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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8. 2024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친구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학생들이 강의 핵심을 못 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잘못 가르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3학점짜리 2시간 강의를 끝내고 오늘 강의 전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하면, 다들 머뭇거리고 그나마 손을 들고 답변을 하는 학생들조차 딱 부러지게 강의내용을 한두 문장 정도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요약의 부재, 표현의 부재는 뭐 젊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는 모임을 하거나 세미나나 포럼을 참석해 봐도 그 시간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해서 핵심을 설명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요약하고 핵심을 표현하는 능력이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된다. 


요약과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에는 '의식적 관심집중'이 필요하다. 무의식적으로 강연자의 설명을 듣는 수준으로는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 물론 강연자의 강연 수준에 따라,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의 갈래가 여럿 있게 됨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사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의 의도와 핵심을 명확히 짚어내야만 의견 교환이 가능해진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지 못하면 맥락 없는 대화만을 하게 된다. 상대방이 지금 무엇을 묻고 싶어 하고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거기에 맞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고 서로 대화가 가능해진다.


특히 비즈니스 현장에서 상대방의 핵심을 간파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상대가 경쟁적일수록 자신의 심리와 의도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요점과 핵심이 교묘히 감추어져 있다. 이 핵심을 찾아내 정곡을 찌르는 전술이 비즈니스의 승패를 가른다.

'표현을 못하는 시대'의 도래는 표현하지 않아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기능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자기의 주관과 개성을 보여주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사회는 자기를 드러낼 수 없는 구조다. 남들보다 튀는 놈은 가차 없이 매장시키고 보편화된 인간을 기르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자만과 만용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우리 사회에 존경할만한 지도자나 성직자가 안 보이는 이유인 듯하다. 인물은 시대가 만든다. 우리 사회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요약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평균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표현(表現 ; expression)한다는 것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행위'다. 특히나 언어적 표현은 인간행위의 정점이다. 자기의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실은 단어들을 잘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고 그 단어를 적절히 연결하여 문맥을 만들어내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적 표현은 많이 자주 써봐야 달변이 되고 달필이 된다. 연습과 훈련이 되지 않으면 모래밭에 진주를 골라낼 수 없다. 연습과 훈련은 진주를 골라내는 기술을 습득하는 방편이다.


표현의 부재는 선택의 부재로 이어지고 경쟁에서 뒤처짐이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데도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는 이유도 바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면 남들이 시키는 데로 따라가게 된다. 백반을 먹으나 짜장면을 먹으나 곰탕을 먹으나, 먹는 것은 똑같을 수 있으나 표현하여 선택하면 그 맛까지도 즐길 수 있지만 남들을 따라가면 그저 먹는 행위에만 집중할 뿐이다.


점심 식사시간에 무얼 먹을까 고민만 할 것이 아니고, 오늘은 할머니 잔치국수에 김밥 한 줄 먹겠다고 마음먹는 것, 그 자체 만으로 표현이 되고 발걸음을 분식집으로 가게 한다. 요약하고 표현하는 힘이 삶을 질을 선택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됨을 눈치채야 한다. 복잡한 정보들을 다 입력하여 가져갈 수 없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정리하고 핵심만 가져가고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머뭇거리고 횡설수설하면 이미 기회는 저만치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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