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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Mar 06. 2023

숲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어린이와 환경> 연재 2




숲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빨간 모자,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과 모험은 각각 다르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하나같이 어둡고 으스스한 숲이라는 것이다. 숲은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고 악이 몰락하는 장소이다. 동화는 상상 속 인물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그림형제의 조국, 독일의 숙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 형제의 동화는 독일의 정치 상황과 독일의 운명에 관한 두려움과 희망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 그리고 독일의 위대한 전통 혹은 신화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 숲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의 운명이 헨젤과 그레텔처럼 숲에서 단련된다는 믿음도 담겨 있다. 동화의 숲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주 무섭고 잔인한 경우가 많은데, 동화가 끝나는 부분에서 아이들은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서 있다가 따뜻한 말을 건넨다. (『독일사 산책』, 닐 맥그리거 p.144-145) 


닐 맥그리거의『독일사 산책』에서는 독일의 ‘숲’은 기원후 9년, 독일인들이 로마를 물리친 장소, 바로 토이토부르크 숲 - 쾰른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숲- 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독일인의 민족성이 시작된 장소라고 말한다. 수많은 활엽수는 물론, 너도밤나무, 검은 숲을 뒤덮은 침엽수가 무성한 전형적인 독일 숲은 마치 그림형제의 동화처럼 그 속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지만, 무엇인가 발산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강한 장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다 위의 방랑자>로 유명한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속 많은 주제가 독일의 ‘숲’이다. 독일인의 정신을 투영하는 듯, 숲은 원시적 풍경 속에서 고독과 함께 굳건함이 엿보인다. 


사진 : <늦가을 속 숲>, Caspar David Friedrich - Wald im Spätherbst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독일 도시 군데군데 나 있는 산책로는 숲으로 향해 길을 뻗고 있다. 대부분의 동네가 ‘숲세권’이라 불릴 정도로 가까이에 작고 큰 숲이 한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조금만 나가도 그림 형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숲이 펼쳐진다. 그래서 휴일이나 여유가 있을 때 한껏 계획해서 일부러 가야 하는 여행지로써의 숲이 아니라, 일상 자체로서의 삶의 배경이 되어 주는 숲이 곁에 있다. 


숲 학교 


우리나라에 독일식의 발도르프 교육의 학습 장소로써의 실천적 배경이 되는 곳이 ‘숲’이라고 소개되면서 숲 유치원, 숲 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난 후, 이제는 대안적인 접근이 아닌, 공립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도 추가로 자연 체험 등의 과정을 넣어 ‘숲 체험’이라는 활동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교육기관을 공립유치원이나 국공립 지원이 되는 시설 이외에 ‘숲 학교’, ‘숲 유치원’ 같은 경우를 선택할 경우, 부모의 특별한 교육 철학이 담긴 결정이 선행되는 것은 물론, ‘추가 비용’도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즉 내 아이가 자연 속에서 땅을 밟으며 즐겁게 뛰어 놀았으면 하는 바람과 ‘숲 활용’ 교육의 성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숲’과 ‘교육’의 접점은 쉽게 찾기 어렵다. 교육과정도 특별한 예산이 필요하다. 어린이에게 숲은 커다란 소풍인데, 소풍 한 번, 자주 가기 어렵다. 


독일에서의 숲 학교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다르게 교육의 영역에서 특별히 경계를 짓지 않는다. 즉 숲 학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는 치료의 목적으로 20세기 초에 베를린 외곽에서 아픈 아이들을 위해 공기 좋고 밝은 야외를 학습터로 삼는 학교로 시작했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숲 학교’로 엄밀히 구분해 부르는 기관은 지방 자치 단체, 산림 교육 기관, 환경 교육기관 등과 같이 특별한 교육과정을 인가받은 기관이다. 학교에서는 ‘숲’이라는 공간, ‘숲을 가는 일’ 등을 공교육 과정 안에 넣어 교육의 연장으로 삼으며 진짜 숲과 학교를 분리하지 않는다. 즉, 일상의 장소이자, 교육의 장소를 구분 짓지 않는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 속의 숲이 독일인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것처럼 숲과 야외 학교는 현재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어린이들의 ‘교육기관’과 함께 오래된 전통이 되어 스며들어 있다. 


