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나를 찾고 있어
나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후 친구들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고, 이내 곧바로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갔다. 그래도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한 건데 돌아오는 반응이 없어서 내심 서운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봐도 한참 연애 이야기와 취업 이야기로 범벅이 되어있는 이 시기에 갑자기 자아를 찾는다는 말이 얼마나 황당한 말일까 싶기는 했다. 자아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사춘기를 겪었고, 똑같이 나이를 먹어서 지금에 왔기에 이 나이에 자아를 찾는다는 나의 말이 황당했을 거다. 그래서 내 말에 구태여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내심 서운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스물의 끝자락에 자아를 찾겠다는 헛소리를 한 건 나이니 말이다.
스물의 끝자락까지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인생을 살아왔었다. 이쯤 되니, 이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정말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전공을 선택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하다 못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으면서 왜 그렇게 잘 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나를 모르니 내가 무얼 원하는지도 몰라서 자기주장도 잘 펼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든 부정적인 평가를 하든 가만히 그 평가를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굳이 반기를 들지 않는 삶이, 다른 사람과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삶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왜'라는 반문을 던지지 않았었다.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살아오고 나니 나는 내 색깔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회색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색이지만 여기저기 있는 다른 색깔과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만의 색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주체성 있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주체적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냥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이라고 하면 될까. 나의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나가는 삶을 살아오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의지를 가진 삶이 비단 특별난 게 있을까.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못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를 알고 그에 따라서 나의 의사결정을 하는 게 의지를 가지고 내 삶을 이끄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내 삶을 이끈다는 것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책임감이다. 내가 어떤 의사결정을 하거나 인생에 있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는 책임이 뒷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책임지는 게 무서워서 내 삶을 남에게 맡기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이끌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그동안 책임지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어깨가 많이 무겁다. 연습도 없이 바로 실전에 들어가려 하니 얼마나 실수가 많을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여기에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이끄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역시 나는 나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