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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Mar 31. 2020

[영화]윤희에게

어린 윤희의 성장드라마

[영화]

6.윤희에게

-어린 윤희의 성장드라마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어린 시절 자신을 부정당해서였을까. 마음을 닫은 윤희는 치기를 버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모든 게 괜찮아졌음을, 심지어 자신의 마음도 회복됐음을 알지 못한 윤희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다 끝난 벌을 붙들고 살았다. 즉, 윤희는 자기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갔다.


그러나 인생은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윤희를 힘들게 했던 세상이 윤희를 성장시켰다. '윤희에게'는 상처 받고 마음을 닫은 윤희가 이를 극복하고 세상을 마주하는, 성장드라마였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윤희,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주변

윤희와 딸 새봄의 관계는 오묘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욕구를 누르며 살아온 윤희, 그리고 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 본 새봄. 새봄은 늘 윤희가 걱정됐다. 사랑하는 어머니 윤희는 늘 외로워보였고 자신이 옆에서 지켜주려 했다. 그래서 부모가 이혼한다고 했을 때 새봄은 윤희를 택했다. 자신이라도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새봄은 한 장의 편지를 받는다. 윤희에게 들은 적 없던 이름, 그러나 너무나 깊어보이는 내용. 윤희에게 숨겨진 것들이 있고 그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게 자신이라고 느낀 새봄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윤희를 사랑하는 새봄은 그렇게 배신감으로 끝낼 수 없었다. 애증이 된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얼마나 큰 일이길래 윤희가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들었는지 알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새봄은 늘 윤희가 고팠다. 윤희가 새봄에게 곁을 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윤희를 떠날 수 없었다. 윤희를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을 비난하는 게 나았던 새봄이었다.


새봄: 저 엄마 안 닮았죠. 엄마 예쁘잖아요. 전 아빠 닮았죠?
삼촌: 아냐. 넌 엄마 닮았지


엄마와 닮고 싶었던, 엄마를 동경했던 새봄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윤희의 과거를 알기 위해 새봄은 윤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빠를 찾아갔다. 아빠를 찾아간 새봄은 아빠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아빠의 여자친구에 반감을 느낀 새봄은 아빠 뒤로 몸을 숨겼다. 새봄은 아빠에게 왜 엄마랑 헤어졌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너네 엄마는 사람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라고 답했다. 순간 새봄은 아빠와 가까워짐을 느꼈다. 아빠와 자신의 마음이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 이혼의 이유와 아빠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된 새봄은 아빠가 이제는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저분한테 잘해"


새봄은 윤희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새봄: 엄만 뭐 때문에 살아.
윤희: 자식 때문에 살지.
새봄: 엄마 나 때문에 안 살아도 돼. 나 서울로 대학가면 여기 안 올 거야.
윤희:넌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새봄: 나 자꾸 신세지게 하지마. 그거 다 빚이야.


윤희가 뭘 바라는지 편지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새봄은 윤희에게 자기의 삶을 살라고 돌려 말했다. 이내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도 했다.


새봄: 아빠랑 이혼한다고 했을 때 왜 엄마랑 산다고 했게. 엄마가 아빠보다 외로워보였어. 혼자 잘 못 살 것 같더라고. 근데 다 내 착각이었나보네. 난 그냥 엄마한테 짐이었던 것 같아


새봄은 윤희의 깊은 옛친구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윤희가 그를 마주보게 해 윤희의 삶의 더이상 공허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었지만 그걸 깨닫지 못했던 윤희

윤희와 일본에 온 새봄은 윤희의 삶이 공허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윤희의 필름카메라를 쓰던 새봄은 카메라에 얽힌 사연을 듣는다. 윤희의 아버지, 즉 새봄의 외할아버지가 윤희를 대학에 보내주지 않자 새봄의 외할머니가 미안해서 사준 것. 그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새봄이 쓰고 있었다. 새봄은 윤희에게 "내가 써도 돼?"라고 물었지만 윤희는 "난 이제 안 쓰는데 뭐"라고 답했다. 지난 것들을 흘려보내왔던 윤희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비록 윤희는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새봄은 윤희의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윤희는 새봄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걸 알지만 모른 척 해줬다. 장갑을 한쪽만 낀 새봄에게 윤희는 말했다.

