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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안 Jan 12. 2023

노르웨이의 <빙판길 구조대>와 화물연대 파업

노르웨이 도로 당국은 왜 독일 트럭 기사를 멈춰 세웠을까


디즈니 플러스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빙판길 구조대>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있다. 겨울이 되면 노르웨이의 도로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위험해진다. 그래서 트럭 구조 전문가들이 사고를 수습하거나 재난을 예방해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한다. <빙판길 구조대>는 이 트럭 구조 전문가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한 독일 기사가 모는 트럭이 노르웨이 도로법을 여러 가지 어기는 바람에 노르웨이 도로 당국에 붙잡혔다. 빙판길 구조대는 도로 당국을 돕기 위해 출동했다. 노르웨이는 도로가 좁아서 트럭보다 화물을 넓게 싣고 운전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해당 도로에서는 트레일러의 너비가 2.55m를 넘어서는 안 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별도로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독일 기사의 트럭은 지나치게 과적을 하는 바람에 트레일러 측면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노르웨이의 도로에서는 적합한 타이어를 써야 하는 것은 물론 빙판길에서는 체인을 써야 하는데, 독일 기사는 체인도 쓰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유럽의 상용 트럭의 운행 기록계에는 운전 시간과 휴식 시간이 찍히는데, 이를 확인한 화물차 검사관은 독일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허용치보다 운전 시간이 길어요. 13시간을 운전하셨죠? 5시간 반밖에 못 잤는데, 9시간은 자야 해요."


독일 기사는 "이틀 전에 배송했어야 했는데, 악천후로 배달이 밀리는 바람에 무리하게 달렸다"라고 사정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트럭 기사가 장시간 운전하거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을 경우,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거나 트럭 면허를 박탈할 수 있다고 한다. 독일 기사는 경찰이 올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 역시 독일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신고됐는지 알아요? 휴식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경찰은 독일 기사에게 벌금 8,000크로네(1,000유로)를 부과했다. 독일 기사는 면허를 지킨 것에 안도하며 "괜찮아요. 그게 경찰의 일이잖아요. 잘못을 했으니 어쩔 수 없죠. 이제 운전 똑바로 할게요"라며 수긍했다.



우리나라의 안전운임제 일몰, 과연 괜찮을까?


<빙판길 구조대>의 에피소드를 보고 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바로 지난해(2022년)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이다. 고속도로에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졸음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잠이 오거나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며, 졸음운전을 방지하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물차 교통사고는 차량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물이 쏟아지는 등 대형사고로 번질 우려도 크다. 실제로 화물차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건수에 비해 사망자 비중이 월등히 높다. 화물차 기사뿐만 아니라 일반 승용차를 타는 운전자들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화물연대 파업은 지난 6월과 11~12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화물연대는 대체 왜 파업을 한 걸까. 화물차 기사들은 한 달 평균 300시간 넘게 운전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12~16시간을 운전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월 매출은 1,000만 원이지만, 매달 지출하는 원가를 제외하면 월 실질소득은 30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고 한다. 업계에 운송비 후려치기가 만연한 탓이다. 최근에는 요소수 대란에 고유가로 인한 부담까지 더해졌다. 결국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짐을 싣거나 졸음과 싸워가며 과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화물기사가 과로사하거나 일반 승용차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들이 잇따랐다.


그래서 '안전운임제'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것으로, 일종의 최저임금제와 같다. 화물차 기사들이 무리하게 과로, 과적, 과속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안전운임제는 시멘트와 컨테이너 품목에 한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일몰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는 제도)로 도입되었다. 이 안전운임제가 도입되면서 화물차 기사들의 월평균 소득은 늘고 업무 시간은 줄었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마지막 해, 2022년이 되었다. 안전운임제가 일몰되면 화물차 기사의 생계와 국민의 교통안전 문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이에 화물연대는 파업을 전개하며 두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 안전운임제를 한시적인 제도(일몰제)가 아닌 안정적인 제도로 만들어 달라. 둘째, 시멘트와 컨테이너뿐만 아니라 철강, 유조, 자동차 등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을 확대해 달라.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시멘트와 컨테이너 품목은 전체 영업용 화물차 44만 대의 6.1%에 해당하며, 물동량을 기준으로 하면 14.3%에 불과하다: 11월 29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 회의자료 인용) 이는 화물운송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논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좌우 진영의 논리로 접근하거나 감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슈다.


