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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메신저 Jan 16. 2021

김밥 만들다가 칼을 든 엄마

엄마 김밥 앞에서 엄마와 딸이 화해했습니다.

친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명절이면 항상 시끌벅적했다. 나랑 동생들이 뛰어다니고 놀고 싸우면 조용하라고 소리 지르던 할머니. 부엌에서 할머니, 엄마, 작은엄마들은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고 나랑 동생들은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몇 마디 욕과 함께 할머니는 들고 있던 칼을 내리 쳤다. 조용히 하라는 말이었다. 


할머니를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날. 그때 우리는 흠칫 놀랐지만 여전히 뛰어놀았고 그런 할머니를 따라 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할머니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칼을 내리친 행동까지. 나한테 적잖은 충격이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 자매는 엄마가 만든 김밥을 좋아한다. 자고 있으면 벌써 김밥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분 좋게, 기대감을 가지고 일어났다. 참기름 가득한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엄마가 말아놓은 김밥을 얼른 썰어주길 기다리며 꽁다리를 하나씩 집어먹는 재미. 꽁지 먹지 말고 예쁜 거 먹으라는 엄마가 기억난다. 


아직도 우리는 엄마 김밥을 좋아한다.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으며 며칠  아이와 있었던 일을 엄마랑 동생한테 말했다. 내가 기억도 못한 일을 마음에 담아뒀던 아이를 생각하면서 엄마가 하는  마디 말이 아이한테는 공포가 아니었을까.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생이 말을 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김밥 싸다가 나한테 죽여버려.’라고 했던  기억나?”

그 말에 우리 셋, 그리고 제부까지 빵 터져서 웃었다. 한참 웃다가 그리고 울었다.


그때도 내가  사달라고  졸랐던  같아. 초등학교 5-6 학년인가? 그랬을 거야. 내가 자꾸 그러니까 엄마가 김밥 썰다가 칼 들고 죽여버려. 그랬어.”

눈물을 삼키며 말하는 동생. 그리고 울어버린 엄마. 우리는 다 같이 울었다. 


엄마가 그랬어? 미안해. 엄마는 기억도 안 나네.”

그날 밖에 나갔는데 엄마가 아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 나는 괜찮다고 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같아. 그런데 그때 엄마가 그랬던 거. 밖에 나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일이 선명하게 기억나. 그리고 가끔씩 생각났어.”

엄마랑 동생이 이렇게 눈물을 쏟았다. 나도 옆에서 눈물을 닦으며 두 사람의 화해를 축하했다..


사달라는  마음껏 사주지 못한 엄마는 사달라고 말하는 딸이 미웠던 걸까.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던 걸까. 나랑 다르게 사고 싶은  많았던, 사달라는 표현을 잘했던 동생은 엄마의 말로 받은 상처가 깊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한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가 되고 나니 그 시절 나의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워냈을지. 감히 예상이란 걸 해본다. 


우리 자매한테 김밥은 엄마 사랑이다. 엄마가 뭐해줄까? 하면 김밥”하고 말할 정도로 우리는 엄마 김밥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엄마 김밥은 따듯함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소풍 가는 날, 생일날,  꾹꾹 누르고 예쁘게 싸준 정갈한 김밥이 엄마 사랑이었다. 


 사랑 앞에서 동생은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사랑은 사랑만 주지 않았다는 걸. 상처도 함께 왔다는  우린 안다. 자식을 키우면서 사랑만 주고 싶지만 그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있는  
그만큼 삶이 충만하다는 거래.


며칠  읽은 책에서  글귀가 생각났다. 이렇게 울고 웃으며 화해할  있다는  지금 우리 안에 사랑이 충만하다는  아닐까. 




심리적 제스처라는 연극 용어가 있다. 내면을 드러내는 강력한 행동 한 가지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훈련법  하나인데  행동 하나로 배우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의 할머니가 칼을 내리쳤던 것도, 엄마가 칼을 들었던 것도 강력한 심리적 제스처  아니었을까. 너무 강력한 나머지 나와 동생은 서른이 넘어서도 기억하고 있는  아닐까. 


말보다 태도와 행동이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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