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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안 Nov 10. 2022

여성이 마음 편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성차별이 어디 있어?


나는 처음 인턴 생활을 시작했던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에 탈락했다. 그 회사를 다닐 적에 한 임원이 했던 말이 있다. 너희 바로 윗기수가 하필 전부 여자라고. 그래서 성비가 좀 맞았으면 해서 이번 기수는 일부러 면접에서 남자들을 뽑았다고. 만약 요즘이라면 차마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겠지만 10년도 더 전에는 그랬다. 실제로도 정규직 전환 시 남자 인턴들은 모두 채용됐다.


이전까지 젠더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상당히 무지했던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이었다. 물론 나도 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을 할 때는 성별로 차별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학급에서 번호를 부여받을 때 남학생은 1번으로 시작하면서도 왜 여학생은 뒷번호인 41번부터 시작하는지가 좀 의아했지만, 적어도 이런 것이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여성이라 채용에 불이익을 받는 것이 옛날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늘날에도 버젓이 실재했다. 막연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 사회는 막상 발을 들이고 보니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직장에서의 성별 문제는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계속하면서 보다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내 첫 직장은 남초 업계에 속했다. 나이 많은 남자 직원들이 내 앞에서 편안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성희롱으로 느껴진 적이 많았다. 예를 들면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2차를 갈 수 있고, 거래처가 접대를 하겠다는데 안 가는 게 바보같은 짓이며, 저번에 거기가 좋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회식 자리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어째서 여직원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도 이런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일까? 사회 초년생이라 더 충격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에 악의가 담긴 것이 아닌 너무나도 일상적이라는 점 때문에 차마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그들이 뒤늦게야 "아, 그래도 여직원이 있는데 너무했나?"라고 의식하는 체 했지만, 내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부서 여직원이 "아뇨, 저도 남친이 사회생활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하는 바람에 더더욱 말문이 막혔다. 그 응답에 신난 남직원들이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간 것은 물론이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면서는 주변 동료들을 통해 성별에 따른 불이익을 겪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됐다. 한때 다녔던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았던 나머지 친한 직원끼리 함께 퇴사와 이직 계획을 공유한 적이 있다. 그중 나랑 동갑이었지만 결혼을 일찍 한 직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직 면접을 볼 때마다 너무 서럽다고 토로했다. 자꾸 임신 계획을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전혀 계획이 없는데, 그렇게 얘기하더라도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고는 결국 탈락시킨다고. 물론 그 직원은 칠전팔기 끝에 이직에 성공했지만, 결혼이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되는 것은 실제 현실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남초 직장과 여초 직장을 모두 경험해 본 입장에서 여성이 살아남기에는 여초 회사가 좀 더 낫다고 느꼈다. 다만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 때문인지, 직급이 높을수록 미혼 또는 비혼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면 양가 부모님의 육아 찬스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도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한때 거래처에서 일하는 대리님과 가까워진 적이 있다. 그 회사는 대기업이었는데도 대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희 회사에서 여자는 대리가 끝이에요. 나이 더 먹으면 사실상 퇴사에요. 여자 중에 과장을 단 분들은 극히 드물고요. 저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라고 말이다. 오래 전이 아닌 2020년의 일이다.



결혼을 언제 하는지가 왜 그리도 궁금한가요


첫 직장을 떠나 이곳 저곳을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 내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그때는 인터넷에서만 보았던 말을 나도 직접 듣게 되었다. 면접관들은 "남자친구 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면접을 볼 때 이런 질문을 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었다. 나는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하지 않고 다양한 직종을 옮겨다니며 여러 회사를 전전했는데, 나이를 먹고 이직을 하면서 이런 소리를 점점 더 많이 듣게 됐다. 왜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적 질문을 하는 걸까? 물론 그런 질문을 일절 하지 않았던 좋은 회사도 있었고, 그런 곳과 인연이 닿아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기본적인 것이 늘 지켜지지 않고, 순전히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은 자못 괴로웠다.


