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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메신저 Feb 01. 2021

라떼는 말이야

남편한테 화가 나서 가출했습니다.

나는 왜 남편한테 화가 나면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까?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날 때 뭐하세요?


감정이 엄청나게 상하는 일이 있었어요.


갑자기 진한 라떼가 생각나요.


한동안 라떼를 끊었어요. 라떼 없으면 못 살 거 같았는데 그렇게 마시지 않았던 라떼였는데... 끊었던 라떼가 생각날 만 큼 화가 잔뜩 났어요.


감정이 폭발할 거 같은 순간에 저는 라떼가 먹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다가 아이스 라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확 가라앉아요. 그런 경험 해보지 않았나요? 애 키울 때는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잖아요. 그게 다 까닭이 있는 거였어요...


남편과 감정이 나빠지면 따듯한 라떼를 마시고 싶어 지고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카페로 갑니다.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카페는 아늑하고 잔잔한 음악이 계속 흐르고,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에요.


나를 방해하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공간이죠. 


남편한테 화가 잔뜩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한 공간에 있기 힘들 만큼 싫었어요. 


카페로 나갈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왔어요.


"엄마 어디가?"

"응 엄마 잠깐 커피 마시고 올게."

"아 거기 엄마랑 같이 갔던 데?"

"응 갔다 올게. 놀고 있어"


"아빠~ 엄마 나간대."

"아빠 때문에 그런가 봐."


남편도 아는 거죠.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한 숨을 푹푹 쉬면서 카페에 갔어요.


나오기 전부터 아이스크림이 엄청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크루아상크로플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몬드크림이 올라간 새로운 메뉴가 눈에 들어와요.


"따듯한 라떼랑 아몬드크림 크루아상 크로플 주세요."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꺼냈어요.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상처와 아픔이 불편하다고,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고, 외면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중


감정과 대면을 참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없다 싶어요.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하는데 나는 왜 화를 내지 않고 라떼를 마시러 카페에 왔을까요.


그건 아마도 화나는 감정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저는 제 감정을 외면한 거죠.


집을 나가는 일은 남편한테 복수하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 날 이렇게 열 받게 했어? 그래 어디 혼자 잘해봐.' 하는 마음으로 집 밖을 나왔나 봐요.




감정을 대면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화가 났을 때 화를 내면 되는데 나는 왜 화를 못 낼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요.


'화를 내는 건 나쁜 거야.'

'화를 내는 건 지혜롭지 못해.'

'화를 내는 건 현명하지 않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화를 내는 건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행동이야.'


평생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화가 나면 그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피했어요.

그 순간을 버텼어요.

그 순간이 얼른 지나가길 기다렸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화가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빵 터져요.

화나는 감정을 잠깐 해소하면 되는 거였을 텐데. 그대로 쌓아두니 결국은 터질 수밖에요.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더라고요..


이렇게 화가 났을 때, 따듯한  라떼 한 잔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씁쓸한 커피 향으로 마음을 달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화를 내고 싶어요. 


라떼를 다 마시고 나니 목욕이 하고 싶어요. 집에 가자마자 목욕을 했어요.

밖에 나와서 신랑하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보, 당신이 나랑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당신한테 소중하지 않은 존재인 거 같아서 많이 슬퍼."

"당신이 나한테 무관심하다고 느껴지면 나는 많이 외로워. 나는 자기가 나한테 솔직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는데 개운하지가 않아요. 다음날이 되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요. 

화를 못 내고 또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봐요. 그냥 화를 내야 했었나 봐요.


"미친 거 아니야? 장난해? 나랑 살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하고 소리 질렀어야 했나 봐요.


외출했다가 저는 집에 안 들어갔어요.

친정에서 하루 자고 가려고요. 부부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한가 봅니다.




카페 사장님께서 오랜만에 왔다면서 커피 드립백을 하나 주셨어요.

"DON'T WORRY"라고 쓰여 있어요.


화내도 괜찮아. 화내도 돼. 화가 나면 화내야지. 

내가 내 감정을 지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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