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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7. 2024

'이마트 폐점', 씁쓸한 포스터가 붙다

아침 출근길, 어제 퇴근 때까지도 안 보이던 방(榜)이 동네 담벼락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지난주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 붙여놓은 벽보를 아직 떼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치는데 사람얼굴이 없고 흰 바탕에 글씨만 달랑 있습니다.


"이마트 고별전" 포스터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중랑구 망우역 바로 뒤입니다. 망우역 근방이 근래 10년 사이에 천지개벽을 하여 대형 주상복합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 틈에 이마트는 24년간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코스트코와 홈플러스, 엔터식스까지 대형 마트들이 우후죽순 경쟁을 하는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랑구는 서울시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입니다. 강남구, 용산구는 들어봤어도 중랑구는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도 여럿 있을 정도입니다. 서울시내에서 아파트 값이 가장 싼 곳 중에 첫손가락에 꼽히는 지역입니다. 주거환경 좋은 지역이 아파트 가격이 싸고 학군 및 놀기 좋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는 우스갯소리에 만족해야 하는 동네입니다.


그 와중에 이마트 상봉점은 24년 동안 낙후 지역의 전통시장들과 함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도맡아 왔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중랑구 생활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랬던 이마트 상봉점이 5월 7일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는 고별전 포스터가 동네 골목길 여기저기 붙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이마트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는 기사들이 올라옵니다. 유통환경이 바뀌고 쇼핑문화가 변하여 오프라인 매장들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미트 상봉점이야 전국 이마트 155개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경쟁의 힘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곳부터 문을 닫기 시작할 텐데 그 첫 대상이 되었다는데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대형 마트로 제일 먼저 이 지역에 자리 잡았지만 기존의 영업형태로는 분산되는 고객을 끌어들이기가 버거웠던 모양입니다. 

기존 건물을 부수고 고층 주상복합시설을 짓는다고 합니다. 지금보다는 더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앞에 있던 상봉시외버스터미널도 지난해 11월 말 폐쇄하고 부지가 이미 주상복합시설로의 변신을 시작하고 있으니 같이 개발하려는 묘수의 방편인 것 같습니다.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은 80년대 중후반 서울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대성리, 가평, 청평 등으로 MT를 갈 때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상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이 생기기 전에는 강원도 쪽으로 가는 시외버스터미널은 마장동에 있었습니다. 질풍노도 대학시절의 향수가 오롯이 베인 곳이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이었으며 강원도 지역의 전방에 군대를 갔다 휴가를 나올 때 반드시 내려야 했던 곳이기도 했을 겁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었던 추억의 터미널이었습니다.


이마트도 그렇고 버스터미널도 그렇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하나둘씩 세월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몇 년 뒤면 또다시 그 자리는 상전벽해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 겁니다. 과거를 보내고 미래를 맞이하는 최첨단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상권이 바뀌고 찾아드는 사람들의 부류가 바뀌고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곳으로 될 겁니다. 새로운 적응입니다. 슬럼화되지 않고 미래의 청사진을 갖고 개발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값이 조금 더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소심한 시민의 아주 작은 바람입니다. 남들은 서울에 33평 아파트 있으면 최소 10억 원은 갈거라 예상하는데 제가 사는 동네는 6-7억 원 왔다 갔다 하는 수준 밖에 안됩니다. 이마트와 버스터미널 부지가 최첨단으로 개발되어, 아파트 값이 다른 지역 코밑에라도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들 다 키우고 살기는 그럭저럭 좋습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봉화산, 중랑천, 태능 등 좋은 산책코스도 많습니다. 아파트값쌀 때 이사오 실 것을 검토 한번 해보시지요.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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