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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Jun 03. 2020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선물

[마르쉐 영국연수기_16] 브레드바이바이크 1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촘촘한 일정이었으나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시간이 좀 남으면 후다닥 런던 곳곳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많이 정제된 이야기만 했다. 미리 연수 준비를 한다고는 했으나, 바쁘게 일하다가 정신없이 오다보니 우리는 다들 심신이 이미 지친 상태로 연수를 시작했다. 앞서 소심하게 언급하긴 했으나, 힘을 꽉 채운 상태로 왔다고 해도 집단 생활이란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뭘 알아보고 계획하고 할 힘이, 무엇보다 흥이 안났다. 그 와중에 비교적 최근 런던을 방문했던 일행의 추천으로 미술관을 두 곳이나 가게 되었다. 두 곳 다 가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런던의 그 유명하다는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해서도 여기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무지하고 연수일정 밖에 모르는 바보 바보 정말 바보였던 나는 막상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실에 들어서자 허를 찔린듯 눈물이 콱 솟았다. 


시인이 쓰는 바람, 눈썹, 나무, 새, 외투 같은 단어처럼 언제나 어린 마음을 움직이던 익숙한 이방의 이름들 - 모네, 세잔, 클림트, 고갱, 쇠라, 마티스, 피카소… 책과 모니터로만 보던 그림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가끔 미술관의 대규모 초대전시에서 맛만 봤던 서구 화가들의 작품이 그 높고 넓은 방마다 빼곡한 풍경은 입구부터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독 인산인해였던 고흐의 그림 앞에서는 사람들 머리통 사이로 보이는 해바라기 끄트머리와 게딱지 등을 보며 몸을 떨기까지 했다. 

작은 지역에서 나고 자라 당연한 순서처럼 고흐를 좋아하며 2000년대 초반 서양화를 배웠던 나는 당시만 해도 여전히 저급한 화질의 비싼 화집으로 그런 그림들을 보곤 했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들 말로는 실제로 보면 그림들이 정말 다르다고 했는데, 정말 달랐다. 그것도 떼로 있으니!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기본 폰 카메라로 찍은 나와 자동 포토샵이 되는 사진어플로 찍은 내가 씨족을 넘어 국적까지 다른 사람이듯이 달랐다. 좋아하는 스타를 모니터로만 보다가 우리집 거실에 앉아있는 그를 본 것처럼 달랐고 놀라웠다. 그냥 모든게 달랐고, 떨림과 눈물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야 어찌됐건 일단은 이런 그림들을 수시로 게다가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런던 시민들이 부러웠다. 유럽은 처음이라 내가 촌스러운거야? 뭐야, 뭐야! 암튼… 부러웠다. 

또 다른 날, 일정을 마치고 빈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자며 뿔뿔이 흩어지는 중에 테이트모던Tate Modern에 간다는 일행을 따라갔다. 그리고 아무 정보없이 덴마크 출신 작가인 올라프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의 전시를 우연히 봤다. 이 전시에 대해서는,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이야기를 못하겠다. 가슴 속에서 파도가 쳤다가 해가 작열했다가 바람이 휙 부는 것 같았다. 그 모든게 한번에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미술관이 문닫기 직전 양해를 구하고 뛰어가서 볼 수 있었던 안개의 방을 통과하니 다시 태어난 것처럼, 내 자신이 낯설어졌다. 나는 누구에겐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노력할게요’라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걸어서 밀레니엄교를 건넜다. 날씨가 하필이면 기가 막히게 좋아서, 모든게 필연적으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냥, 모든 것에 감사했다.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으면 얼떨떨해서 미처 감흥도 없다가 두고두고 감동과 고마움이 사무친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좋은 순간들 또한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이번에 얘기할 곳도 원래 예정에는 없던 곳이었다. 연수의 마지막 일정인 농가 투어를 앞두고 우리에게는 여유시간이 하루 있었다. 농가에 다녀오면 바로 출국해야 하니 이 날은 각자 자유시간도 좀 즐길 계획이었다.


유럽에 왔으니 모름지기 갓 구운 빵 같은 걸 기대했으나 스릴 별 다섯개급 숙소에서 지내며 맛있는 빵과 커피로 조식 한번 못해 본 우리는 조금 서글펐나보다. 그래서 전날 밤, 일행이 사워도우빵을 먹고싶다며 구글맵으로 숙소 근처 빵집을 검색했다. 도보로도 30분 안팎의 거리에 마침 아침 일찍 여는 곳이 있었다. 가게 이름을 보니 스트라우드그린 파머스마켓의 에드먼드가 지역 소규모생산자로 이야기했던 곳이었다. 일정이 안맞아서 빼놓았던 곳인데, 마침 다른 곳들이 조정되면서 일정이 비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각자 흩어지자며 빵집에 도착했다.

딱 동네의 작은 빵집같은 브레드바이바이크 Bread by Bike Bakery 에 들어서니 신선한 빵 냄새가 가득했다. 테이블이 딱 두개인 곳으로, 통통하게 잘구워진 빵덩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테이블에 앉아 스프나 커피 등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빵과 샌드위치, 스프와 커피를 시키고 앉아있으려니 세상 다 가진듯이 행복해 모두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걸 보니 동네에서 인기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이름도 그렇고 밖에 세워둔 수레달린 자전거도 수상했다. 게다가 빵이 정말 맛있잖아! 이 빵이, 이 밀이 궁금했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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