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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Jul 07. 2020

영화 음식 작업일기

아가씨 - 에키벤이 뭐예요 (그녀의 입술)

암죽으로 시작한 첫 촬영 뒤 아가씨의 두 번째 촬영 미션은 바로바로 일본만의 관광 아이템 에키벤이다.

직역하면 '역 도시락'. 駅売り弁当(역에서 파는 도시락)의 줄임말로, 기차역에서 파는 시락을 말한다.
기차역이나 열차 안에서 먹을 걸 파는 것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지만, 은 이게 좀 유별나서 어느 곳을 가도 그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드는 정판 도시락이 있으며 이것을 보통 '에키벤'이라 한다. 뭐 일본 공항에서까지 '소라벤’(空弁)이라고 하는 다양한 도시락을 팔고 있으니 말 다했지. JAL항공은  소라벤에 지역 특산물과 제철 식재료가 그려진 지도로 맵핑을 해줄 정도니 일본의 이런 전략적인 상품 노출 아이디어에 늘 놀랄 뿐이다. 에키벤은 그  종류도 무진장 많아서 2010년 기준으로  700종이 넘전국 방방곡곡을 열차로 누비고 다니며 오로지 에키벤만을 연구하고 경험하는 에키벤 덕후와 에키벤 전문가로 통하는 저널리스트가 존재다. 참, 나도 참고했던 만화책도 있음.


영화사에서 대본을 받으면 음식이 나오는 모든 부분을 일단 체크하고 그중에 내가 꼭 가야 하는 장면을 별표 친 뒤 제작부서와 회차별로 계약하며 중요도에 따라 출동할지 말지 결정한다. 턴키로 일할 경우에는 재료비도 가늠해야 하므로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을 체크해야 하는데 이 도시락 장면 역시 별표 치고 바로 연출부에 물어봤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중인지, 배를 타고 도착한 기차를 타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그에 맞게 에키벤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얘기하자 연출부는 에키벤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잘 몰랐다고 아직 그런 디테일한 설정은 하지 않았으니 감독님과 상의하겠다는 답이 왔다. 부산에서 관부선을 타면 도착할 곳은 사실 뻔하다. 시모노세키항. 그래서 미리 시모노세키 철도역의 에키벤 자료를 모으고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에키벤 관련 자료를 구할 방법을 물어봤다. 친구는 신랑을 에키벤 박물관까지 보내서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이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는 물론 아예 내 차로 전주까지 가이드해 준 보람을 이렇게 돌려받는구나 싶어서 무척 뿌듯하고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연출부의 답변이 이틀 후에 왔는데 역시 시모노세키항이었다.

좌) 미술팀 레퍼런스             우) 일본친구 와의 대화 feat. 짧은영어실력
남편의 도움까지 받아 자료를 보내준 tome에게 찐 감동.

도시락의 소재까지 알려줬으니 소품팀에게 자료를 보내고 도시락을 제작하면 우리에게 보내달라 했더니... 소품 팀장이던 은혜 씨가 "쌤, 그거 저희가 재료비랑 약간의 인건비 챙겨드릴 테니  쌤이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저희 진짜 할 게 너무 많아요. 제발 부탁 좀 드려요 "라는 답이 왔다. 아가씨는 미술 소품팀의 고생이 어마어마한 것을 르지 않아서 거절을 못하고 그래, 공예과나 조소과를 나온 주변의 인물에게 부탁하자 하고 당시 연남동에서 거북이 조합 이라는 술집을 하던 조소 작가 정훈오빠에게 SOS를 청했다. 오빠는 흔쾌히 Yess! 그러나 도시락을 만들 소재를 어찌 구하나  고민이 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이 나무 자체가 가볍고 강도가 좋아서 건축 모형등을 만들때 많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 홍대 권역 예술가들의 아지트 같은 호미화방에서 balsa wood를 찾아냈다.

좌) 와~ 이걸 팔줄이야. 우) 재단 들어가신 금손 정훈오빠

아, 내 꿈이 내가 만들어달라는 거 다 만들어주는 목수랑 결혼하는 거였는데 OO친구들이 개그맨도 집에서는 안 웃기는데 집에서까지 일 겠냐며 돈 많이 벌어서 단골 목수를 두라고 타박을 줬었다. 그래서 목수의 꿈을 접었는데 슥슥 삭삭 만들기를 시작하는 오빠는 진짜 너무 멋있어 보여서 잊고 지낸 이상형에 대한 꿈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나 뭐라나. 더운 여름이었고 진득하게 땀이 배어 나오는 한낮에 난 조수로서 열심히 오빠를 도와 세 가지 디자인의 도시락 샘플을 연출부에 톡으로 보냈다.

좌) 완성된 도시락들.라이터는 크기를 가늠하기 쉽게 하려고 넣음    우)박감독님 컨펌을 위해 실제 들고있는 샷! 내가 타마코?히데코? ㅋ.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주십사 했는데 감독님이 이건 히데코 꺼, 이건 백작 꺼, 이건 숙희 꺼하면 좋겠다고 하셨다는 답. , 그럼 엔지를 대비해서 같은 디자인을 각각 하나씩 더 만들어야 하는데 동일 디자인이면 이미 만든 1개 제외하고 5개를 한 번에 재단 쫘악해서 쭉쭉 만들면 되는데 하필 주인공 캐릭터로 나누시다니. 그럼 사이즈가 다다른 애들을 다시 한 개씩 더 만들어야 해서 무척 번거로운데.. 빠에게 이 비보를 알렸는데 다행히 오빠는 불평 한번 없이 묵묵하게 작업을 진행해주셨다. 수고비도 한사코 안 받아서 술을 샀는데 그냥 수고비를 받지 그랬냐 싶게 잘 마시는 자랑스러운 중대 강철 조소 이정훈 만세! 나는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은 틀림없다.

좌) 뚜껑까지 완성된 도시락들 우) 운좋게 중앙일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타임워프하듯 더 늙어뵈는 이때도 도시락을 들고찍었네?

이제 계절에 맞는 재료를 조리해서 배치해야 할 차례.

인물별로 도시락의 디자인이 달라졌으니 내용물의 구성도 달라야 하고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도 드러내야 했다. 남성이 고르는 도시락과 여성이 고르는 도시락도 달라야 했고. 꾸밈은 각 분야의 셰프나 기획자 예술가 등이 크루로 모여있어서 조리 부분은 핫토리 일식 조리 출신의 사케 마스터 여태오 셰프가 친구 찬스로 도움을 주기로 함. 역시나  사람사이는 잘 지내고 볼 일이다.


자, 에키벤 조리과정과 완성된 도시락들, 촬영 현장 얘기는 다음 편에. 요즘 조금 바빠져서 차분히 글을 못써서 속상하다. 누가 기다릴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업뎃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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