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말을 걸어온다
그날을 이야기해야겠다. 한때 내게 삶이었던 날들을, 내가 속했던 계절을, 이름도 꽃말도 없던 그날의 정원을. 오래도록 혼자였기에 더 애틋한 날들을. p.7
무엇을 삶이라 불러야 할까?
이것도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난 어디서부터 고장이 난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고장 난 것일까?
‘내일은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몇 년 동안 주문을 외우듯 했던 나의 기도였다.
과거에, 상처에 묶여 부모 탓을 하면서
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때의 나를, 내 부모를 그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과거’란 이름으로 명명하고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아서..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고 싶었다.
새로운 삶의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현상을 해석할 수 없을 때 빈 공간을
경험과 지식을 합한 예측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날 더 가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든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때부터였다.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은.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기 시작한 것은.
꽃 하나 피우기 위해, 잎 하나 틔우기 위해
이 아이들도 꽤나 많은 부침을 겪는다는 것을
자연의 변화를 통해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늘 들어주고 보듬어 주고 쉬게 해 주었다, 자연은.
자연 속에 앉아 있으면 고통도 고통의 이유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p.59
안리타 작가님도 이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살아간 이유가..
‘이 정도면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삶이다’(p.58)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늘 재촉하고 강요하고 부침을 겪었던 삶 속에서
자신을 품어주는 자연으로 유턴하는 삶.
충분한 휴식과 단단한 내면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만든다.
지금의 안리타를 만들었을 한때의 삶.
그 속에서 느낀 단상들을 적은 글 속에는
알을 깨고 갓 태어난 자그마한 새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긴 느낌이 들었다.
누구를 탓하지 않으며, 재촉하지도 않고
각자에게 허락되고 주어진 삶이 있음을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것. 살아왔었고, 살아갈 것.’ p.222
그렇게 기록된 그녀의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
그녀의 내면에 어떤 명징한 메아리가 울릴지,
그 길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난 설렘을 안고 기다릴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장소가 있다. 원래 쓰려던 것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거기서 파생된, 알 수 없는 미로를 걷다가, 부서지고 흩어진 단어를 하나하나 공들여 줍다가 한 문장씩 연결해 보면 전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과거가 완성된다. 이 책은 그렇게 쓰였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