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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12. 2024

치사한 하루_ 24.12.12

월급의 치사함과 그럼에도 왜 붙드는가.

치사함이 극에 달았다. <네가 이 시간 동안 여기 앉아 있으면서 뭘 하는 거냐.> 월급 200만 원 버는데, 결국 네가 여기 앉아서 하는 건 뭐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일한다. 님들이 시킨 일. 주야장천 뛰어다녀도 이 정도다.


<너를 챙겨주니.. 잘 들어.>하는 식의 조언 비슷한 욕을 날리시는 선임의 말. <리더들은 보고 있단다.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눈여겨보고 있단다. 그러니 대안이 없이 적자 얘길 말하지 말라 한다.(말도 못 하나 생각했다.) 너의 말은 결국 네 얼굴 깎아먹는 거다.>라며 하는 말. <방도를 마련해 봤냐.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보고 얘기를 해라.> 사실 나는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되어 화가 나고, 어느 정도는 동의가 되지 않아 화가 났다.


너무 열받는 게 예산이나 주고 결과를 내라고 하지. 싶어 예산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얘기했더니, 과거에도 예산은 없었으나 수익을 냈다는 선임의 말. 입을 틀어막고 <결국 이게 네 실력>이라고 얘기하는 거다.


집에 가도 짜증이 나는 건, <할 수 있는데 네가 안 하는 거 아니냐는 식> 맞다. 하기 싫다. 주부생활 10년 차 짜증이 난다. 나는 그렇게 오래 하면 잘될 줄 알았고, 기술이 무지막지하게 좋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 되려 더 하기 싫다. 먹고살 만해서 속 편한 소리 한다고 생각할까 싶어 꾹 참아왔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이들은 <되는 건 당연하고, 되기 위한 과정의 노력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만한 결과치가 없을 때, 그 결과가 나와 맞닿지 않을 때는 대부분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피해망상의 극에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리 해도 나조차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관둔다 한들 아쉬워할 사람이 없다.(나도 나를 보호하며 할 수 있는 만큼만을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노력했으나, 가닿지 못했고, 세상은 냉철했다. 실력이 없으면 철저히 외면당하는 게 세상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나를 보호하느라 선임의 말을 고깝게 여겼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고,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게 고까웠던 것이다.


실력도, 인성도 바닥인데... 심란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가 난가? 학교에서 질질 새고 있다. 내 옆 선생님 밉다. 그런데 남편도 밉다. 팩폭을 너무 잘하는데. 다 맞는 말이라 성질난다.


그런데 걱정이다. 내년이. 내 옆 선생님은 갑상선의 문제가 있고, 나는 집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학교 그만두라고. 남편 눈치에 미치겠고, 학교에서는 돈값을 하길 원한다. 아무래도 돈을 적게 쓰고 한 사람이 더 많은걸 해주면 좋겠지. 옆의 선생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이 답답한 인간에게 내 업무를 주기도, 안 주기도 난감하구나> 싶은 모양이다.(아님 이미 얜 틀렸다 생각하시는건가)


치사함에 대해 긴 글을 적고 보니, 내 태도가 참.... 별로였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님들의 마음이 역으로 읽히니 아랫사람들도 짜증 나서 일 못하겠다는데, 이게 뭐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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