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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Jun 13. 2020

영화 음식 작업일기

아가씨 - 평양냉면 야식

평냉을 어떤 식으로 스타일링할지 결정하면서 식기 관련해서도 많은 자료가 오고 갔다.

좌) 첫번째 데코보드                    .       우) 수정후 두번째 데코보드

유기를 활용하기로 하자, 너무 한국적인 느낌으로 보일까 걱정돼서(부업이 걱정입니다만.. ㅎㅎ) 서양식 개인 세팅의 방식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골드빛의 유기가 더욱 화려하게 빛날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다 평소 좋아하던 세팅을 변형해보기로 했다. 바로바로 하늘 같은 우리 스승 황규선 선생께서 2008년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선보이신 <황후매화연>이라는 작품 개인 세팅이다.

좌) 황후매화연 중 개인 세팅             우) 최종제안서의 세팅.              ppt를 캡춰한 것인데 무려 71장이다. 71장.. 아, 내 피땀 눙물..

유기와 서양 식기와의 조화와 함께 바카라 와인글라스나 기타 연출 소품과 테이블 플라워가 보여주는 극도의 화려함을 블랙 칠기 매트의 모던함으로 절제시키는 연출.

게다가 황후를 위한 세팅이기에 당시 영부인이 취임식에서 입었던 한복 옷고름을 냅킨링으로 연출한 디테일까지 정말 완벽한 테이블 세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부유한 가짜 귀족인 코우즈키가 사기꾼 백작을 불러 대접하는 야식 장면에 바로 이 세팅을 여성스러운 느낌을 좀 절제해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하야 여러 가지 세팅을 해보고 미술팀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전체 야식장면의 출 시안을 확정했다.

요래저래 이래저래 세팅하다 결국 가장 심플하게 가게 됨.

그리고 테이블 세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꽃, 테이블 플라워인데 이미지 메이커로서 역할이 크기에 무척 중요하다.

다시 찾아온 TMI 시간!
-센터피스의 역사-
오늘은 테이블 플라워에 대해 간단데쓰하게 알려드림.
Table flower = Centerpiece
말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꽃을 얘기하는데 아래 사진은 10년도 더 된 대학 강의 때 자료지만 워낙 기본을 설명하는 거라 업뎃없이 그냥 첨부함. 테이블 세팅 전문용어로 테이블 플라워를 보통 Centerpiece라고 부르는데 Center + piece를 합친 단어로 중앙에 있는 장식물을 뜻하며 꼭 꽃이 아니라 다양한 장식품이어도 된다.
로마인들이 과일과 야채 등을 데코 하던 것이 중세의 일루전 푸드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과자와 과일 등을 높이 쌓아 올리거나 일루전 푸드를 설탕과자나 빵으로 구워 표현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illusion food는 중세 연회의 화려함을 위해 공작, 오리 등의 모양으로 조리된 요리에 실제 깃털을 붙인 요리로 역시 아래 첨부한 ppt 파일을 참고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커스트 던스트 버전, 코폴라 언니 꺼)에서는 특히 식사 장면마다 화려한 센터피스가 돋보인다. 꽃은 계절감과 생동감을 주기에 센터피스로 늘 사랑받아왔는데 생화와 비단 조화를 섞어 쓰다가 산업혁명 이후 지금과 같은 테이블 플라워가 성행하게 되었다. 보통 다이아몬드 형태를 가장 기본으로 하고 호리젠탈형도 많이 쓰인다. 꽃 하시는 분들이 테이블 세팅을 공부하면서 테이블 플라워를 만들면 아무래도 꽃이 굉장히 크고 과장된 경우가 많은데 사실 보기에는 좋지만 식사에는 불편한 경우가 많아서... 그 외 센터피스의 필수조건 3가지는 아래 첨부한 ppt 자료를 읽어보면 다 나오니 공부한다~치고 함 보길.
1565년 테이블세팅 재현. 오른쪽 아주머니 두분은 그 유명한 메디치가의 녀성들로 카트린느 드 메디치, 마리 드메디치이다. 저분들이 프랑스의 가스트로노미를 만들었다해도 과언아님.
위에 ppt에 일루전 푸드를 과자로 구운 센터피스 봤음? 요 장면은 아스파라거스 꽃다발같은데.. 나도 할리우드가서 이런 고증이 기능한 시스템에서 일해보고 싶다 정말.

이 사진 뒤에 구경하는 사람들 진심 구경하는 걸 거임.

루이 14세 식사 장면 방청권도 판매했다고 함.

