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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Apr 30. 2020

[드라마] 검사내전 8화

-'괜찮냐' 그 참을 수 없는 잔인함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 포스터


'괜찮냐'는 말이 버거울 때가 있다. '괜찮아?'는 호의적인 말 중 가장 쉽다. 상대의 고됨을 알아주기만 하면 되니까. 많은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상대의 상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괜찮냐' 3마디면 완성된다. 최소 노력에 최대 호의가 드러나는 말이다. 좋은 의도의 말인데 가볍기까지 하니 아주 쉽게 쓰인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쓸 만큼 가볍고 쉬운 말이다.


그래서 버겁다. 가벼운 질문에 무겁게 대답할 수 없으니. 솔직하기 혹은 부담을 지우기 어려운 관계에서까지 쓰이다보니 대답의 무게를 조절해야 한다. 나의 어두운 감정을 쏟아낸 후 상대가 느낄 당혹스러움이나 '갑분싸'는 싫다. 결국 나는 '괜찮다'고 답해야하는데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 힘든 상황에선 미소를 짓는 것마저 힘든데 상대의 호의에 호의로 답할 수밖에 없으니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고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라고 까지 덧붙여야 할 때는 두 배로 힘이 든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고 어쨌든 최소한의 관심이니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의도는 선하니까. 힘이 되지는 않아도, 버겁긴 해도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괜찮냐'는 나의 에너지도 쓰게 하지만 선의로 던지는 말이니까 말이다. 현재의 상태는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괜찮냐'는 말에 화가 날 때가 있었다. 내 상황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조로 따지면 가해자인 사람들의 '괜찮냐'였다. 


70명 중 단 4명 만 여자였던 극극극 남초부서에서 근무했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부서 배치를 앞두고 "쟤 키워봐라"라는 전무의 말에 "여자라서 같이 일하기 싫다"라고 답한 부장의 부서로 갔다. 현장에서 차근차근 쌓아서 관리부서로 보낼 거라는 전무의 계획을 알지만 내 성별은 잠시도 데리고 있기 싫은 것이었다. 현실을 몰랐던 나는 오히려 그 말에 안도했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여자라서 싫은 거구나. 나를 알게 되면 마음이 바뀌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여자라서 싫다'는 말에 어떤 인식이 깔린지, 그게 내 앞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면서.


생각보다 회사 생활은 편했다. 힘든 일에서 빼주는 배려가 있었다. 몸쓰는 일이 많고 사나운 담당이 많다는 이유로 매출이 높은 거래처는 받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부서에 할당된 대형차량을 운전하는 것도 금지됐다. 그들이 말하는 무거운 짐과 사나운 담당을 담당하는 사람은 50대 넘은 여성 현장사원이고, 면허를 딴지 이틀된 남자 동기가 대형차량을 자가용처럼 몰고 다녔지만 '나를 위한 행동'은 그를 고려하지 못했다.


여성이라서 '배려'받던 나는 여성성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같이 술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은근슬쩍 회식을 요구하는 매장 담당에게 "회식하자"라며 호탕하게 말했다. 뜬금 없이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던 부장이 "여사원한테 이러면 안 되나"라며 나를 볼 때면 "아닙니다"하며 오른손을 꺼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성성이 계기가 되어 부장에게 혼이 났다. 선배들이 보기에도 비합리적이었는지 메신저로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잠시 보자며 기어이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또다시 괜찮냐고 물었다. 메신저로는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숨길 수 있었지만 마주하니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괜찮다고 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입을 떼려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 선배들이 내게 괜찮냐고 물을 자격이 있는가.


한 선배는 결혼 성공 비결이 '안싸'라고 했다. 혼전임신을 시켰다는 것. 두 분은 어떻게 결혼하셨냐는 나의 물음에 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선배의 TMI를 들었다. 한 선배는 "너도 25살 넘었으니 꺾였다"라며 흔한 농담을 했다. 또 다른 선배는 다른 선배가 '난교'가 자기 판타지라고 했다며, 그걸 듣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고 교묘하게 자신의 순결함을 어필했다.


직접적인 가해는 없었지만, 부장이 성추행을 할 때 막아주던 선배들이었지만 과연 내 상황에 공감해서 그렇게 했을까. 어줍잖은 기사도 정신과 알량한 죄책감으로 한 행동으로 자신들은 부장과 다르다고 믿어왔을 거다. 나도 느꼈지만 내편이 없으면 너무 힘드니 모른척했다. 그런데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묻는 '괜찮냐'는 그런 회피를 이어가지 못하게했다. 실상을 마주했던 순간이다.


"괜찮냐"라고 묻는 동료들에게 화내는 오윤진(이상희 분)

"괜찮냐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죽어." 물안개에서 폭탄주를 말던 오윤진 검사는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워킹맘으로 일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짊어진 오검사에게 '괜찮다'고 말할 힘은 없었다. 뻔한 인식 속에 배려 아닌 배려를 하는 동료들에게는 분노도 일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들은 구조적인 가해자일 뿐이니,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니 화를 낼 순 없다. 그저 '괜찮냐'는 말 그만하라고 할 수밖에. 구조를 바꿀 노력도, 진심으로 공감하지도 않는 그들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여자의 적은 여자'를 보여준 차명주와의 갈등, 남편에게 휴직하라는 오윤진 검사의 말에 '쟤를 어디다 쓰겠냐'며 깎아내리는 척하지만 결국은 남성과 여성의 일을 나누는 시어머니 등 인상 깊은 장면이 참 많았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아는지,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하는 그 대사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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