괴로워하다가 뫼르소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는 청을 하게 되고. 뫼르소는 돈을 받고 그의 청을 들어준다. 무심하게. 자그뢰스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죽음을 맞았다.
그 순간 그는 행복했을까?
20여 년 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미숙아.. 남자아기인지 여자아기 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하에 의료진과 부모는 아기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였다. 인공호흡기의 관이 뽑혔다. 신참내기 간호사였던 나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이론으로만 죽음을 배웠다. 무엇보다 가족 간의 죽음을 직접 목격해 본 적이 없던지라 솔직히 그 상황이 무서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호흡기 관을 빼자마자 삐 하는 기계 알람 소리가 울리며 숨을 거둘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아기는 가녀린 숨을 내뱉고 힘들다는 몸부림조차 버거운 듯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아기의 부모는 오지 않았다. 모두 아기를 위해 잘 가라는 인사를 했지만 난 그 아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있는 환자를 돌보고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냉정함을 요구받는 간호사가 손 놓고 그 아기만을 쳐다보며 눈물지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 아기는 홀로 누워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맡은 자기 일을 정시에 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본 가장 슬픈 죽음이었다.
죽어가는 그 아기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생각보다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상황이 다를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없어 짧은 내 경험만으로 이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임종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엔 웰 다잉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는 법이 시행되고 있어 웰 다잉은 사회적 공론화되고 있다. (참조: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 약칭: 연명의료결정법 ) 그러나 2022년 5월 11일 KBS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 의하면, 집에서 가족들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환자보다 가족들의 바람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벨기에는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할 권리를 넘어서서 안락사도 합법화되어있다. 2002년 법제화가 되어 시행된 지 20년이 되어간다.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14년 미성년자에게도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물론 적용요건과 그 절차는 매우 엄격하다. 최근엔 치매에 걸리면 안락사를 선택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으며 이 또한 현재 법제화 여부가 논의 중이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선 안락사와 관련한 소송들도 발생하고 있고 언론엔 유명인들의 안락사에 관한 소식들도 전해진다. 2021년 7월 27일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방송국인 VTM의 뉴스 앵커이자 유명한 방송 제작자 었던 피터 반더보르네 (Peter Vandeborne)가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 인터뷰한 내용이 신문 기사로 실렸는데(참조: Het nieuwsblad.be/20210730), 그 인터뷰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신문이나 책에서 접하던 안락사의 논의와는 다른, 우리와 같은 사람, 내 가족, 친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방송인과 제작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4년 암 진단을 선고받았다. 골수암이었다. 당시 그는 재혼하여 부인이 임신 중이었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혹시 집 근처 사과농장에서 살포하던 살충제 때문일까" 하며 그 이유와 해법을 찾으려고 고민했지만 누군가를 비난한다고 병이 낫는 것이 아니기에 포기했다. 그의 선택지는 "난 아프지 않아" 하는 자기 최면이었다. 왜냐하면 환자이지만 아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4년 뒤 뇌와 목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이는 사지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치료는 효과가 없었고 투병한 지 7년차인 지난 2021년 봄 그의 가슴부터 발까지 마비가 되었다. 결국 그는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
승리(victory)를 품은 이름인 아들 Victor는 이제 7살이 되었다. 아들은 아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빠가 죽기 전에 같이 컵케익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는 아들, 그 아들을 위해 장례식 한 꼭지를 준비하는 아빠. 벨기에에서 유명한 아이들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Piet Piraat> 이 있는데, 해적선을 배경으로 하여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주인공인 해적선 선장이 와서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해적이 되었다고 얘기해줄 거라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방송인이니 그런 계획도 가능하겠다 싶다. 그렇게 매일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며 준비하였다. 그는 자신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잘 떠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해줄 장례식을 직접 기획하였고, 언제 떠나야 하는지도 정해야 했다. 그의 경우 자신의 생일날과 아들 생일, 부인 생일 사이에 언제로 해야 할지... 실질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그의 결정에 반대하지는 않았을까? 이 질문에 피터는" 내가 언제 떠나야 하는지는 나의 결정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도와준 3명의 의사들이 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안락사를 선택한 뒤 나는 가족, 친구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더 풍요롭게 느꼈졌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안락사가 합법화되기 까지 힘쓴 이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평화롭게 작별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세상을 다 보았고, 욕심을 부리며 살아봤고, 그리고 현재에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슬프게도 그의 노모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아들은 걱정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가 안락사받는 자리에 함께 한다. "내가 널 이 세상에 데려 왔으니 네가 떠날 때도 같이 있어야지.."
피터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생전의 피터와 그의 어머니. (출처: www.nieuwsblad.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