화물연대가 2022년 6월에 파업했을 때 국회는 안전운임제 개정안을 우선적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야가 대립하면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에 화물연대는 연말에 다시 파업에 돌입했지만 정부의 압력으로 파업은 중단되었다. 12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1월 3일 정부는 화물운송을 방해한 화물차주의 종사 자격을 취소하고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2023년 1월 현재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국토교통부 자료를 바탕으로 안전운임제 시행 전후를 비교했을 때 견인형 화물차가 낸 교통사고 건수가 8%, 사망자 수가 43% 늘어났다며 제도에 효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MBC가 12월 2일에 보도한 [알고보니] 화물차 '안전운임제' 효과 있다? 없다? 따져보니 기사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자료에서 언급한 견인형 화물차에는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은 컨테이너와 시멘트 차량(2만 7,000대) 외에도 건설 장비 등 다른 특수차량들이(7,000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과적 및 과속 단속 건수가 오히려 늘었다는 자료도 제시됐지만, 이 역시 안전운임제 대상이 아닌 차량들이 3만 대 넘게 포함되어 있다. 즉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따지기에 적절치 않은 자료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안전운임제가 교통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없으니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없다며 되레 날을 세웠다.



노동과 안전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상식


안전운임제 일몰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가장 심층적으로 다룬 기사는 SBS가 1월 4일 보도한 '안전운임제' 이대로 끝? 10년 후 예상 못한 결과가 온다 라는 제목의 기사다. 기사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물류 75%는 화물차가 책임진다. 그런데 현재 화물차 기사들의 평균 나이는 53.7세이며 50대 이상이 70%를 넘는다. 대부분의 화물차 기사들이 5~10년 내로 은퇴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화물차 기사 중에 20~30대는 전체의 5.4%에 불과하다. 화물차 운송은 3D 직업에 속하기 때문에 처우 개선 없이는 젊은 인력을 유입하기가 어렵다. 자율주행 화물차가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자율주행 화물차가 개발되어 실제 주행에 투입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 장담하기 어려우며, 기존 화물차 대비 가격도 3배 비싸다. 또한 비상 상황에 대비해 기사는 차에 탑승해야 한다. SBS는 이런 문제로 인해 향후 물류비가 폭등하고 물가도 치솟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도로 위의 안전은 10년 후도 아닌 당장의 문제다. SBS는 안전운임제가 해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다수의 화물차 기사들이 은퇴하고 나면 이는 곧 국민과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고, 도로는 계속 국민에게 위험한 곳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기사를 끝맺었다.


안전운임제를 적용하면 운송 비용이 오른다는 말이 많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노동자를 갈아넣으며 산업을 굴리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이제까지 부당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잘못 누렸음을 인지하고 마땅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것이 향후 혼란이 일어났을  치르는 사회적, 경제적 대가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조차 아깝다는 논리는 상식이   없다.


결혼하고 6개월도  되지 않았던 , 남편이 출장을 가다가 4 추돌사고를 당했다. 브레이크를 제때 밟지 않은 화물차가 뒤에서 들이받은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다른 운전자들은 즉시 응급차에 실려갔다고 했다. 남편은  앞에 있었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커서 입원까지 했고 후유증도 오래 겪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님들도 주의를 기울이겠지만, 장시간 운전이 계속된다면 사고의 불씨는 언제든지 지펴질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있다. 안전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빙판길 구조대> 알려주는 교훈을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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