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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Nov 06. 2020

이랜드를 생각한다

Prologue

          아마, 2014년 중 언젠가 일 것이다.


          그 해엔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영원히 바꿔버린 슬픈 사건이 있었다.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인상적이었을 사건도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랑의교회’를 다룬 MBC의 PD수첩 996회 방송이다. 또 그때 나는 이랜드라는 이름의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2014년은 개인적으로 약 8년여의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사람은 위기를 겪을 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게 OO냐’는 외침은 그것에 대한 매우 격앙된 표현이리라. 이게 나라냐, 이게 교회냐, 이게 회사냐. 내가 속해있는 여러 단체들이 모두 정체성의 도전을 받고 있을 때, 아마 그 때쯤 이었을 것이다,


          이런 글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게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 나라를 떠나 살겠다고, 아니 떠나지 못하면 죽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 내가 출석하던 교회는 건강하고 존경스러운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으며, 지식경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과업을 다루며 밥만 축내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얽혀 무슨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국민과 교인과 회사원 중에 우선 좋은 회사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생산성이 높고, 동료를 도우며, 후배를 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술자리에서 “이게 회사냐!”라고 목놓아 부르짖었던 만큼, 적어도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너 따위가 선배냐!” 같은 고통을 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파고들었던 독서와, 또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조금씩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고, 몇 년이 지나 이직을 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랜드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뭐야,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힘들게 했던 회사를 나오면서 서운한 감정 없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저 말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뛰쳐나오면서 똥 뿌리고 나오겠다, 밤마다 노트에 빨간 펜으로 적었던 이름들 앞에서 호탕하게 사원증 던지고 나오겠다 등등. 오랜 시간 상상해왔던 온갖 유치하고 매력적인 시나리오가 정작 퇴사 당시에는 전혀 끌리지 않았고, 그런 내가 나 조차 신기했었다. 그 때, 아마 그 때쯤 이었을 것이다. 날 괴롭히는 사람에게 화풀이 한 번 시원하게 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은,


          그 사람이 쳐놓은 한계를 넘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게 말이다.


          이 글은 “회사생활을 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이다. 이랜드에서 11년 가까이 근무했던 경험이 주된 사례가 될 것이다. 한 기업만 가지고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이게 진짜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둘째 ‘회사생활의 행복론’같은 이론이 아닌 생생한 실제 사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며, 셋째 개인적으로 이랜드의 평균적인 임직원에 비해 내 이력이 이랜드를 다채롭게 보여주기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이랜드의 수혜자다. 국내 대기업은 흔히 사내에 전략 컨설팅 업무를 전담하는 ‘인하우스 컨설팅팀’을 두고 있다. 이랜드도 지식경영이 시작되던 이천년대 초반을 지나 약 2005년부터 전략기획이라는 직무로 직원들을 채용하다가, 2007년에 처음으로 그룹 공채로 전략기획을 뽑았다. 그게 나중에 ESI(E-land Strategy Intelligence)라는 이름의 사내 전략 컨설팅팀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나는 ESI 1기였다. ESI 출신들은 약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여의 ‘CSO실(Chief Strategy Office, 전략기획실) 전성시대’의 후광을 받아 다른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하기 힘든 프로젝트 맡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부서이동을 할 기회가 많았다.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나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경기도 오산이다. 혹시라도 우연에 우연을 곱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ESI 출신이 있다면, 구글에 ‘마태 효과’를 검색해본 후 겸손한 마음을 가지길 권한다. 나 역시 동기들 중 가장 빠른 해외출장을 비롯해 영업, 인사, 전략, 브랜드 런칭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쳐 본부장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런 운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난 지금 이랜드를 미워하지 않는다. 날 모함하고 힘들게 하던 상사도, 무능했던 리더도 지나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 속에서 발견한 회사생활의 의미와 재미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또 그 지혜들을 잘 정리할 수 있다면, 직장생활을 하며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생활의 소소한 팁들을 얻거나, 직장 내 처신에 대한 아이디어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직장에 속한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행복한 직장생활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누구나 행복한 직장생활을 희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난 죽어도 좋겠다. 그대 직장인이여,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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