(알면 알수록 신기한 식문화 뒷얘기! 나중에 꾸밈 클래스 들으러 오시면 좌르륵 얘기 보따리 풀어드릴게)

서양식 꽃꽂이는 사방화라서 식탁 한가운데 놓아도 잘어울리지만, 동양 꽃꽂이는 보통 부조의 형태가 많아서 식탁에는 어울리지 않아. 참고로 지금 사진의 꽃은 젠부~ 내가 꽂은 것.

정리하자면,

1. 크기는 테이블 면적의 1/9

2. 높이는 팔꿈치(45cm) 보다 낮게

3. 향기가 강하거나 가루나 꽃잎이 잘 떨어지면 X

1,2번은 T.P.O 에 따라 달라지..(TPO 모르는 거 아니겠지.. 하아.. 걱정이 많은 타입입니다만.. 궁금함 댓글로)

비슷한 느낌의 테이블 세팅이지만 어느쪽이 마주앉은 사람과 식사하기 편안할지는 보기만해도 아시겠죠? 테이블플라워는 45cm이하!
좌) 꽃이 없는 할로윈 센터피스.          우) 다이아몬드 기본형 센터피스

그래서 준비한 테이블 플라워는 바로 이케바나 응용작.

조용한 한밤의 식사. 메뉴는 차갑고 슴슴한 평양냉면.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과 함께 일본적인 정서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듯 하여 시안 몇 가지를 보여주고 꾸밈 크루인 플로리스트 손선영 씨와 합을 맞춰보았다.



이케바나? 일어 같은데? 하는 여러분을 위해.

정말 TMI라서 흥미 없다면 건너뛰세요.

이케바나(生け花)란?
일반적으로 “일본의 꽃꽂이 예술” 로 번역될 수 있지만 ‘이케바나’의 소재는 새로 자른 나뭇가지, 넝쿨, 잎, 풀, 과실, 과일, 씨앗 및 꽃뿐만 아니라 시들고 마른 식물들도 포함한다. 러한 화재(花材)를 꽃꽂이 용기, 즉 화기(花器)에 꽂은 꽃을 가리키는 말이며, 꽃을 꽂는 기법이나 그것을 감상하는 행위 전반을 지칭한다. 이케바나는 남에게 보임으로써 접대 예술이기도 하며, 생활공간의 인테리어라는 의미로 생활 예술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이케바나’는 유리, 철 및 플라스틱도 사용하며 지속적으로 일본의 전통예술의 하나로서 상징적 언어와 장식적 개념을 발전시는 중이다. 


자연소재의 한계를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창조의 영원한 일부분으로 만드는 철학성을 부여함으로 우주의 구성요소를 天ㆍ地ㆍ人의 삼재(三才)로 인식하는 동양적인 사상을 꽃꽂이의 형식에 적용하였다. 천지인의 삼분법은 사물의 순서와 구별을 나타내는데, 天은 이끌어 주는 존재, 地는 따르는 존재, 人은 조화를 이루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케바나에도 이 원리를 적용하여, 꽃가지에 天의 부분, 地의 부분, 人의 부분을 설정하여 일종의 종교성을 부여하며 형식과 절차를 부과해 화도(花道)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외 ‘릭카’ (살아있는 꽃, 이라는 의미의 ‘세이카’ 나 ‘쇼카’로 발전), “차 꽃”을 의하는 '차바나’ (16세기 차 의식 ‘차노유’에서 유래한 ‘분진 - 바나’ 배열은 ‘나게이레’라는 자연적인 양식의 기초가 됨) '모리바나'( “쌓여있는 꽃”이라는 의미로 오하라 운신이 창안하여 이케바나 예술계에 완전한 혁신을 가져옴) 등의 양식을 통해 더욱 발전하였고  현재 규모가 크고 세계적인 지부 조직을 지닌 유파로 가장 큰 세 가지 유파를 꼽을 때는 이케보노(池坊), 오하라(小原), 소게쓰(草月) 등을 꼽는다.



좌) 시안으로 삼은 경사형 모리바나     우)우리가 디자인한 센터피스

드디어! 결기에 가득 찬 평냉 촬영 날.

