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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Feb 12. 2024

AI발 혼란과 싸우는 핵개인에 전하는 T식 위로와 조언

송길영: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를 읽고

작가를 보고 신뢰로 읽은 <시대 예보>다.


작가인 송길영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인상부터 개성이 뚜렷하시다. 정갈하게 묶은 포니테일에 날카로운 눈빛과 깐깐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런 송길영님을 좋아하는 것은 외면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와 달리 알고보면 엄청나게 따뜻한 컨텐츠를 품은 의외성 때문이다. 날카로운 어투를 가지고 있고, 데이터로 접근을 하시는 분이니 객관적인 시선도 명백하다. 그러나 내용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송길영님을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그가 K장녀의 죄책감을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좋은걸 먹고, 좋은 곳을 갈 때, 심지어 회식과 같은 때에도 느끼는 암묵적인 죄책감. 친구들과도 쉽사리 공유하지 않은 그 미묘한 감정을 그는 알고 있었다. 머리 묶은 데이터 한다는 아저씨가 K장녀 컴플렉스를 조망해주는 것이 사실은 고마웠던 것 같다.


<시대 예보>는 작년 어느 컨퍼런스에서 특강으로 먼저 들었었다. 물론 유튜브에서도 꽤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플루언서다 보니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느정도 일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무대를 쥐락 펴락하는 연사를 보면서 저 책은 안볼 수 없었다. 고작 1시간 안에 마이크를 입과 붙였다 뗐다 하면서 전달하는 아주 깔끔하고 입체적인, 강의보단 일종의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요약본 영업에 당해낼 수밖에 없었으니, 책도 천천히 곱씹듯 적으면서 찬찬히 읽었다.









내겐 위로가 된 핵개인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핵개인이다. 개인이라는 글자에 “핵”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 정말 그렇다라는 강조와, 더 쪼개졌다는 의미가 동시에 붙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핵개인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 지 조차 굳이 특성으로 나열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것 같다. 굳이 어떤 카테고리에 나눌 것 없이 그냥 그 사람 그대로 존재하는 것. 


나는 F임과 동시에 T일 수 있고,
BTS를 좋아하는 60대일 수도 있으며,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 가족일 수도 있다.

사회의 복잡성이 커지고, IT가 우리의 취향을 정조준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온전히 개인일 수 있으며, 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다양성을 간직한 사람이자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분류는 경쟁을 수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분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렇게 똑똑한 양반이 정돈된 말투로 핵개인의 삶을 지지하고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다. 늘 분류되기 어려운 미운오리새끼같다고 느껴왔던 삶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가 이젠, 그 자체가 정체성이 되어버렸다고 인정한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브런치 소개문구에 “스페셜리스트를 동경하는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늘 불안한 삶이었다. 병적으로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양시론자였다. 어떤 틀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게 물론 효율적임을 알지만, 때론 그게 폭력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환경주의자였고, 감수성이 풍부한 T이며, 결혼과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다. 마케팅으로 입사한 회사였지만, 데이터를 하고 싶었고, 끝내 다루게 되었으며, 지금은 AI로 피규어 디자인을 한다. 도대체 무슨 혼종인지 늘 혼란스러운 사람이다. 


AI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떤 직업이 과연 기술에 대체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인가 사람들이 고민할 때, 내가 들은 가장 명쾌한 해답은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결국 혼란을 받아들이고, 그 자체를 내 정체성으로 삼게 되었다. 


우연히 또 시대가 그런 사람에게 유리하다니 얼마나 위안이 될 말인가.



권위의 액상화

핵개인이 사회를 채우다보면 자연스럽게 권위는 예전같지 않아진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역동성이 커지면 권위가 액상화 된다”는 표현을 쓴다. 이는 요즘 사회를 채운 MZ담론에서 핵심이 될만한 것이다. MZ는 합당하지 않은 권위에 대한 의문을 그냥 따르지 않고, 의문한다. 그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요즘 시대가 말하는 권위라는 것이 왜 불편한 것인지 일관적인 목소리를 낸다. 권위에 대해 정의한 내용 중 뇌리에 남는 몇가지 문장을 공유한다.


정리된 내용만 추렸는데도, 이렇게 권위에 대한 내용이 많은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권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래서 권위있는 사람이 탈권위를 말하는 것이 반가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권위라는 것이 무조건 부정되는 것이 아님을 세상이 알았으면 좋겠다. 

답지 않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지,
권위 다운 권위는 여전히 필요로 한다. 


핵개인 사회가 될 수록 사람들은 정말 기댈만한 권위에 갈증을 느낄 것 같다. 어른 다운 어른을 내심 찾고 있으며, 내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요즘 젊은이들인 것 같다.


