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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May 09. 2023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써야만 하는, 쓰고야 마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끝나면 행복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지옥의 문이 열렸다. ‘엄마로 산다는 건 말야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거야’(p.11) 정말 그랬다. 집안일과 아이 케어 그리고 다 큰 어른의 필요까지 채워주고 나면 온몸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나가서 몇 시간만 걷고 오고 싶었지만 두 시간마다 배고프다 울어대는 아이가 있으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배가 터지도록 젖을 물리고 아이가 잠드는 것을 확인한 후에나 잠시 나올 수 있었다. 휴…. 좀 숨이 쉬어졌다.



아이가 잠을 자야 육퇴를 할 수 있는데.. 육퇴를 해야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비로소 내 시간이 주어지는데…

아이는 커갈수록 눈이 말똥말똥, 잠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빨리 안 자면 혼낼 거라고 협박하다가, 착한 아이는 빨리 잔다며 회유하다가, 제발 좀 자달라고 애원하다가, 그러다가, 그러기를 반복한’(p.47) 후에야 아이는 잠들었다. 아이보다 더 먼저 잠이 들어 씻지도 못하고 아침까지 내리 잔 날은 그 시간이 아까워서, 내 자유시간이 몽땅 날아간 것이 속상해서 딱 울고만 싶었다.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 보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그럴 때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에게 온 신경을 다 써야 할 땐 한 자도 쓸 수 없을 때가 많을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몰려오는 자책감과 아이를 온전히 돌보지 못한 것만 같은 죄책감, 한 자도 써지질 않을 때 느껴지는 조바심과 타인을 향한 원망… ‘아무도 미워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를 미워했다’ 던 정이현 작가의 글이 너무도 와닿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글도 쓰지 않던 나도 모든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를 미워했으니까…



외줄 타기 하듯 엄마와 작가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느낀 감정들이 손으로 만져지는 듯 생생했다. 첫 장부터 눈물 펑펑 쏟아가며 읽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 속에서 홀로 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의 고단함이 느껴져서… 그럼에도 놓지 않는, 아니 놓을 수 없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삶이 눈부셨다. 흔들리지언정 가던 길을 걸어가려는 단단함이 느껴져 좋았다. 당신들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빛이 될 것이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는 일은 가끔 인생이라는 만원 열차에 서서 영영 앉을자리 없이 종착역까지 가야 하는 일 같다.

p.28


아이가 잠든 후 조심스럽게 타자를 치던 새벽,

나는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내 이름을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랬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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