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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30. 2020

고전을 읽으시나요

 2000년대 이후 작품은 웬만하면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철저한 오락의 수단으로 순식간에 읽어치운다.(속독은 내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몇 안되는 장기 중 하나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라는 물음에는 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표정과 말투로 고전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서점에서 민음사나 을유문화사 명작 전집 코너에 가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결국 양 손 무겁게 나온다. 중앙도서관 한 켠에 먼지가 쌓이고 손때가 탄 한국 근대 문학을 보면 괜히 지나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펼쳐본다.      


 그냥 그렇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20대 현대인들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핑계라고 생각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의해 검증이 완료된 작품만을 읽기에도 내가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류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너무나도 많은 걸작들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사실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참신하고 독특한 발상이라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는 해 보았을 고민이다. 아무리 독자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낮과 밤은 반복되고 추는 좌우로 흔들린다. 별은 길을 순회하고 인간은 억겁동안 반복된 세월의 굴레를 늘 새로운 줄 알고 돈다.      

 

 고전이란 그런 것이다. 켜켜이 반복되어 두터워진 인류의 비슷비슷한 상념 덩어리들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찬란하게 빛을 내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든 자연환경이 상전벽해를 이루든 관계없이 인간은 똑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고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하나의 순간에서 인간의 본질을 겨냥해냈기에 세월의 바퀴 속에서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100년 전에 쓰여진 작품에서 내 삶이나 가치관이 어렴풋이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 또한 내가 읽은 고전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공감하는 일 또한 매우 즐겁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뒤 안나 카레리나를 읽은 것이나, 와타나베처럼 마의 산을 손에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나,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리스 비극이 수많은 작품에서 인용되는 것을 본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기계적 인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은 원래 모순투성이 인간들이 모여사는 곳이고 효율과 실용이 가장 높은 가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머리아픈 상념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마음이 어지럽다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전의 고전이 던지는 물음과 그것이 제시하는 나름의 해답에 기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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