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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25. 2024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힘들게 하진 않는다

관계


 휴일 오후, 친한 친구의 이름이 벨이 울리고 있는 아이폰 화면에 떴다. 이젠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회사생활의 여파인지 휴일에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은 주말이나 쉬는 날은 서로를 배려해 전화를 잘  하지도 않지만, 대개 연락도 카톡이나 문자를 이용하지, 긴급한 일이 아니면 직접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거의에 속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게 전화를 했던 친구는 멀리 해외에서 생활하는 친구가 십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며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몇 명을 함께 만나자는데 같이 보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싫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거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알겠다면서, 오히려 그 친구에게 내 핸드폰번호를 알려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왜냐고 이유를 묻지 않는 그 친구에게 내가 더 미안했다.



 요즘은 보이스피싱도 많을뿐더러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안 받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었다. 사회생활을 그만두고 이제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쓸데없는 친목모임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내 모습 때문인지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핸드폰에 이런저런 오천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고, 삼천 개가 넘는 번호가 지인들이다.


탑사, 진안 마이산


 그중 10%인 300명만 어쩌다 생각났다며 만나자고 연락을 해와도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이지만,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 네댓 시간씩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사회생활을 그만두고 실제 그랬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팬데믹이 닥치면서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많은 연락이 왔지만 코로나사태가 잠잠해지면 보자는 핑계가 가능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났지만 그중 삼분의 일은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들의 사회적인 인간관계의 실상일지도 모른다. 그중 다시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냥 생각나서, 또는 심심하던 차에 한번 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운했을 수도 있고, 많이 미안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쓸데없는 만남에 나의 소중한 일상을 깨고, 돈과 시간을 낭비할 나이는 아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그런 만남을 위해, 또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은수사, 진안 마이산


경조사 참석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이효리의 작은 결혼식이나 원빈과 이나영의 소박한 결혼식 이후, 가족과 친구들만의 작은 결혼식이 유행했고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팬데믹 이후 그 반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거창한 결혼식과 호텔예식이 일반화된 느낌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례식만큼은 많이 간소화된 느낌이다. 나이가 든 만큼 경조사 참석이 더욱 많아졌다.



 하지만, 언젠가 회사후배가 조언해 준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십 년 동안 한 번이라도 서로 만났거나 아니면, 오 년 내에 한 번이라도 전화나 메시지로 서로 안부를 전했거나 하는 사이만 경조사에 축의나 부의를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결혼하는 아이들을 본 적은 없어도 최소한 이름만큼은 기억하는 아이들은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지인의 부모님을 뵌 적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그 부모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으면 직접 조문을 한다. 대개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혼상제에 대한 관습을 존중해서 모바일 청첩장에 함께 달려오는 계좌로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 변화에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무엇이든 당연히 그래야만 하고, 무조건 그래야만 하는 법은 없다. 이래저래 지금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모임조차도 친소에 따라 따로 안부를 전하거나 따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사회적 관계란 게 그런 거니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유 없이 만나는 사람이 친구, 이유가 없으면 만나지 않는 사람이 지인, 이유를 만들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주변에 함께 있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고, 그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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