권위는 인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수용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권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정당한 인정이 권위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젊은 층은 자신들의 번영과 생명력을 제한하는 그 모든 것을 권위적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의 핵개인들은 권위적이다라는 말 자체를 더욱
혐오의 감정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권위적인 상사인가 ↔ 전문성과 포용력을 갖춘 현명한 권위자인가
지금 시대에는 효율을 전제하지 않은 명목상의 권위를 권위적이라 규정합니다.
인정은 내가 갈구하고 상대가 그렇다고 해줘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권위 자체를 목표나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권위를 획득하려는 순간 또 한번의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학벌은 인정 획득의 장치로 쓰일 수 있겠지만,
학벌로 유세 부리지 않으려고 해야 그 노력의 권위와 인정도 온전히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권위의 보존은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지, 그 인정은 타당한 지,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순번이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잘못된 권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컨텐츠가 쏟아지면 저자라는 타이틀, 검색의 권위 역시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권위자와 직거래가 가능해진 것이 바로 달라진 세계의 특징입니다.
지역에서 유세를 부리던 골목대장은 더이상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부장도 신입도 인정을 갈구합니다.
부장은 이상한 마이크로매니징을 하고 피드백을 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권위로 묵살합니다.
인사권 시스템에 권위가 잘못 탑재되는 순간 권력은 폭주할 수 있습니다.
권력 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반론에도 계속 기존의 평가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가설은 하나입니다.
평가 주체가 평가 대상에 대해 권력을 갖고 싶어서입니다.
분류가 세밀해질수록 기준이 복잡해질수록, 무엇보다 정성적 평가 기준이 늘어날수록
평가자는 더 큰 권한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항상 평가자가 권력을 갖습니다.
평가가 조밀해질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대방을 피험자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시험 과목이 늘면 상대는 더 많이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잘하는 것, 나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라는 탐구는 우아한 이야기가 되고,
피험자는 오직 평가 대상자가 되어 평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압력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피험자 모드가 강화되면
늘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처럼 불안한 사회생활이 이어집니다.
조직 내에서 이런한 줄 세우기가 심화될수록 그 대응으로 개인은 다중 자아를 만들고자 합니다.

경쟁에 순응하는 직장에서의 자신을 남겨둔 채
저녁 시간에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토요일 오전에는 자산관리 세미나에 참석해서라도 활로와 방편을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추월 차선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은 부캐를 꿈꾸게 합니다.
탈권위가 대세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찾는 것은 권위 해체가 아니라 좋은 공동체, 좋은 어른입니다.
멋지게 나이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 입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닙니다.
지금의 나는 늙었기 때문에 무언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시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행위는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인간의 도리로 정착됐지만
사회적 설계로 그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돌봄의 끝은 자립이고,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사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 is just not evenly distributed
미래는 이미 여기에 존재한다, 다만 모두에게 동등하게 오지 않았을 뿐이다.

- William Gibson -


내가 좋거나 말거나, 명백하게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멀리서 분석하는 여유를 부릴 여유가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 척척하고 있는 AI, 그리고 그 AI를 통해서 머든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강의와 서비스들. 피로하고 불안하다.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떨어진 불똥같이 느껴진다. 아예 외면해버리거나 초조해서 뭐든 발발거리며 일단 삽질해본다. 그리고 이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과도기에 처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일단 정신없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뭐하나 맞기를 기대한단 말이다. 


시대의 변화가 (평균적인) 개인의 변화 속도를 아득하게 초월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일까. 


오리너구리를 수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본인이 오리너구리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계를 버리고 감각을 벼려야 합니다.
서울은 부산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도쿄나 상하이 또는 뉴욕과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개별 국가는 방문과 이민을 세일즈 해야하는 상황이며,
행정 조직은 국민을 소비자로 설정하고 누수없는 서비스 설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전에 뛰어난 능력이라고 평가받던 것들의 중요성이 줄고,
하찮게 여겨지던 행동이 높은 평가로 역전될 것입니다.
예) 묵묵한 인내와 지구력 < 없던 개념을 생각하는 엉뚱함
앞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거나 숙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없애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직업이 일을 없애는 것이라면,
그 사람 본인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모순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없애는 매니저가 직무를 성취해서 안정화를 이룬 다음에도
조직은 더 큰 부가가치로 이전하는 새로운 꿈을 현실화시키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그가 새롭게 개선하고 도전해야할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 숙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과업은 지금의 일을 지켜내는 데에 있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발판으로 파괴적 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핵심을 추출하고 시선을 재조정해주는 고도의 필터링 지능이 필요합니다.
소속된 구성원 한 사람의 명성이 조직보다 더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세상입니다.
과정의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포트폴리오가 됩니다.
스스로의 성장세를 표현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소량을 만들고 단가를 높이고 세계로 가야합니다.
그러려면 충분한 브랜드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선망을 팔아야 합니다.
수백만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아닌,
내 주변의 누군가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영향력이 커질 것입니다.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는 이들도 눈여겨 봐야합니다.
각자의 골목에서 오래 버틴이들은 오히려 작지만 더 깊은 공동체로 자신의 고유성을 입증하고,
이를 축적하여 진정성이라는 자산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전선에 앞에 서기 위해서는 희귀함을 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희귀함이 쌓이면 고유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고유성이 진정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다시 요구될 수 있습니다.
고유함은 나의 주장이고,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유성과 진정성의 단서가 내가 오랫동안 쌓아둔 내러티브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필수 전제가 됩니다.
핵개인의 시대에 더욱 중요해 지는 것은 네트워크입니다.
협업이 전제가 되고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역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연결성이 단절된 경우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므로
우연의 선물 역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선물과 같은 행운을 삶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각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친절하라”가 아닐까 합니다.


세 줄 요약

1. 최고보다는 처음이 되길, 글로벌을 추구하되 니즈는 작게 나누길, 기꺼이 오리너구리가 되길

2. 타이틀에 기대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기록하여 내러티브를 만들길

3. 연결성을 유지할 만한, 인간다우면서도 현명한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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