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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땽님 Feb 05. 2020

3. 들숨에 백만 원, 날숨에 천만 원.

20대, 대표하기로 했습니다.

3. 들숨에 백만 원, 날숨에 천만 원.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사무실 임대 계약을 하고, 한 달간 사무실을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영업 개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월세와 관리비는 꼬박 빠져나간다. 그래서 내 개점 준비에는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최다한 저렴하게 준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충 준비할 순 없었지만,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소규모 (사실 규모를 따지기에도 민망한 1인 스타트업) 디자인 회사였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번쩍이게 할 필요는 없었고, 돈도 없었다. 그냥 최대한 깔끔하게 청소를 했다. 다이소에서 파는 줄자 하나 가지고 실평수 12평 남짓한 공간을 몇 번 씩이나 재고, 나누고, 더하며 설계도를 짰다. 책장, 책상, 의자와 같은 집기는 인터넷으로 발품을 팔아 최대한 깔끔하게 예쁘고 튼튼해 보이나 동시에 저렴한 것을 고르고 골랐다. 조립식 책상이 저렴해서 손목이 나가도록 책상 조립을 하고, 진열대, 의자 등도 직접 조립하고 끼우고 하며 마련했다. 사무실 구석에 비치한 작은 냉장고는 평창올림픽에서 사용되었던 제품을 중고로 샀으며, 인포데스크를 마련해야겠단 생각이 있었으나 너무 비싸서, 키 큰 책장을 옆으로 넘어트려 사용하고 뒤쪽에는 깔끔하게 판을 대어 사용했다. 꽤나 그럴듯하고 공간 차지를 많이 하지 않는 인포데스크가 완성됐다. 이런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나인데, 힘쓰는 것엔 잼병이었던 나인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다 하게 되더라.

 그 외에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 벗고 나서서 했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외부에 부착하는 광고물을 직접 제작하였고 출입문쪽에 붙이는 실사 스티커도 직접 제작하여 직접 붙였다. 배너를 제작하고 설치했다. 사무실 호수 표시, 현판, 현수막 등 내 손길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새로운 일을 꺼리고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수행해왔던 일의 폭이 넓었고, 그 모든 건 재산이 되었다.


 간판 또한, 발품을 팔면 팔수록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간판을 달 수 있다. 실행력 있는 성격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책상다리와 씨름하면서, 힘이 빠져 쉬는 중간중간에 간판 공부를 했다.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달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직접 실사이즈에 맞게 구성을 짜서 시안을 보내며 여러 업체에 견적 요청을 했다. 7개 업체 정도에 견적 요청을 했던 것 같다. 업체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공장 직영인 곳이 있고, 인터넷에 광고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하청 공장으로 외주를 주는 사업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 중 상담 직원이 가장 간판에 관해 빠삭하게 알고 상세히 설명해주는 곳이 있었다. 누가 봐도 전문가일 정도로 간판에 관해 잘 아는 직원이었고,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공부한 내가 알 수 없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내 질문에 관해서도 막힘 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업체가 견적이 가장 저렴했다. 다른 업체의 60~80% 수준의 가격이었다. 시공 또한 사장님이 직접 하신다. 난 이 업체와 계약을 했고, 좋은 가격에 좋은 간판을 달게 되었다. 이후 주변에 거래처가 새로 들어올 때 이 업체를 몇 번 소개해주기도 했다.


 견적을 짜서 컴퓨터도 조립으로 맞추고, 일에 필요한 몇몇 기계를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네고는 필수다. 상담 직원과, 거래처 대표와, 판매 담당자와.. 상대를 막론하고 대화는 많이 할수록 좋다. 물론 아주 친절히 대화하여야 한다. 그럼 내가 모르던 정보가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들의 재량으로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은 해결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 쉴 틈도 없이 한 달이 꼬박 갔고, 영업개시일이 다가왔다. 직접 홍보물을 제작해두었고, 인쇄물만 제작하는 디자이너였던 내가 탬플릿 사이트를 이용하여 홈페이지도 만들고, 도메인을 따 연결해두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일을 내가 하다 보니, 인테리어, 간판, 기계 구입, 비품 구입, 홍보물 제작까지 하여 15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총 3천만 원의 대출금으로 준비를 시작하여, 회사를 오픈할 시점엔 이것저것 잡비를 더 빼서 1300만 원 정도가 남았다. 비록 가진 돈 한 푼 없이 대출로 시작한 개업 준비였지만 그래도 기존 생각보다도 훨씬 적은 돈을 사용하였기에, 생각 외로 사업 운용 자금을 더 많이 남겨둘 수 있었다.