사진 : 베를린 외곽, 샤로텐부르크의 치료센터로써의 초기 숲 학교,   사진출처https://de.wikipedia.org



치료목적의 초기 숲 학교로써 시작되었지만 ‘숲’을 교육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은 인식의 확장, 원칙과 삶에 대한 친밀감, 자기 활동의 자발적 선택 및 개인성 존중 등 학생 개별화와 같은 개혁 중심의 교육적 접근을 토론할 수 있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숲, 즉 자연 속에서의 학습과 사회적 상호 작용의 분위기는 어린이들의 쾌활함과 활기를 낳고, 교육적 측면에서 학생으로서의 발달을 자연스럽게 정의할 수 있게 도왔다. ‘숲에서의 어린이의 발달’은 교육의 관점에서 전체 학교 교육과정으로 확대되어 오늘날에도 아주 익숙하고 가까이에 존재한다. 모든 유형의 독일 학교에서 숲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정규 교육 기관 외에도 사립 및 시립 기관 역시 스스로를 숲 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숲’은 특별하고 유난한 경계를 갖지 않고, 일상과 학교를 아우르는 평범한 교육터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모든 학교가 숲 학교이자, 숲은 학교와 교사,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두 팔 벌려 환영한다. 


Wald Tag, 숲의 날 


독일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꼭 챙겨가야 할 옷이 있다. 한국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유치원 행사, 교육과정 등이 인상적인데, 특히 준비물이 그렇다. 그중 한겨울에 입는 멜빵이 달린 스키복 같은 모양의 옷 마츠호제 (Matschhose, 독일어 발음을 그대로 씀) 는 특별하다. 마치 어린이 작업복 같은 모양으로 얇은 것도 있고, 기모가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바깥 놀이를 하러 나갈 때는 꼭 이 옷을 갖춰 입어야 한다. 웅덩이에 가득한 물이 튀어도 끄떡없고, 바지에 진흙이 묻어도 안에 있는 옷이 젖지 않으니 걱정 없다.   



사진 : 방수가 되는, 옷 위에 걸쳐 입는 어린이용 옷 <Matschhose>

사진 출처 : https://www.tragelotti-laden.de/bms-matschhose-wasserdicht-hellblau.html?language=de


어린이들은 이 방수 재질의 튼튼한 옷을 입고 야외 활동 시간에 비가 와도 밖에서 놀고, 진흙탕에서도 물을 퍽퍽 튀기며 모래놀이를 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 보다 이 옷이 빛이 발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바로 매주 적어도 한 번 이상 있는 ‘숲의 날’이다. 두 살이 되면 어린이들은 탁아소 개념의 ‘어린이집’을 등록할 수 있다. 그 작은 어린이들도 이런 옷을 입고 대형 유모차를 타고, 어린이집 교사들은 유모차를 힘껏 밀어 숲으로 간다. 길게 뻗은 산책로에서 나무가 더 우거진 숲길로 빠진다. 숲속의 진흙을 밟으러 산책로에서 옆길로 들어간다. 유치원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야무지게 ‘마츠호제’를 갖춰 입고, 장화를 신고, 등에 작은 가방을 메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줄 맞춰 교사 뒤를 걷는다. 사계절 동안 거르는 날이 없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어린이들에게 오늘은 그야말로 미지의 보물섬으로 가는 날이다. 숲은 스스로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너른 대지가 되어 준다. 

숲은 분명, 아이들의 특별한 장소가 되어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나무를 억지로 깎아 만들어 특별히 설치한 거대한 기구 같은 것도 없고, 흔한 벤치로 쓰일 의자도 없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높고 높은 참나무들, 겨울이면 축축하게 쌓여 있는 나뭇잎들, 쓰러진 고목의 기둥, 뾰족한 나뭇가지들, 발에 걸려도 수번은 걸릴 수많은 돌덩이들뿐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놀 것이 없어 보이는데? 하고 되물을 수도 있을, 자연 그대로가 자유롭게 전시된 장소, 인공적이지 않은 장소에서 어린이들의 탐험이 시작된다. 



사진 : 필자가 사는 도시의 국공립 유치원 아이들이 자주 온다는 숲속 한쪽에 만들어진 나무집. (직접 촬영)


한번은 아이가 나와 함께 숲을 산책하다가 “이쪽으로 들어가면 우리 유치원 숲 놀이터가 나와.” 하더니 나무들이 무성한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길고 짧은 고목의 나뭇가지들을 쌓고 올린 흔적들이 있었다. 누군가 와서 모으고 쌓아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그 위를 쌓아 올리고, 이따금 비바람이나 강풍이 무너뜨린 흔적, 그렇게 다시 쌓고 쌓인 흔적이 가득했다. 쇠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마치 무너진 집터처럼 아무 흔적은 없지만 통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양은 엉덩이를 대고 쉴 수 있는 편안한 의자의 모습이었다. 조금 더 떨어져서 보면 둥그렇게 배열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위에 앉아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눴을 어린이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Wald Tag, 숲의 날은 이렇듯 동네의 숲에서 산책하다 이런 곳에서 놀다 오는 게 전부다. 숲에 가는 날이라고 해서 유난한 부모들은 없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통나무를 옮기고, 안전에 주의하며 아이들과 함께 숲을 즐긴다. 자연스럽게 협동을 배우고, 성취감을 배우며, 무엇인가 해결하는 방법을 신선한 공기 아래에서 건강하게 알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의 숲에서도 고목은 미끄럼틀이 되어주기 충분하다. 진흙 위를 덮고 있는 나뭇잎을 들추면 달팽이 껍데기가 나오기도, 이끼 묻은 작은 돌이 나오기도 한다.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할 줄 아는 어린이의 눈은 스스로 탐색할 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땅에서부터 깊게 뿌리 내린 커다란 삶의 나무의 기둥을 오르는 힘을 갖는다. 

