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일기' 매거진입니다. 책 내용과 내 생각을 일기처럼 넋두리와 하소연 하듯이 편하게 적을 예정입니다.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자신을 회피하기 좋은 상황의 용도로 골라 써먹기에 너무나 멋진 말입니다. 내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이다.’를 더 잘 따르면 살아왔어요. 정말, 모를 때는 몰라서 편했습니다. 모르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스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정말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른척했는데요, 아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알아는 한다는 것은 모름의 끝을 알 수 있으므로 지식과 무지의 민낯이 드러냄을 무서워한 거죠.
그리고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어떻게 되겠지! 뭐,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안되면 말고!’ 내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일에 부딪히면 요리 피하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면 조리 피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맞서게 되면 나의 힘이 아니라 주변 도움으로 어찌어찌 넘어갔어요. 그래서 ‘아!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특별히 애쓰거나 알려고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데 거기에 ‘내가 굳이 무엇을 보태 필요가 있겠나!’라고 나는 느꼈습니다.
몸도 마음도 편하니 모든 게 편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고 모든 순간이 행복해야 하는데, 마음 한쪽은 늘 공허했습니다.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우고 싶었고 억눌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즉, 내 삶에 나는 없었습니다. 껍데기가 되어 주변을 겉돌았죠. SNS를 통해 타인이 이룬 결과를 보며 마냥 부러워하고 질투했습니다. ‘나도 저 생각했는데! 그때 그거 했으면 어땠을까! 아! 그때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입맛만 다시며 괜히 상대 트집만 잡으려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불쑥 용기를 불러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용기라는 녀석이 자기 혼자 오는 게 아니라 겁이라는 놈의 손을 잡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용기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나의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니겠어요. 나,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자신감이 확 떨어지고 현실을 회피하고 과거로 숨곤 했습니다. 바둥거려도 겁은 잘 떨어지지 않고 용기도 생기지 않았어요.
상념에 빠진 날들이 많아지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두 감정이 내 마음속에 혼재되어 있었어요. ‘용기를 키워야 한다,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라는 양가감정이 항상 날뛰었지요. 마음속 저 밑에 보이지 않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악의 뿌리가 단단하고 깊이 내재하였던 겁니다. 변화에 갈급하고 간절했습니다. 무언가를 지속으로 추구하고 있었어요. 현실에서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간절함과 나의 간절함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차이, 즉, 틈은 사이에 무엇이 있다고 전제할 수 있습니다. 가득 차 있다면 몰랐겠지요. 보이지 않고 깊은 심연 속에 묻혀 있어 여태 잘 느끼지 못했지만 내 마음 안에 꿈틀거리는 감각을 느꼈던 겁니다. 꿈틀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행인 건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에 간절함이 말입니다. 나는 간절함을 무엇으로든지 메우고 채우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보태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믿고 의지할 도구는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인기도서, 자기계발서, 유명한 고전을 혼자 읽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책은 뜬구름 잡는 듯했고, 어떤 책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했고, 어떤 책은 어렵고 이해되지 않았어요. 책을 읽을수록 마음은 더 심란함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부’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 원하는 삶을 사는데, ‘왜 나는 안될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았던 것은 그들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내가 실천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혼자만 뒤처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져 답답했습니다. 무엇이라도 찾고 이 삶을 탈피하고 싶어 여기저기 들러봐도 딱히 해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철학이었습니다. 한 번도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하지 않았지만, 철학이라면 막연하게 해결책이나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철학적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막막했어요. 철학은 어렵기도 하고 혼자 할 수 없더라고요. 쉽다는 철학책을 읽는데 하나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는데 ‘부와 철학’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딱! 원하는 강좌였어요.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8개월가량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짧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기간에 새벽 5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엄청난 책의 양을 소화하고 큰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전 체감을 잘 느끼지 못했어요. 다른 분들은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아직은 덜 영글었나 봅니다.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죠. 8개월가량 매일 새벽에 책을 본다는 자체가 큰 변화 중 하나죠.
나에게는 탁월함이 없습니다. 재주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악착같지도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사실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8개월의 새벽 독서로 발견한 게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도 주말, 휴일 상관없이 3시 30분에 일어나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어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싫어서죠. 새벽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서 그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선택한 삶의 의미를 알았어요.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무기는 ‘꾸준함’이었습니다.
남들처럼 다 가질 수 없어요. 인기도서의 자기계발서는 꾸준함에 대해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함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나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 지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발견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단한 발견이고 능력입니다. 새벽 독서 8개월 개근, 더뎌도 칠흑같이 어두컴컴한 길에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밀고 지금처럼 가면 됩니다. 이 성장은 감히 경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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