 참고차 더 자세히 적어보자면 뒤 비용은 간판(설치비와 크레인 대여비용 포함), 월세와 관리비 한 달치, 책장 한 개와 인포데스크, 책상 6개, 사무용 의자 9개, 컴퓨터 두 대와 모니터 두 대, 파티션 두 개, 진열대 두 개, 인쇄물 제작에 필요한 간단한 기계 두 대, 냉장고, 전동 커피머신, 전자레인지, 인덕션 한 구, 작업에 필요한 비품, 홍보전단과 자체 제작 홍보용 무선 노트 천 부, 홍보용 30cm 자 500개, 각종 배송료를 모두 포함한 비용이다.


 이리하여 2018년 12월 1일, 진정한 영업개시일이 다가왔다. 한 달간 쉴 새 없이 하루 열 두 시간씩은 일했기에 몸이 다 삐그덕거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시작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떡도 맞춰서 돌렸다. 떡 포장지에 회사 정보를 붙여두고, 약도도 만들어서 뒤쪽에 붙여두었다. 오픈을 준비하며 제작해뒀던 홍보물과 명함도 같이 돌렸다. 모르는 회사에 대뜸 노크하고 들어가 떡을 돌리는 일이 사실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굴도장을 찍어두었다. 이 일도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 그냥 우리 회사 건물만 한 번 쭉 도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주말엔 친구들을 회사로 불러 파티를 했다. 파티래봐야 그냥 케이크에 촛불 켜고 배달음식을 시키고 맥주 한 캔씩 사다가 마신 것밖에 없지만, 그래도 날아갈 듯 즐거웠다. 이 근방 업종 특성상 주말에 열어있는 회사가 거의 없기도 하고, 당시만 해도 우리 층에 영업하는 회사가 별로 없었기에, 조금 소란스러운 것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 이후 과정은 별다를 건 없다. 처음 오픈한 디자인 회사에 거래처가 바로 쭉쭉 늘 리가 없기에 일이 별로 없었고, 영업시간 동안엔 오픈 준비 과정에서 미처 못 했던 자잘한 일을 처리했다. 각종 서류 양식을 만들고, 업무 체계를 만들고, 그간의 지출을 정리했다. 중요한 것은 업무시간 이후였다. 일부러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밤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일을 했다. 저녁 8시 즈음이 되면 속된 말로 '구루마'라고 부르는 카트에 홍보물을 가득 실어 주변 건물에 돌렸다. 웬만하면 각 회사마다 직접 출입문 아래 틈으로 홍보물을 끼워 넣은 노트와 회사 정보가 적힌 30cm 자를 밀어 넣었고, 그게 되지 않을 것 같은 건물에선 각 회사 우편함에 홍보물들을 끼워넣어두었다. 소규모 사무실이 많았기에, 두세 시간을 꼬박 해도 한 건물을 채 돌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럼 다음날 아침 새벽시간에 일찍 출근하여 나머지 작업을 했다. 이 일을 한 달 내 했다. 죽을 뻔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던 것일까, 바로 거래처가 늘기 시작했다. 비록 몇 만 원짜리 작은 거래들로 시작했지만, 매 달마다 열 군데 남짓한 거래처가 새로 생기기 시작했다. 같은 층에도 입주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 오픈하는 입주사는 나를 찾아왔다. 솔직히 일반적인 회사의 디자이너라면 알기 힘든, 나도 이전에 처리해보지 못했던, 모르는 양식의 일을 맡기도 했다. 앞에선 아는 척을 하고 일을 맡아서 뒤에서 백방으로 공부하고 여기저기 공장마다 전화를 돌려가며 툭툭 던져지는 지식을 주워 일을 처리했다. 서툰 업무였기에 실수가 있어도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일했다. 그랬더니 거래처가 더 늘었다. 업무를 하며 이것저것 잡다하게 새로운 것을 배워갔다. 사실 나는 자본이 없었기에 물건 하나를 제작하더라도 다른 회사들보다 제작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마진을 줄였고, 서비스를 최대한 많이 제공했다. 5천 원 남짓 남는 일에도 무료 시안을 서너 개씩 제공했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해주었다.


 사실 이는 디자인의 가치를 깎아먹는 일이기에,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떳떳한 일은 아니다. 디자이너가 차고 넘치는 취업시장에서, 열정페이를 받으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하지만 이건 내 생존 방식이었다. 무료 템플릿이 넘치고 난무하는 현시대에서, 비싼 돈을 주고 엄청난 디자인을 제공받는 것보다는, 저렴한 돈에 적당한 디자인을 제공받기를 원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맡기를 갈구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줄을 섰고, 결국 디자인은 헐값에 거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창업한 대표는, 굶어 죽기 전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업종만 조금 바꾸면 레드오션이 된 모든 사업에 통용되는 공식이다. 카페 창업이 그렇고, 요식업 창업도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일한 결과, 나는 비교적 빠르게 거래처를 늘려갈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온 정성을 쏟다 보니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거래처 숫자는 상승세를 보이다가 점점 그 상승세가 둔화되었는데, 그래도 그간 꽤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 이미 만들어둔 템플릿을 이용해 일을 하면 시간을 많이 단축시킬 수 있고, 재주문으로 인한 수익도 늘어났다. 아직 매출이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무실 오픈 1년 만에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못 벌었다. 자본증식 상태에 빠져있다.

