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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Sep 14. 2021

아등바등 버티다 보면

그냥 써 본 이야기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저명한 철학자들이 모여 사랑, 즉 에로스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의견은 이렇다. 본래 인간은 동그란 몸통에 팔과 다리가 각각 네 개씩 달린 존재였는데, 경솔히 신에게 맞선 대가로 절반으로 갈려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반신을 찾아 평생 헤맬 수밖에 없는 운명이며, 사랑은 이처럼 존재론적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라 말한다. 


 그렇다면 결합을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은 고민의 과정 따위 없이 바로 결혼이라 답할 것이다. 본래 하나였을 존재가 사실은 절반밖에 채워지지 못한 빈약한 존재일 뿐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며, 동반자와 함께라면 완전해질 수 있으리라 믿도록 만들어버리고 마는 신빙성 없는 주문. 수많은 인생의 변곡점 말이다. 


 더 나아가서 출산의 고통을 거치고 나면, 주역들에게는 그동안 딛고 서 왔던 굳건한 가치관의 액상화가 시작된다. 특히 자유와 일을 사랑하는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조리원을 퇴소하던 날, 나는 비로소 내 살을 찢고 나타난 생명의 무거움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나의 두 팔 속에 안긴 3.3kg짜리 살과 피, 그리고 뼈는 내 두 어깨를 뻐근하게 할 만큼 무겁고 무서웠다. 행여 상처라도 입힐까 꼭 안지도 못한 채, 떨어뜨릴까봐 힘을 풀지도 못한 채 나는 그 어딘가의 경계에서 어정쩡히 줄다리기를 했다. 한두 시간마다 세상 끝난 듯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옅은 수면과 독한 현실 사이에서 눈을 끔벅거렸다. 정신을 잃듯 잠들었다가 가슴 속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면,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댄 아이를 보고 조종사가 실을 놓아버린 마리오네트처럼 몸을 눕히곤 했다. 감정의, 체력의, 존재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하며 버티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방전된 건전지처럼 버티다 결국 회사 복귀를 선언하고 말았다. 


 당연히도, 주변 사람 모두가 우려했다. 출산을 겪은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의무를 이야기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라도 엄마가 아이에게 꼭 붙어 있어야만 한다며, 나의 결심은 천인공노할 짓이라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참에 직장을 그만 두고 가정에 전념하라며 은근히 회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육아와 일의 양립이라는 이 담론에서 왜 아이 아빠의 존재는 당연스레 삭제되는가, 의문을 제기할 때면 ‘네 남편이 너보다 잘 벌잖아.’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10년 가까운 커리어의 차이를 들어 항변하고 싶어도, 통장에 찍힌 현실은 나조차도 동감하는 바였기에 나는 들먹이던 입술을 꾹 다무는 수밖에는 없었다. 


 주변인들의 말대로 내 직장이란 반드시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크게 대단한 곳도 아니었다. 그만 두면 생계가 위태로울 만큼 어려운 상황도 아니었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많이 벌고 , 안정적이었으며, ‘나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편안히’ 가정에 전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기까지 했다. 그만 둬도 그만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나란 사람은,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내게 생기를 부여할 무언가가 절실했다. 결혼과 출산으로 나를 감싼 모든 환경이 바뀌어가는 때, 내게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석사 학위를 받기까지 밤을 새워가며 머릿속에 욱여넣어왔던 지식들, 전라남도부터 서울특별시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쌓아왔던 나의 커리어들은 나 자신의 가장 큰 구성요소였다. 이것들을 모두 포기한 채 하루 종일 하루 종일 아이와 집 안에 갇힌다는 것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두려운 소재였다. 이미 겪어낸 몇 달만으로도, 나는 설화 속 한 많은 여인네들처럼 돌부처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체력도, 정신력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가뭄에 말라버려 돌바닥까지 쩍 갈라지고 만 우물처럼 고갈되어 있었다. 분유 냄새가 지겨웠다. 아이 상태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 매일 아이를 울리고야 마는 내가 한심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내 몸을 지탱하던 스켈리토 힐, 허리를 꽉 조이던 H라인의 원피스, 분유는커녕 먼지 한 톨 묻지 않게 관리해왔던 고급 에나멜 핸드백, 수개월 동안 공 들인 계약이 성사되고 말았을 때의 그 쾌감, 주변 사람들의 인정, 사회인으로서 당당한 나의 모습, 이런 것들이 너무도 그리웠다. 


