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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06. 2024

슬퍼하는 시간은 끝났다, 이젠 모두 함께 분노할 때이다

음주운전


주말에 볼만한 드라마를 찾다가 새로 시작하는 ‘원더풀 월드’(mbc)를 골랐다. 그 드라마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었지만 믿고 보는 배우, 김남주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보고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첫회에서 그녀의 어린아이가 음주운전의 가해자에 의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하늘나라로 떠났고, 그 가해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증거불충분으로 사고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찾아간 그 남자의 집 앞에서 오히려 모진 소리를 듣고 내팽개쳐지고 만다.



그녀는 바로 이성을 잃었고, 멀어져 가는 가해자를 향해 차를 돌진한다. 그 남자가 죽고 보복살인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험한 세월을 보내고 출옥한다. 다소 충격적인 전개였지만 시청률을 의식한 초반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난 주말 금토 2회, 그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최근에도 뉴스에 보도되었지만, 2022년 청담동 근처 한 초등학교 후문 앞 도로에서 면허취소 수준의 낮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던 음주운전 가해자로 인해 초등학교 3학년의 생때같은 어린 아들을 잃고만 가엾은 엄마이자 마케터인 어느 여성 트위터리안이었다.



 내가 팔로잉하는 그녀의 트라우마가 재발할까, 제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트윗에 올리는 그녀의 일상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그 음주운전 가해자에게 20년이 구형되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겨우 5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최근 그 재판결과를 대법원이 그대로 확정판결했다. 그 소식을 듣고 초등생을 둔 대부분의 엄마들은 매우 분노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후, 그 초등생 아이의 아버지는 “대낮에 음주 운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학교 후문 바로 앞에서 하늘나라로 보낸 자가 고작 5년의 형량을 받는 것이 진정한 정의냐, 가해자가 전관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로펌을 변호인으로 쓴 점, 기습 공탁금을 사용한 점 등 금전적인 힘의 작용이 이와 같은 판결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그 드라마의 초반 구성 또한 비슷했다.


월류봉 둘레길, 영동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대법원 판결결과에 대한 부당함보다는 우리나라의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판례나 시민의식에 대한 부조리함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음주운전 가해자들에 의해 수많은 어린 목숨들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갔지만, 이제야 겨우 민식이 부모님이 고군분투한 결과, ‘민식이 법’이 통과 처리되었지만 아직도 그 음주운전에 대한 시민의식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시간은 끝났다. 이젠 모두 함께 분노할 때이다



트위터에서 내가 팔로잉하는 그 트위터리안이 혹시 그 드라마, ’ 원더풀월드‘를 보고 트윗에 글을 올리지 않았을까 가슴 조리며 찾아보았지만 다행히 그 아들을 그리워하는 일상적인 글 밖에 없었다. 음주운전은 유무죄의 문제가 아닌 한 가정을 파괴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한 초등학생 엄마가 올린 트윗 글을 읽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학교에 혼자 보냈다. 그리고 한참 떨어져서 아이 몰래 쫓아갔다. 잘 가는가 싶더니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린이 보호구역이고 자시고 출근길의 차들은 그저 쌩쌩 달렸다. 불안했다. 맘이 급해서 아이가 빨간 불에 건너기라도 하면 어쩌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길을 건너려는 아이들이 하나 둘 횡단보도에 모였다. 딸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조금 느긋해졌다. 뒷모습만 봐도 긴장이 풀어진 게 보였다.


신호가 바뀌고, 딸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비슷한 템포로 길을 건넜다. 사는 것도 비슷하다. 나는 내 딸이 남들보다 빨리 길을 건너려고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그저 안전하게 길을 건넜으면 좋겠다. 지각하면 뭐 어떤가. 신호는 다음에도 있고, 기다리다 보면 또 횡단보도로 모여드는 다른 친구들이 생긴다. 그저 그렇게, 제 몫의 삶을 남김없이 살아주기만 한다면 좋겠다. “




음주운전을 한 번이라도 했거나, 아님 음주운전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언젠가 “ 딱 한 잔만”이라며 음주운전을 할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위에 올린 어느 저학년 초등생 엄마의 트윗 글을 읽고, 초등학생을 둔 모든 엄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경각심을 갖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린다. 실수를 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배우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니고 잠재적 살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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