 개업 첫 달, 나는 제품 제작에 관한 매입비용을 빼고 50만 원 남짓을 벌었다. 원래는 조금 더 벌었는데, 못 받고 떼인 돈이 20만 원 남짓이라 남은 돈은 그게 다였다. 둘째 달부턴 100~150만 원씩을 벌었다. 이 업종에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다. 어떤 달엔 70만 원을 벌었고, 어떤 달엔 200만 원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지비가 또 빠진다. 월세가 매 달 110만 원씩 빠지고, 관리비가 평균적으로 23만 원씩 빠진다. 그 외 기계 대여비, 디자인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 월 결제 비용, 기타 유지비와 거래처에 결제할 돈을 더하니 최소 250만 원씩의 지출이 발생했다. 결국 50만 원을 번 달엔 200만 원의 손해가 생기고, 200만 원을 번 달에도 50만 원의 손해가 생기는 것이다. 이 손실은 모두 대출금으로 메운 꼴이다. 월세나 각종 매입을 대출금으로 해결했다. 매출로 들어온 돈은 내 통장에 쌓였지만, 대출금 통장에 쌓여있던 돈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개업 후 6개월이 좀 지나자 대출금은 동이 났다. 마침 비수기였다. 사업자 통장에 돈이 좀 쌓여있었지만, 이 돈으론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3년은 버티고 싶었는데, 1년도 안돼서 폐업하는 거 아니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성수기가 왔다. 갑자기 각 거래처에서 일이 쏟아졌다. 또 새벽에 출근하여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일에 치이느라 장부 정리도 잘할 수 없어서,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가 나가는지 계산할 틈도 없었다. 숨 막히게 업무를 처리하다가 조금 한적해졌을 때 발주서와 영수증을 정리했다.


 가장 바쁜 한 달의 매출은 천만 원에 육박했다.

 혼자서 천만 원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달간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도 쪼개가며 일했고, 잠에 예민한 편이라 도통 잠을 자지 못하던 내가 출퇴근 버스에서 쪽잠이라도 죽은 듯이 잤다. 원래도 좀 마른 편이었는데 몸무게가 더 줄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만성피로가 쫓아다녔다.

 그런데, 그나마 돈을 벌었다는 기쁨도 잠시, 제품 제작에 관한 매입 자료를 이것저것 빼다 보니 내 수중에 남은 돈은 천만 원 중 고작 사백만 원이 되질 않았다. 여기에서 또 월세, 관리비.. 이것저것을 빼야 한다. 비수기 때 메우지 못한 손실도 메워야 했다. 매출이 늘다 보니 매입이 들어 300만 원 정도의 유지비가 나왔다. 교통비, 보험료, 대출 이자, 식비.. 아끼고 아꼈는데도, 내 아주 기본적인 지출만을 빼도 50만 원이 남었다. 천만 원을 벌었는데도 내 수중에 남는 돈은 50만 원인 것이다. 허무함이 몰려왔다. 차라리 직장을 다녔으면 이 고생은 안 하는데.. 하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사업을 하고 처음으로 큰 두려움이 찾아왔다. 내가 한 달 내 죽어라 일해도 난 50만 원밖에 벌질 못하는구나.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한 달 매출 천만 원. 처음 사업을 하며 다짐했던 첫 목표에 거의 다 달았다. 지금은 힘들게 이 정도를 벌었지만, 내 거래처와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더 작은 노력으로 더 큰 순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지비용은 매 달 일정하니, 매출이 이 이상 많이 늘면 순수익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나는 지금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난 아직도 힘들게 사업을 유지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월 설 직전, 비수기이다. 매출은 평소의 반의 반토막이 났고, 납품은 빨리 해달라며 닦달을 하는 거래처들이 돈은 한두 달씩 늦게 지급한다. 이러다가 또 성수기가 오면 숨통이 조금 트이겠지만, 수명을 깎아먹으며 일하게 될 것이다. 자영업자는 힘들다. 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므로, 이 나날들을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이런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카드수수료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얼마나 한다.


 얼마 전 자영업자의 카드결제 회피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댓글창엔 비난이 난무했다. 카드를 회피하는 사업자는 모두 탈세 범법자들이며, 모두 세무조사에 들어가서 탈탈 털려야 한다고 한다.


 사실 나도 이전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고작 0.x%, 1.y% 하는 카드 수수류가 얼마나 된다고? 그게 별거야?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해보니까, 그 카드수수료는 별 거 맞더라.