윤희: 왜 장갑을 한쪽만 껴. 새로 사줄까?
새봄: 아냐. 의미가 있는 거라서.
윤희: 남자친구가 사준 거야?
새봄: (놀란 표정)
윤희: 너 남자친구 있잖아. 경수.
새봄: 알고 있었어? 근데 왜 말 안 했어?
윤희: 기다렸지 뭐. 언제 말하나 보자하고


윤희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지만 티내지 않음을 안 새봄은 윤희의 삶이 텅 비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의 거리가 멀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과거의 진짜 의미를 아는 쥰과 마사코

그러나 윤희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마냥 지나가야 할 과거는 아니었다. 추억이며 기억 속에서 두고 살면 될 일이었다. 결코 가볍고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윤희의 옛사랑 쥰과 그의 할머니 마사코의 대화는 과거는 지나가지면 추억의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윤희를 잊지 못한 쥰은 마사코에게 과거 연애사를 물었다.


쥰: 할머니도 예전에 연애한 적 있어?
마사코: 있지
쥰: 어떤 사람이었어?
마사코: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나던 사람. 극장 화장실 냄새가 났어. 그만큼 영화를 좋아했지.
쥰: 왜 결혼 안 했어?
마사코: 내가 영화를 안 좋아하잖아.
쥰: (침묵)
마사코: 6개월 만났어. 이제 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평생 잊지 못한 거네.


짧게 만나 헤어진 이유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과거 연애를 평생 기억으로 남긴 마사코였다. 그러나 "자연 앞에선 무력해지는 수밖엔 없다니까"라는 대사를 통해 지나가고 옅어진다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를 가볍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쥰은 과거에 매여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모습, 즉 과거의 무게를 보이기도 했다. 쥰에 관심을 보이던 동성고객 료코에게 쥰은 술을 마시자고 했다. 호감의 표시로 받아들인 료코는 설레했다. 그러나 쥰은 료코에게 "내가 넘겨 짚은 걸 수도 있겠지만, 숨기는 게 있다면 끝까지 숨기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과거 동성애가 밝혀지며 큰 상처를 받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 것.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남은 과거를 털어내는 윤희

새봄의 계획으로 쥰과 재회한 윤희. 그래서였을까, 윤희는 과거에서 능동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윤희가 전남편과 결혼했던 것은 오빠 때문이었다. 자신이 쥰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윤희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했고 남자와 억지로 결혼시켰다. 오빠는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윤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윤희는 그런 오빠에게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명사진을 찍은 윤희에게 오빠는 물었다.


오빠: 증명사진은 왜
윤희: 서울 가서 새봄이랑 살면서 직장 구하려고.
오빠: 학교도 안 나오고 기술도 없는 네가 어떻게. 오빠가 알아봐줄게.
윤희: 내가 알아서 해.
오빠: 네가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윤희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는 오빠를 뿌리치고 나왔다.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버려 온 윤희는 이렇게 과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남편의 결혼 소식도 윤희가 스스로에게 준 벌에서 벗어나는 데에 한 몫했다.


전남편은 윤희에게 결혼 사실을 알렸다. 윤희는 잠깐 당황하다 행복을 빌어줬다. 전남편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미안해. 너도 꼭 행복해야 돼". 윤희가 자신과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을 알면서도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 이제서야 그 고리가 끊긴 데에 대한 후련함일까. 이렇게 윤희는 전남편과 관련된 과거마저 털어냈다.


윤희는 새봄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난다.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을 버리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음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아무리 그리워도, 차가워도 겨울은 지나고 새 봄이 오기 마련이다. 기억 속에 남은 겨울은 기억에만 남겨두고 우리는 봄을 살아야 한다. 윤희는 이를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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