식기와 커트러리, 그 외 세팅 소품들과 고무다라이! 3개가 준비되었다. 가스버너 두대에는 야무지게 물이 끓고 있었고 1인분씩 프랩 한 면발과 고명은 쟁반 위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두 번째 고무대야에는 얼음도 가득 들어있었고 모두가 시간지체없이 냉면을 조달하기 위해 초긴장. 배우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미친 듯이 냉면제조가 시작되었다. 이날의 긴박함은 현장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 (진짜 이걸 찍어놨어야 현장 아카이빙으로는 진심 제대로인데 아쉽다 너무나..) 푸드팀뿐만 아니라 소품팀에 음식 담당 연출부까지 팔 걷어 부친 냉면 릴레이. 면 삶으면 헹궈서 비벼 빨고 빠는 3단계를 거치며 대략 30인분의 냉면을 삶았는데 면사리를 왜 때문에 내가 잘 말아서 얼음물에 계속 담그느라 손이 얼음장 되었다. 내가 사리를 틀어 담으면 어시스트가 고명을 투척하고 어시스트 2는 방망이로 두드려 살얼음이 낀 육수 팩의 동치미 육수와 밤잠 못 자고 직접 뺀 고기육수를 7:3 비율로 섞어 부어준다. 그럼 연출부가 쟁반에 세 그릇씩 담아가서 대기하다가 컷 하면 재빨리 교체하고 그동안 우리는 말고 또 말고.. 또 또 말고 또 말고.. 엉엉..

좌) 진짜 고무대야 말고 다라이가 준비됨 우)얼음물에게 내어준 내 손이 이런늬낌이었겠지? 보기만해도 씨늘하다. 차가웁다.
좌) 현장에 있다는 유일한 증거사진 한장.  우) 민희씨한테만 눈이 가더라도 세팅 좀 봐줘요. 가운데 수육 접시와 개인 세팅.

최종 세팅 : 블랙 칠기 위에 유기와 쓰게 모노를 담는 코바치.

                     금장 유리컵과 소주를 담은 술잔.

                     수저와 수저받침. 유기 냉면기.

메뉴 : 평양냉면 - 돼지&소 편육, 오이절임과 무김치,

           달걀, 고춧가루 고명을 올린 물냉면.

            쓰케모노(漬物) - 일본식 절임 요리.

            갓 절임과 냉면용 무김치를 금테를 두른

            코바치(小鉢)에 담음

            소주 - 선주후면은 배운 사람의 도리

            수육과 편육 - 중앙 공유공간에 한 접시 담아놓음

센터피스 : 경사형 모리바나. 흰 작약으로 깨끗함 강조.

                    곱슬 소재의 자연스러운 라인을 살려

                    동양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도 하녀랑 눈맞추는 너라는 남좌. 하녀가 들고있는 크리스탈커팅 디켄터는 꾸밈 거~^^
좌) 컷 이후에 음식 교체없이 바로 촬영을 이어갈때는 호일이나 깨끗한 냅킨을 덮어 음식에 먼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 덮는당번 따로 있음. 우) 아가씨의 척추뼈같은 단추행렬
소리까지 함께해요.

엔지가 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찍다 보니 한 테이크에 세 그릇씩 교체하게 된다. 배우분들(특히 코우즈키)도 상당히 많은 양을 드셔서 고기육수 부족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시판 동치미 육수로만 냉면을 말아드렸는데.. 난 듣고야 말았다.

아가씨 : 어? 아까는 맛이 좀 이상했는데 이제 맛있다.
코우즈키 : 난 아까 좋았는데
백작 : 난 아까 막 먹어서 배가 너무 불러

아, 내 정성도 몰라주고 시판 육수를 좋아하시다니.

민희 씨는 평냉을 너무 몰라 흑..

그래도 조진웅, 하정우 두 배우님이 맛있게 드셔주셔서 위안도 되고 뿌듯했다. 그리고 개봉하고 스크린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개뿔 수육 한점, 냉면 그릇 한번 클로즈업되지 않아서 고춧가루까지 뿌린 디테일은 찾아볼 수 없음을.

 그러나 그것이 요리 영화가 아닌 영화 음식을 만들 때의 숙명 아니던가 씁쓸함을 위로하며 아직까지도 이 일을 하는 것이다. 나 녀석, 대견하다 정말. 하하하.

이렇게 기대하게 해놓고~ 흥,칫,뽕 ㅠㅠ

장고조차 없이 열악하고 어두운 세트장 구석에서 냉면을 말던 기억도 이제 아스라하다. 그러나 모든 스텝이 단 한 씬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장의 그 공기가 너무 좋아서 아직도 버텨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재미있게 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주일에 2회, 적어도 꼭 1회는 올리려던 연재가 좀 늦어져서 죄송. 다음번에는 에키벤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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