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과 외할아버지
2014년 12월 30일, 평소 자전거를 타곤 하는 경기도 파주 공릉천을 찾은 소설가 김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필과 지우개로 종이를 파고 긁어서
글을 만드는 목수
실눈으로 각을 가늠하듯
단어와 문장을 이리저리 살피고,
나무와 나무를 짜맞춤 하듯
조사 하나, 어미 하나를 끼워 넣고,
톱밥처럼 쌓인 지우개 가루를 손등으로 털어내고,
그러고도 남아있는 잔 가루는 후후 불어낸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 시작해 근동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지게 된 자수성가한 농부였다. 그는 모든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썼다.
나무를 잘라 끌과 망치로 지게를 짰고, 돌을 캐 주춧돌을 놓고, 나무를 베어 기둥을 박고, 짚을 섞은 흙으로 벽을 세워 집을 지었다.
농한기에는 갈라진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마른 짚을 베베 꼬아서 짚신을 만들었고, 이듬해 봄 논에 물 대러 갈 때 신고 나갔다.
마른 갈대, 쪼갠 대나무를 엮어서 크고 작은, 부드럽고 딱딱한 바구니를 만들었고, 농사지어 수확한 것들을 거기에 담아 보관하였다.
그는 군수배 씨름대회에 출전해 우승했고, 부상으로 황소를 받아 왔는데, 160센티가 채 안 되는 단신이었지만, 두 다리를 땅에 버티고 서서 '끙'하고 힘을 쓰면, 깊이 박힌 바위 같아서 아무도 그를 뽑아낼 수 없었다.
김훈의 얼굴을 보면, 나는 외할아버지의 손,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외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근동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후에도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썼다. 언제나 머슴들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었고, 흉년엔 땅이 없는 이들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었다.
김훈은 연필과 지우개로 종이를 파고 긁어서 지게와도 같은 글을 만든다. 그 지게를 등에 지고 나가서 나무도 하고, 나락 가마니도 나르면서 삶을 영위한다.
그도 땅에 단단히 박혀있어서,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