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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02. 2022

무용을 판매하는 시대

택시를 탔다.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일요일이 아닌 이상 예술의 전당 공연은 전철을 타야한다. 공연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날도 서초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도통 버스가 올 생각을 안 해 택시를 탔다. 공연에 늦으면 큰일이니까.

연세 지긋하신 기사님의 차를 탔는데 거기엔 왜 가냐고 물으셨다. 공연이 있어서 보러 간다고 말씀드리니 

“그런 곳에서 하는 공연은 아주 비싸지요? 많이 좋은가요?” 물으신다. 

얼마쯤을 생각해서 비싸다고 하셨을까? 좋다고 해야 되나 잠시 생각하는 사이

“10만원도 넘지요?” 하신다. 

아이쿠, 

“아니요. 지금 제가 보는 건 3만원이에요. 비싼 거도 있지만 더 저렴한 것도 있어요. 보고 싶으세요?” 하니 당신은 그런 건 안본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난 그런 거 안 봐요. 일만 했지. 난 놀 줄을 몰라. 노래방도 안 가는데 뭘. 쉬는 날 산에 가는 게 내가 노는 거 전부야. 산에 가서 풀이랑 바람이랑 꽃이랑 말을 해요. 그게 난 제일 좋아.”

하시는데 목구멍에 뭔가 모르는 것이 턱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기사님이 산에서 하시는 대화가 예술이네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더 이야기하신다.

“아주 옛날에 동네에 서커스단이 가끔 왔는데 너무 궁금했어. 그런데 볼 수가 있나? 사람들 표 검사하는 사이 고 밑으로 쏙 들어가서 보곤 했지. 그 땐 작으니까 그 밑으로 재빨리 들어간거야. 그렇게 안 하면 볼 수가 있나? 비싸서. 그런 건 비싸서 볼 수가 없지.”

기사님과의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지금도 괜히 먹먹하다. 기사님께 무용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런데 한 편으로 재미없다고 하실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에서 풀과 꽃이랑 대화를 하시는 분이니 말이다. 그 분이 보시고 느끼시는 게 내가 무대에서 본 공연보다 덜 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분은 보지도 않으시고 비싸고 좋은 거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무대를 보신다면 그 기대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분께 무용무대는 그저 비싸고 좋지만 본인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왜 무용은 20년 전에도 대중화를 노래했으면서 이런 분들에게 보려는 의지마저 없게 하는 걸까?

지난 달 경기도무용단과 작업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국내 최초로 네이버 라이브커머스로 공연티켓 50% 할인 판매를 했다. S석을 만 오천원에 파는 것이었다. 예술감독과 함께 라이브진행을 해야 했다. 홈쇼핑처럼 공연티켓을 판다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쇼호스트처럼 고객들에게 작품을 홍보하고 티켓을 사라고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솔직하게 무용이 싸구려가 되는 거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체면이 있지 거길 어떻게 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택시기사님이 생각났다. 무용이 아직 대중화가 되지 못한 게 이런 못난 생각 때문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말했던 나의 생각들이 갑자기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 때 만난 기사님이 무용이 보고 싶다며 극장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다. 예상외로 만 이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방송을 보았다. 그들이 무용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생각한다. 무용이 대중들에게 다가갈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경기도 무용단이 다음 공연도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한다고 한다. 물론 나도 함께 나간다. 이번엔 보다 적극적으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용을 전할 생각이다. 춤도 좀 출까하는 고민도 하고 있다. 체면? 많은 사람들이 무용을 알아주는 것이 체면이 서는 거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 혼자 버둥거리며 하는 거, 봐주지도 않는 걸 우아한 척 하던 게 체면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기사님이 이 커다란 이치를 깨닫게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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