요즘에는 에둘러 질문을 하는 곳도 있다. 한 회사에서 최종 면접에 합격한 뒤, 연봉 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을 하기 위해 한번 더 방문한 적이 있다. 계약서를 읽고 사인을 하는데 사장이 물었다. 혼자 사냐고. 대체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거지? 당시 나는 결혼을 1년 앞두고 있었는데, 그때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이 마구 폭등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이런 추세에 대비하고자 일찍이 전셋집을 구해 입주했다. (실제로도 더 늦은 시기에 집을 구했다면 턱없이 자금이 모자랄 뻔했다) 그렇기에 혼자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그 자리에서 결혼 이야기를 하기란 부담스러웠다. 결국 "혼자 산다"라고 대답했다. 사장은 안경을 스윽 치켜올리고는 "부모님이 멀리 사나? 가까운데 왜 부모님이랑 같이 안 살고?"라고 되물었다. 그제서야 질문의 의도가 느껴졌다. 결혼 여부를 은근슬쩍 떠본 것이다. 자리를 마무리하는 찰나에 사장이 말했다. 출근할 때 주민등록등본 1통과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고.


아니!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주민등록초본이 아닌 등본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셋집은 예비신랑의 명의로 되어 있었고 나는 세대원이었므로 예비신랑의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등본을 제출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가족관계증명서를 달라는 회사는 처음이라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그냥 제출을 했다. 경영지원팀에서는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모님 밑에 있는데 주민등록등본에는 웬 남자가 세대주로 나와 있으니 말이다. (이게 회사를 다니는 데 중요한지도 잘은 모르겠지만) 사장이 즉시 날 호출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너 동거해?" 그제서야 사정을 설명했다. 사실 결혼 예정이라고. 다만 아직 한참 남아서 말씀드리기 애매했다고. 사무실에서 몇몇 사람들이 쑥덕이는 것이 좀 느껴졌지만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다.


예비신부들이 결혼 준비를 위해 모이는 웨딩 커뮤니티에서 꽤 자주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다. "결혼 전에 이직할까요, 결혼하고 난 후에 이직할까요?"라는 질문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커리어에 지장을 받는다. 결혼을 하면 '곧 임신할 것'으로 간주하고 처음부터 뽑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임신기에 배려해야 하고 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줘야 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들 한다. 문제는 결혼 전에 이직을 하면 새 회사에 적응하면서 결혼 준비까지 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따르고, 결혼이 몇 달 남지 않았을 때는 새 회사에 결혼 소식을 밝히기도 눈치가 보인다.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이직을 준비하면 상대적으로 여유롭지만, 이직 난도가 훨씬 올라가고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예비신부들이 고민하는 것이다.


결혼을 6개월 앞두고 이직을 한 여성 지인이 있다. 이직한 회사에서 결혼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사가 "우릴 속였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뽑았을 텐데. 아, 농담인 건 알지?"라고 대놓고 비꼬았다고 했다. 분했지만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면접을 볼 때 결혼이나 임신 여부를 물어보지 말라는 건 그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말해줄 이유가 없는 것인데 속였다니, 이게 웬 말인가. 고리짝적 이야기도 아닌 2021년에 있었던 일이다.



