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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성공 같은 거 없다, 즐겁게 사는 것이 성공이다

가사노동

by 봄날


유튜브를 보고 있던 아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말했다. 궁금해서 들어보니, 60대 중반의 어느 남편이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어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딩굴딩굴하더니 아내가 밥해먹이고 겨우 설거지를 마친 후 힘이 들어 물을 한잔 마시고 있는데 “다했어?”하고 물었다고 했다. 그 남편을 바라보며 치민 분노와 함께 자신의 어이없는 표정을 올리고 구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뮤지엄 산(S.A.N), 원주


지금의 청년세대는 함께 시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청소와 빨래는 물론 함께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편이다. 중장년 남편들은 가끔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동년배들과 다르게 자신이 차별화되는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세대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육아까지 서로 공평하게 분담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화살나무(반영)


지금도 청년세대가 설사 각자 독박생계, 독박육아를 할지라도 부부가 가사노동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젊은 꼰대소리를 듣거나 그 부부의 삶이 앞으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그 시대와 그가 사는 지역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태어나고 자랐던 그지역의 문화적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청춘, 안도 타다오


지역은 몰라도 세대차이는 대개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사고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장년세대는 특히 나이 들고 은퇴하면서 아내의 가사노동을 조금 돕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세대의 자랑일 뿐 청년세대에겐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다.


카페, 테라스


그동안 전통적 가부장시대를 살아왔던 중장년세대의 가사노동 이야기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분명 훌륭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단, 쌀로 밥 짓는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나쁘진 않다. 하지만 젊은 후배들과 이야기할 때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오크밸리, 원주


남녀평등의 시대정신과 함께 이미 젊은 사람들은 가사노동의 분담은 국룰이기 때문이다. 중장년세대에겐 요리하고, 청소하고, 쓰레기분리수거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고 아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세대에겐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생활과 달리 가정에선 허세 부리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면 서로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안토니 곰리(Antoni Gormley)전


서로 나이 들어가면서 거실에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밥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일단 결혼을 하면 그 순간부터 맨, 우먼 아닌 같은 휴먼이니까 서로 돕고 사는 휴머니즘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세시대의 여성들은 백세까지 혼자 밥하고 죽어야 일이 끝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가 중요한 회사일과 달리 소소한 일상의 삶의 행복은 과정이 더 중요하니까.


백합나무


문득 ‘나의 해방일지’(2022)란 드라마 속의 그 주인공 삼 남매의 어머니(곽혜숙)가 생각났다. 산포싱크대 공장일과 논밭일, 가사노동을 함께하며 혼자 고군분투했다. 결국 어느 날 저녁, 그 어머니는 압력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잠시 쉬러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다가 그대로 돌아가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후의 드라마 장면들은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란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나 또한, 내가 열심히 일해 가족을 건사한 줄 알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부처님 손아귀에서 놀았던 손오공이었다. 가족이 늘 나를 지켜줬고 그 부처님이 아내란 뜻이다.



지금, 청년세대의 치열한 삶을 보면 남자든 여자든 가히 존경스러울 뿐이다. 돌이켜보면 독박생계, 독박육아의 시대를 살았지만 결혼생활은 나름 둘이 가정을 꾸리고 얼콩달콩 사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쉽진 않았지만 지금의 청년세대처럼 힘들게 살아야 한다면 난 연애는 몰라도 결혼만큼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냥 혼자 살아도 된다 싶으면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를 나는 우러러볼 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 부부들을 존경하고 있다. 더불어 이런저런 이유로 비혼인 모든 청년들도 존중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인생의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해답은 무수히 많다. 그러니 결혼은 그냥 각자의 인연에 맡겨두면 된다.


그처럼 우리 인생의 본분은 마음껏 사는 데 있다. 또한, 인생에 성공 같은 것은 없다. 세상이 정한 기준일뿐, 그저 재미있게 사는 것이 성공이다. 특히 나이 들면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다. 그리고 결혼이든 비혼이든, 자신이 선택한 삶을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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