사진 : 아무렇지 않게 걸어둔 나무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누군가가 정성껏 만들어 걸어둔 나무 거미줄이 보인다. (직접 촬영) 

 

  숲 안에서 더 빛이 나는 움직임이 있다. Klettern, ‘높은 곳을 기어오르다’ 라는 뜻의 독일어의 사용 빈도는 상상 이상이다. 독일에서 한 살짜리 아기와 함께 놀이터를 다니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단어이자, 어린이, 부모, 학교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이다. 올라가야 할 곳이라든지 위험한 곳이 아닌 장소라면 ‘오르기’는 자유롭다. 계단이 없이 밧줄만 덩그러니 있는 미끄럼틀, 그리 높지 않은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작고 큰 어린이들이 올라가 보려고 눈에 띄게 힘을 들이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문학 작품이나 동화책 같은 곳에나 나올만한 모습도, 결코 오래된 옛날의 시골 마을의 장면이 아니다. 군대의 유격 훈련장처럼 꾸며진 아이들을 위한 액티비티 장소 (Kletterpark) 를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진 : 독일 숲 속 곳곳에 있는 Kletterpark 모습. 사진출처 : https://kletterpark-hamm.de/

 

숲 안의 모든 존재가 어린이들의 멋진 도구가 된다. 땅 위에 쌓인 나무들은 딛고 오르는 발판이 되어 주고,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다시 오를 때, 든든한 품이 되어 준다. 안전한 영역 안에서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믿음직한 품이다. 산책로라든지, 숲이라든지 혹은 놀이터 한 가운데라든지, 서로 얽힌 가지들이 마치 안전한 매트처럼 보이는 나무를 품은 숲은 인위적인 것이 하나 없다. 이러한 숲에서 땅을 파고, 처음 보는 열매를 줍고, 나뭇잎의 다름을 찾고, 저보다 크고 무거운 나뭇가지를 쌓고 옮기는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풍경 속에서 얻을 것들의 가치는 또 얼마나 반짝일까. 


숲에서 일상을 보내는 어린이는 많은 것을 스스로 알아간다. 어떤 곳에서는 조심히 걸어야 하고, 신나게 뛰어도 되는 때와 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또 도전과 해결점을 찾는 힘을 충분히 발휘할 줄 안다. 숲속에서의 배움을 적극 실천하는 독일 교육은 특별한 교육과정을 앞세우지 않아도 공교육과 모든 교육기관의 연대 속에서 자연을 활용한 학습환경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사회-과학 교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Sachkunde’ 과목에서의 첫 주제로 숲에서 자라는 다양한 나무의 잎과 줄기, 열매를 구분하는 것도 숲과 교육과정을 연결 짓는 자연스러운 지점이다. 돈이나 시간 등 물리적인 노력을 들여 하는 목적을 위한 특별한 날 ‘숲 체험’이 아니라, 일상에 가장 만만한 장소이자 재미있는 것이 가득한 편한 곳, 세 살부터 젖지 않는 옷을 야무지게 갖춰 입고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삶의 출발점, 이것이 진짜 독일식 숲 활용 현장이 주는 보석 같은 교훈이다.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힘껏 오를 힘을 꼭 쥐고 걸을 수 있는 곳, 숲이 보장하는 값진 미래다. 


사진 : 아무렇게 쌓인 나뭇가지처럼 보이지만, 모여 앉을 수 있는 의자처럼 놓여 있다. (직접 촬영) 




참고 : 

닐 맥그리거, 『독일사 산책』, 2014

Neufert, Hermann: 『Die Waldschule』 1926. S. 130–136. 



박소진 (시인, 글쓰기 교사) 매일경제 우버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교육-학교-가정-교사-자연-지역사회 등 아이들을 둘러싼 독일의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시인의 눈으로 따뜻하게 전합니다. 




숲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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