낳으면 뭘 얼마나 낳는다고 차별하나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가 애를 낳으면  얼마나 많이 낳는다고 그렇게까지 차별하느냐고 되묻고 싶다. 2022 2분기 한국의 출산율은 0.75명을 기록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끊임없이 닦달하다 보니 결국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 장래에 일할 사람도, 소비를  사람도 없다고 걱정하면서도 이러한 차별은 끊이지 않는다. 나랏님들은 법으로 명시해놨다고 하지만 정작 법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2030년이 되면 노동 시장에 인구 부족이 체감된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임신한 여성의 사정이  나아질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다면, 나보다 어린 세대들은     귀한 인력으로 대접받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기업의 입장도 어느 정도는 납득한다. 기업에서는 인력 공백과 휴가 지급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직원들도 동료의 공백으로 인해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부담을 안는다. 임신과 출산 등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면 징벌적 손해 배상에 해당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잘못한 회사에 벌만 줄 것이 아니라 잘한 회사에 이득도 확실하게 줘야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가족친화기업 인증 제도와 육아휴직 지원금 제도의 혜택을 더욱 끌어올리고, 실제 일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피드백으로 받아 제도를 보완해 나갔으면 싶다. 정부에서 출산, 육아휴직을 한 직원이 발생한 회사에 맞춤형 일자리를 매칭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동료 직원들의 부담을 덜고 취업난까지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인데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나아가 남성 육아휴직도 빠른 시일 내에 의무화되었으면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성에게는 아예 육아휴직이 주어지지 않거나, 제도가 있더라도 "네가 애 낳았냐"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거나 복직 시 불이익을 겪는다. 최근 부산에서 거주하는 두 아이를 둔 아빠가 육아휴직을 마친 뒤 복직을 했는데, 서울의 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 뉴스가 났다. 내 주변의 남성 지인 중에서도 상사의 압박으로 인해 육아휴직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복직한 뒤에도 상사의 괴롭힘이 이어지는 바람에 이직을 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있는 여성도 차별받지만,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들도 사회의 차별을 받는 것이다. 이 사회가 여성을 일터에서 배제하고 남성을 ATM기로 몰아가지 않는 때가 오긴 할까. 리멤버와 같은 직장인 커뮤니티를 보면 종종 남성 육아휴직에 관한 고민글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런 글에서 "남자도 이러는데 여자들의 경력단절 두려움은 얼마나 더 클까요", "그래도 저는 육아휴직 했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라고 응원하는 댓글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희망을 느낀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이 주로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보장되는 현실도 빼놓을 수 없다. 내 단골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최근에는 "저는 일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한데 아이를 가지면 일을 하기 힘들어져서 고민돼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업의 형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자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없다. 저출산을 핑계로 허투루 쓴 예산이 무엇무엇인지 따져본다면 충분히 지원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Me too.


만약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요소를 소거하면 직장에서 겪는 성별 문제는 사라질까.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최근에는 모 은행의 지점에서 여직원에게 밥 짓기와 화장실 수건 빨래를 강요했다는 갑질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파장이 일었다. 나도 여직원에게만 청소와 설거지를 시키는, 잡플래닛 평점 1.4점의 회사에 다닌 적이 있어서 어떤 분위기일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사실 눈에 빤히 보이는 갑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교묘하게 자행되는 권력형 성폭력 문제다. 나는 첫 직장을 퇴사하면서 그 업계를 떠났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고위 임원이 교육과 업무를 빌미로 나를 불러내고는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임원은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게 오피스 와이프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거나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했고, 자신이 아내와 헤어지면 그땐 받아줄거냐며 거듭 이야기했다.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가 회사에서 워낙 지위가 높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이가 없었다.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 적이 수차례지만, 임원은 내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에 가까워지고 싶은 것일 뿐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업무적인 측면만 보았을 때 임원에게는 배울 점이 있었고, 그 임원이 내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려 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그 임원은 9개월이 넘도록 계속 전화를 했다. 나는 당시에도, 그리고 꽤 오랫동안 전부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끊임없이 자책했고 괴로웠다. 한참이 지난 뒤 미투 운동이 불었을 때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차마 저들처럼 용기내어 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낯뜨거웠다. 역시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 크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022년 10월 전국 성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젠더폭력 특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성 직장인 37.7%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경험한 여성 직장인은 25.8%나 됐다. 하지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항의하기란 어려웠다. 참거나 모른 척한 경우가 63.1%를 차지했으며, 회사를 그만둔 경우는 37.8%로 나타났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가해자의 68.4%는 임원이나 상급자였다.


여성이 일을 할 때 성별이 아닌 역량으로만 평가받고, 마음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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