 부가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카드 결제를 회피하는 업주들 중 부가세 신고를 회피하는 사람이 많기에 욕을 많이 먹는 것, 나도 알고 있다. 사실 그 건 욕먹을 만한 일이다. 대부분 제품 가격에 부가세를 포함하여 돈을 받는데 현금 매출 시에는 10%에 달하는 세금을 신고하지 않아서 이득을 편취하는 것이니까. 이와 별개로 모든 사업자가 세금을 투명하고 깨끗이 낸다고 가정했을 때, '카드수수료'만 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100원, 300원 이런 자잘한 카드결제도 모두 환영하며 받는다. 그리고 음식점과 같이 매출의 파이가 큰 업종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카드수수료를 낼 만하다. 그리고 카드결제는 결제가 신속히 이루어져 혼자 사업장을 운영하는 나에겐 시간적으로 유리하기도 하고 세금신고 시에도 좀 더 편하기 때문에, 간편 장부 대상자인 나에게 그나마 카드결제가 편한 점이 있다.


 그러나, 요식업과 같이 매출이 크고 그만큼 지출도 큰 업종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주 단순한 가정을 하여 계산해보겠다. 부부 사장님 두 분이 운영하고, 로테이션으로 근무하는 직원이 두 명 있는 음식점을 예로 들자. 매일 100만 원의 매출이 나오고, 한 달 25일을 영업하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자. 이 음식점의 한 달 매출은 2,500만 원이다. 이 중 40%를 재료비 등등에 사용하면, 1,500만 원이 남는다. 이 중 500만 원을 인건비로 사용하고, 400만 원을 각종 월세와 각종 공과금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사장님 두 분께 남는 돈은 합쳐서 600만 원이다. 한 달 내리 거의 휴식 없이 일하여 남는 돈이다. 그런데, 카드 수수료가  발생한다. 카드 수수료는 순수익이 아니라 매출에서 그대로 빠진다. 1.5%만 발생했다고 해도, 37만 5천 원 생돈이 수수료로 빠져나간다. 아까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사업자에게 발생하는 장기적인 수선비, 갑자가 사고가 닥쳐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손실, 폐업 시를 고려한 저축 등.. 아주 기본적인 금액만 공제하더라도 남는 돈은 얼마 없다. 이 돈으로 부가세도 내야 하고, 세무 기장을 맡긴다면 세무 비용도 내야 하고, 종합소득세도 내야 한다. 그런데 사업자가 갑자기 잘못됐을 때 책임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업자들에겐 보험 장치가 거의 없다. 한 푼이라도 아껴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앓는 소리다. 하지만 위의 가정은, 사업자 중 그나마 괜찮게 풀린 케이스이다. 이보다 훨씬 못 버는 사장님들이 많다. 네가 욕심내서 사업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별다른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시작했거나, 오랜 기간 정직하게 장사를 해왔지만 급변하는 시장경제 속에서 점점 사정이 힘들어지는 사장님도 많다. 물론 이 중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좀 무모했던 사람도 있다.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사람도 있고,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을죄는 아니니까..

 기사 하나에 너무 많은 비방 댓글이 달려있고, 또 그 댓글에 추천이 너무 많아서. 한 번쯤은 사업자의 편에 서서 말을 해 보고 싶었다.


 실제로 나도, 한 거래처의 일을 이것저것 도맡아 하고 1,422,960원을 카드로 결제받은 적이 있다. 자잘한 일을 다량으로 맡긴 것이라 한 달 정도 고생을 무진장했고 유류비도 많이 지출했다. 이 중 나에게 순수익으로 떨어지는 돈은 58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카드 수수료를 빼니 1,397,348원이 입금되었다. 카드 수수료로 25,612원이 빠져나간 것이다. 순수익의 5% 정도가 수수료만으로 빠져나갔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매일 매출이 150만 원 정도 되는 사장님들은, 매일 카드수수료를 2만 6천 원 정도씩 지출하시는 것이다. 한 달을 꽉 채워서 계산하면 78만 원이다.


 해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 감에 따라 근로자를 위한 사회보장장치는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장치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돈을 잘 버는 사업자도 있지만 돈을 못 버는 사업자도 많다.  나는 근로자였던 적도 있고, 지금은 사업자다. 나는 영세사업자와 근로자가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는 구조가 조금 불편하다. 서로 공생하는 존재인데, 조금 더 친밀하게 공존할 순 없을까?

 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제도적인 문제이기도 하기에 쉽게 말하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내 경험이 더 쌓이고 사업을 오래 지속하다보면 더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미래의 내 직원에게 더 합리적이고, 친절하고, 베푸는 대표가 되자. 내가 먼저 친밀하게 다가가면, 상대방도 나에게 친밀하게 다가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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