 사람들의 회유에 솔깃한 때도 있었다. 나는 결과물에 만족 못하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새벽 서너 시까지 회사에 남아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성격파탄자였다. 뇌의 구석구석 작은 주름들까지 쥐어 짜내 괴롭히고 난 후에야 보상처럼 다가오는 작은 성취감과 거대한 스트레스에 휩쓸리곤 했던 나는, 출산 전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이참에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설계해 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코 복귀를 밀어붙였다. 하지 않아도 될 이유보다, 해아만 할 이유가 훨씬 선명했던 탓이다. 우선 실체가 분명한 이 불안감으로부터 달아나야 했다. 나 혼자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매 순간 괴로웠다. 가시적인 성취로 충만했던 그 나날들, 목표를 위해 빠른 속도로 정진해가던 사무실 내 분위기가 그리웠다. 영화 속 추억을 보정하는 잿빛 화면들처럼, 직장생활을 떠올리면 상사의 잔소리, 불합리한 결과에 따른 분노, 인간관계의 고통 등은 쏙 빠진 채 아름다운 추억들만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날이 초조해져갔다. 빨랫감을 정리하다 남편의 넥타이, 양말을 볼 때면 증오마저 느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다보면 필연적으로 망상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다가올 낌새조차 없는 어두운 미래에 취하고는 했다. 맨몸으로 쫓겨나는 상상,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내던져지는 상상들과 마주칠 때마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며 코웃음 치면서도 초조했다.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언제 빼앗길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삶이라니. 상상 속 가련한 주인공의 얼굴 위에 푸석한 내 얼굴이 덧씌워질 때마다 나는 악몽에서 달아나듯 소스라쳤다. 내 삶을 통틀어 믿음의 대상은 남편도, 부모님도, 아이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만 했다. 


 내 아이가 딸이기에 더욱 간절했다. 어린 시절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에서 본 어느 여성들의 이야기처럼, 결혼하자마자 반 강제적으로 직장을 그만둬야만 하는 사연들을 나는 경멸해왔다. 사내 연인이 결혼하자마자 각자 정 반대 방향의 타지역으로 발령 받았다는 이야기에서는 공포마저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무엇이든 욕망하며, 또한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자 했다. 선택권의 박탈이란 존중권의 말소와도 같았으므로. 


 내 딸도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너를 낳아서”, “너 때문에”, “너를 키워야 했으니까”, “엄마 역할이 우선이었으니까” 따위의 이유들을 말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내 딸에게서 몇 가지 선택권을 빼앗는 것만 같아 무거웠다.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결혼과 일, 육아는 상호 공존할 수 있다고. 원한다면 뭐든 가져도 된다고. 이제 과거 속 여성들이 겪은 불합리와 이를 장려하던 사회 분위기들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며, 이 엄마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고. 너는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으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오답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행복,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입각한, 지극히 공시적인 사고방식이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엄마와 사회인의 경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번민해야만 하는 위태로운 줄다리기는 언제쯤 끝나는가? 나조차도 ‘엄마의 노동의 가치’는 생각지도 않은 채 오직 사회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엄마라는 단어에 ‘벌레’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유행을 넘어 하나의 신조어로 고착되어 버린 사회, 전업주부의 노동에 대한 비하를 보며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하의 대상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공포감에 휘둘리고 마는 나 자신의 모습. 이 시대의 여성들은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들어오지 않았던가. 나는 내 딸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과도기에 있는가? 이 혼란 속에서 나는 답답함과 죄책감에 뒷덜미를 잡힌 듯 목이 턱 막힌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복귀한 후, 한 번의 이직을 거쳐 나는 계속 경계에서 아등바등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아이는 28개월 차가 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품에 안겨 내게 오려 용을 써 대다 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쿨하게’ 손을 흔들고 “엄마 이따가 볼까?”라며 나를 문 밖으로 떠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아이, 제자리걸음 중인 나.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버텨내보는 지금, 위태롭게 쌓아올린 블록들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티기로 한다. 나 자신, 그리고 함께해주는 이들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뿌리가 굳건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어온 고통스러운 심리적 방황이, 이제 더 이상 인생의 필수 관문이 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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